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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성식의 레츠 고 9988] 상처 후 혼자 사는 기간 9.7년 … "남성도 집안일 배워둬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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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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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초 충북 청주의 한 주택에서 이모(76)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방 안에는 스스로 목숨을 끊는 데 사용한 도구가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사위(56)는 “아버님과 연락이 안 돼 집에 가보니 숨져 있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석 달 전 숨진 아내를 그리워하며 아내가 없는 상황을 매우 힘들어했다고 한다. 사별한 아내를 그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게 경찰의 추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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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년이나 노년의 상처(喪妻)는 남편에게 큰 충격이다. 평생 아내에게 의존하며 살아오다 그 빈자리를 극복하기가 여간 쉽지 않다. 26일 통계청에 따르면 2013년 아내가 먼저 사망한 남자는 2만8350명으로 이 가운데 50대 이상이 2만345명이었다. 2008년(1만9073명)에 비해 다소 늘었다. 2008~2013년 6년 동안 연평균 1만9689명이 아내를 먼저 보냈다. 2013년 상처한 남자 중 70대가 9232명으로 가장 많았다. 중년(50~64세)도 7576명으로 적지 않은 편이다.

 아내를 잃는 평균 연령은 77.76세(2010년 기준)다. 2000년 72.95세에 비해 4.81세 올라갔다. 평균수명 증가 때문이다. 아내를 잃고 나서 사망할 때까지 혼자 사는 기간은 9.67년이다. 약 10년을 혼자 산다는 뜻이다. 아내가 없으면 남자는 당장 아침 식사를 하기가 힘들어진다.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것도 서툴다.

 이동우 인제대 상계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아내는 남편을 잃고도 독립생활을 할 수 있지만 남자는 거의 불가능하다”며 “직장 생활 말고는 거의 모든 것을 아내에게 의지해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윤모(89)씨는 2009년 아내를 잃었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열흘 만에 세상을 떴다. 너무 갑작스러운 일이라 혼란이 극에 달했다. 거동이 가능하긴 했지만 집안 살림을 할 줄 몰랐다. 자녀들도 외지에 나가 있어서 집으로 와서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아니었다. 윤씨는 자녀 집으로 가기를 거부했다. 자녀들이 고심 끝에 입주 도우미를 들였지만 한 달 만에 그만두고 나가버렸다. 일주일에 세 번 노인돌보미가 오지만 이것으로 해결이 안 돼 아들이 매일 오가며 챙긴다.

 같은 노인이어도 배우자 유무에 따라 남녀 간 태도에 있어 차이가 난다. 이신영 계명대 사회복지학과 교수가 65세 노인 2000명을 분석한 결과 여성은 배우자 유무가 생활만족도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았지만 남성은 그렇지 않았다. 이 교수는 “남자는 건강과 경제적 여건을 갖췄다 하더라도 아내가 있어야 생활만족도를 느끼지만 여자는 그런 여건만 갖추면 남편 유무에 거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말했다.

 남성이 여성에 비해 관계 형성에 서툰 점도 ‘중년 상처’의 고통을 키운다. 이동우 교수는 “남자들은 직위나 업무와 관련한 인간관계에 익숙하지만 수평적 관계에는 잘 적응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경로당·복지관 등에 나가서 관계망을 형성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한다. 고위직을 지낸 경우라면 더하다. 보건복지부의 노후준비실태 조사(2013년)에 따르면 ‘노후를 위해 대인관계 준비를 못하고 있다’고 응답한 남성이 35.4%로 여성(33.1%)보다 높다.

 집안 살림을 한 경험이 있으면 사별 환경에 적응하기가 다소 수월하다. 황모(62·서울 동작구)씨는 2012년 9월 아내를 암으로 보냈다. 아내가 숨지기 전에 2년 동안 암 투병을 할 때 집안 살림을 도맡아서 했다. 그 덕분에 살림살이에 익숙해졌다. 반찬 같은 것은 주변 친지들이 챙겨 준다. 황씨의 아들은 “아버지가 드럼을 배우고, 서울 둘레길을 완주하는 등 활동을 꾸준히 한 덕분에 어머니의 빈자리를 극복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성혜영 국민연금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직장 중심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해 온 남성의 경우 아내가 먼저 사망하면 스트레스가 크게 증가한다”며 “인간관계의 폭을 가족·친지·지역사회로 넓히고 아내와 공동으로 가계 관리를 하며 자녀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제대 이동우 교수는 “가정 내에 작은 일에 관심을 가지고 도와줌으로써 가족관계를 좋게 유지해야 한다”며 “옛날로 돌아가 학교 동창과 같은 순수한 친구를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런 데서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신성식 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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