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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인정'을 경쟁적으로 갈구하는 사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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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
논설위원

첫 직장을 다니던 사회초년병 시절 한 선배로부터 “일에 너무 몰두하지 마라” “회사와 너를 분리하라”는 조언을 들었다. 한없이 무기력하고 비겁한 말로 들렸다. 그게 그저 영혼 없는 밥벌이에 대한 합리화만은 아니란 걸 깨닫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렸다. 그 이후 나는 사회인, 주부나 엄마, 그리고 그 무엇으로도 환원되지 않는 나, 이렇게 나를 삼등분하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사회인으로서 혹은 가족구성원으로서 문제가 생기고 흔들릴 때 세상 전부가 흔들리는 게 아니라 나머지 3분의 1의 내가 나를 받쳐주는 식이었다.

 이를테면 나의 생존기술로서 나의 분리전략이다. 요즘 유행하는 아들러 심리학도 그런 것 같다. 최근 『미움받을 용기』『버텨내는 용기』 등을 연달아 베스트셀러에 올리며 인기를 끄는 오스트리아 심리학자 말이다. 요체는 이렇다. ‘나의 평범함을 인정하라’ ‘남의 미움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져라’ ‘실제보다 더 잘 보이려 하지 마라’. 인생이란 게 아무리 노력해도 10명 중 1명은 나를 좋아하고, 7명은 그저 그렇고, 2명은 나를 싫어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 모두에게 인정받으려, 사랑받으려, 칭찬 들으려 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마음의 행복을 찾기 위한 뻔한 기술 같지만 그게 다는 아니다. 남이 나를 낮게 평가했다고 해서 내가 정말 하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듯, 마찬가지로 남이 나를 높이 평가했다고 해서 내 가치가 높아지는 것도 아니라고 강조한다. 미국 작가 닐 도널드 월시를 빌리면 이렇다.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걱정하는 한, 당신은 그들에게 소유된 셈이다. 외부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때 비로소 당신은 스스로의 주인이 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아들러 심리학이 왜 지금 갑자기 인기인가다. 타인의 욕망을 자기 욕망으로 착각하고 타인의 시선을 통해 자기를 증명하려는 ‘타자지향적’ 삶이야 자본주의 일반의 문제일 테고, 여기에 ‘만인의 만인에 대한 인정투쟁’을 동력으로 하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시대의 피로감이 한몫한 것은 아닐까. 사실 SNS야말로 오프라인에선 막연했던 ‘인정투쟁’이 ‘좋아요’ 나 ‘팔로어’ 수를 통해 구체화·계량화되는 공간이다. 타인과 관계 맺음 역시 ‘좋아요’를 누르는 인정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그 어디서보다 ‘인정’이 흘러넘치고, 그만큼 ‘인정’을 경쟁적으로 갈구하게 되며, 그만큼 결핍감도 큰, 그래서 아들러식 위로와 마음관리도 더 통하는 공간이다.

양성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