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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점검 '0' 미등록 글램핑장 … 소화기 3대 모두 먹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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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화재 캠핑장 내 다른 텐트의 내부 모습으로 냉장고·TV등 각종 편의시설을 갖추고 있다. [오종택 기자]
과학수사대가 22일 강화도 화도면 ‘글램핑장’ 화재 현장에서 정밀감식을 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불법 펜션과 함께 운영하던 캠핑장이었다. 등록을 안 해 소방·안전 점검을 한 번도 받지 않았다. 실제 불이 났음에도 소화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난연(難燃) 처리가 안 된 천막은 순식간에 타올랐다. 이로 인해 어린이 셋을 포함해 다섯 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 캠핑장은 화재보험 등에도 가입하지 않았다. 올해 세계 캠핑·캐러배닝 대회를 여는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22일 오전 2시9분 인천시 강화군 화도면의 캠핑장 텐트에서 불이 나 텐트 안에서 잠자던 이모(37)씨와 큰아들(11), 막내아들(6), 그리고 이씨와 함께 놀러왔던 중학교 동창 천모(36)씨와 그 아들(7)이 숨졌다. 이씨의 둘째 아들만 화상을 입은 채 구조돼 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불이 난 시설은 ‘글램핑(glamping)’장이라 불리는 곳이다. 글램핑은 ‘화려한·매력적인’이란 뜻의 ‘글래머러스(glamorous)’와 ‘캠핑(camping)’의 합성어로 텐트 안에 냉장고·TV 등 각종 편의 시설을 갖춘 야영 시설을 말한다.

 경찰이 공개한 폐쇄회로TV(CCTV)에 따르면 이날 오전 2시9분 이씨 등이 머물고 있는 높이 5m, 바닥면적 16㎡짜리 원뿔형 인디언 텐트 안에서 갑자기 불꽃이 일었다. 불은 3분 만에 면 재질로 된 텐트 전체로 옮겨붙었다. 글램핑장에는 텐트 2동이 더 있었으나 옮겨붙지는 않았다. 옆 텐트에 있던 박홍(43)씨는 “아이 우는 소리에 깨어 나가보니 텐트가 타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텐트 내부 전기 시설에서 불이 난 것으로 보고 있다.

 박씨는 맨발로 뛰어나가 관리인 김모(46)씨와 함께 텐트 안에 들어가 이씨의 차남을 구해냈다. 박씨는 “텐트 안 다른 사람들은 모두 쓰러진 상태였다”고 전했다. 박씨와 관리인은 소화기 3대를 가져와 불을 끄려 했으나 소화기는 작동하지 않았다. 호스도 짧았다. 이들은 결국 다른 캠핑객들과 함께 샤워장에서 물을 떠 와 불을 껐다. 소방관까지 출동해 25분 만에 불은 꺼졌으나 5명이 희생됐다.

 불이 난 글램핑장은 지난해 5월부터 김모(53·여)씨가 토지·건물주인 유모(63)씨로부터 펜션과 함께 임대해 운영해왔다. 펜션은 농가를 신축한다고 하고 지은 불법 건물로 확인됐다. 글램핑장은 강화군에 민박 또는 야영장으로 등록해야 하지만 아직 미등록 상태였다. 그래서 소방점검도 받지 않았다. 지난 1월 시행된 관광진흥법 개정시행령에 따르면 글램핑장·캠핑장 등 야영장은 적합한 등록기준을 갖춰 관할 시·군·구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유예기간이 오는 5월 31일까지여서 아직껏 등록을 하지 않아도 제재할 수 없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전국 야영장은 약 1800개로 추산된다. 이 중 제대로 등록하고 소방점검 같은 관리를 받는 시설은 97곳(5.4%)이다. 1700개 가까운 야영장이 안전점검 사각지대에 놓인 셈이다. 이창우 숭실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는 “캠핑장은 야생동물이 전선을 갉거나 가스 취사도구 때문에 큰 사고가 날 수 있다”며 “하루빨리 등록하고 안전점검을 실시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당수 캠핑장은 불이 난 강화군 글램핑장처럼 화재보험 등에 들지 않고 있다. 지난해 캠핑아웃도어진흥원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화재 같은 시설보험에 가입한 캠핑장은 42.3%뿐이었다. 차병희 한국캠핑협회 총재는 “한국은 오는 7월 말 전북 완주군에서 세계 캠핑·캐러배닝 대회를 개최하는 나라”라며 “시설 안전점검은 기본이고 개최국 위상에 걸맞게 캠핑안전지도사를 양성하는 등 체계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화=최모란·전익진 기자 moran@joongang.co.kr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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