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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565> 세계 갑부들의 서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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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서유진 기자

빌 게이츠, 워런 버핏, 마크 저커버그. 이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우선 세계적인 ‘갑부’입니다. 그러면서도 거금을 내놓은 ‘자선사업가’이기도 하죠. 셋은 고액 자산가들의 기부 모임인 ‘더 기빙 플레지(The Giving Pledge)’ 재단 회원입니다. 또 다른 공통점은 ‘책벌레’라는 겁니다. 자산가·기부광(狂)·독서광(狂)이기까지 한 이들이 콕 찍은 책이 무엇일까요. 부자들의 서재로 여러분을 안내합니다.

제3세계 책 탐독하는 게이츠

 자산 792억 달러(약 89조원)를 소유한 세계 최고의 부자이자 자선사업가인 빌 게이츠. 그의 블로그 ‘빌 게이츠 노트(www.gatesnotes.com)’에는 몇 년째 꾸준히 서평이 올라온다. 누적된 독후감만 130여 건. 문학, 경영, 과학 등 잡식성 독서를 즐기는 게이츠가 유독 여러 번 추천한 작가가 있다. ‘세상을 바꾸는 의사’ ‘21세기 슈바이처’로 불리는 폴 파머 하버드 의과대학 교수다. 폴 파머는 김용 세계은행 총재와 함께 비정부기구(NGO)를 설립해 20년 넘게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돕고 있다. 평소 에이즈·빈곤 퇴치에 관심이 많은 빌 게이츠가 파머의 책을 즐겨 읽는 건 어찌 보면 필연이다.

 게이츠는 『세상은 이렇게 바꾸는 겁니다 』·『권력의 병리학』·『지진 이후의 아이티 』·『에이즈와 비난』 등 폴 파머의 저서 10권을 추천했다. 『작은 변화를 위한 아름다운 선택』은 파머 교수가 직접 쓴 것은 아니지만 그의 경험담이 담긴 책이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인 아이티에서 헌신적으로 의료 활동을 펼친 이야기다.

 게이츠의 추천서 중엔 제 3세계 국가 현장에 뛰어들어 쓴 르포르타주가 많다. 『안나와디의 아이들』은 경력 20년의 베테랑 기자 캐서린 부가 4년간 인도 뭄바이의 빈민촌 안나와디에 머물며 체험한 빈곤과 불평등의 실상을 다룬 책이다. 『가난한 사람이 더 합리적이다』는 15년간 40여 개국의 빈곤 현장을 돌며 가난한 이들을 어떻게 도와야 효과적인지를 경제학자 두 명이 연구한 결과물이다. 현금을 퍼주기보다 영양제·교복 등 현물을 주는 게 더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실험을 통해 입증해냈다.

 게이츠가 추천한 문학서적 중에는 맨부커상 수상작가 마이클 온다체의 성장소설 『고양이 테이블』이 있다. 실론에서 영국으로 향한 배에 탄 11살 소년이 겪는 3주간의 항해를 그렸다. 『로지 프로젝트』는 미남이고 똑똑하지만 연애에는 서툰 유전학 교수가 아내 찾기 프로젝트를 시작하며 벌어진 이야기를 다룬다. 컴퓨터 과학자 그레임 심시언이 쓴 장편소설로 게이츠의 아내 멜린다가 먼저 읽은 뒤 남편에게 추천했다. 아시아 관련 서적도 눈에 띈다. 『덩샤오핑 평전』·『중국은 무엇을 생각하는가』 등이 대표적이다.

저커버그, 독서의 해 선포 … 중국 서적 관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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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세 젊은 나이에 334억 달러(약 38조원)를 보유한 청년 갑부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최고경영자(CEO) 역시 독서를 즐긴다. 그는 올해를 ‘독서의 해’ 원년으로 선포했다. 저커버그 CEO는 페이스북 사용자들에게 동참을 권하며 페이스북에 ‘책 읽는 한 해(A Year of Books)’ 페이지를 신설했다.

 2주에 한 권씩 문화·역사·기술 분야 책을 읽고 온라인으로 독서 토론도 벌이는 모임이다. 저커버그 북클럽 첫 번째 추천서는 모이세스 나임(Moises Naim)의 『권력의 종말(The End of Power)』이다. 베네수엘라 통상산업부 장관 출신이자 저널리스트인 나임이 전통 권력과 여기에 도전하는 신흥 권력 사이의 대결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한국에도 이번 달 번역본이 출간됐다.

 또 다른 추천서 『괴짜 사회학』은 컬럼비아 대학 사회학과 교수 수디르 벤카테시가 10년간 시카고 슬럼가를 드나들며 경험한 실상을 토대로 쓴 책이다. 저자는 마약 매매 갱단의 두목인 제이티(JT)와 만나 친구가 되면서 마약중독자·매춘부·포주·악질 경찰까지 다양한 인간 군상을 접한다. 『면역에 대하여(On Immunity)』은 논픽션 작가 율라 비스(Eula Biss)가 두 아이의 엄마로서 예방접종을 둘러싼 불신과 진실을 써내려 갔다. 지난해 뉴욕타임스(NYT)가 꼽은 베스트 북 10권에 들었다. 최근 추천한 서적은 애니메이션 회사인 픽사의 회장 에드 캣뮬(Ed Catmull)이 지은 『창의성(Creativity)』이다. 지난해 랜덤하우스에서 출간됐으며 한국에서는『 창의성을 지휘하라』로 번역됐다. 지난 18일 저커버그가 올해 들어 6번째로 추천한 책은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다. 패러다임이라는 용어가 처음으로 소개된 책이다. IT 기기에만 미쳐 살 것 같은 저커버그이지만 의외로 고전적인 독서를 즐긴다. 과거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가죽 양장본 책도 여러 권 갖고 있다”고 밝혔다. 고전에 대한 애정도 있다. 저커버그의 애장 도서 목록 중엔 고대 로마 시인 버질의 서사시 『아이네이드(The Aeneid)』도 포함돼 있다. 중국 관련서도 빼놓을 수 없다. 중국계 아내를 두고 있는 저커버그는 아내의 할머니와 소통하기 위해 중국어를 배웠고 지금은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까지 올랐다.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쓴 『중국의 통치』의 영문판 책이 저커버그의 책상에 놓여 있는 사진이 지난해 말 공개되어 화제를 낳았다. 그는 페북 직원들에게 이 책을 나눠 주며 중국 공부를 권했다.

버핏·게이츠가 권한 『경영의 모험』

 마크 저커버그와 빌 게이츠가 공통으로 추천한 책은 하버드대 진화심리학 교수인 스티븐 핑커의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다. 인류는 어떻게 악한 본성들을 억누르고 덜 폭력적인 세계로 나아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최근 이슬람국가(IS) 등에 의한 테러가 빈발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주목을 받았다.

 ‘오마하의 현인’ 이자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빌 게이츠가 모두 인정한 작가는 『경영의 모험(Business Adventures)』을 쓴 존 브룩스(John Brooks)다. 경영의 모험은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 기고됐던 기업 경영 사례 중 12개를 묶은 책이다. 기업운영을 하면서 때로는 성공할 수도, 실패할 수도 있지만 끈질기게 핵심가치를 찾는 ‘모험’을 멈추지 않는 이들의 도전기가 담겨 있다.

 이 책은 빌 게이츠가 워런 버핏을 처음 만났을 때 추천받은 책으로 유명해졌다. 포브스가 선정한 세계 부자 순위 1위(빌 게이츠)와 3위(워런 버핏)인 이들이 추천한 책이기 때문에 ‘억만장자의 바이블’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경영의 모험은 1971년 이후 절판됐지만 빌 게이츠가 팀까지 만들어 재출간을 도왔고 결국 존 브룩스의 아들을 찾아내 40여 년 만에 책을 살려냈다. 빌 게이츠는 이 책을 추천하며 “많은 것이 변했지만 근본적인 것(펀더멘털)은 변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생각은 튼튼한 기업, 가치 창조를 위한 규칙은 시대가 지나도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점, 그리고 기업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경영 계획을 실천하는데 도움이 되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이번 달 한국에도 번역서가 나왔다.

 래리 페이지 구글 최고경영자(CEO)와 피터 틸 페이팔 창립자가 동시에 주목한 작가도 있다. 가상공간 속 또 다른 자아를 의미하는 ‘아바타’를 창시한 닐 스티븐슨이 주인공이다. 닐 스티븐슨의 대표작은 『스노크래시(Snowcrash)』와 『다이아몬드 시대』다. 닐 스티븐슨은 과학 지식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풍부한 상상력을 겸비한 공상과학 소설을 쓰는 것으로 유명하다.

유토피아 책에 푹 빠진 피터 틸

 최근 방한한 페이팔 창업자 피터 틸(Peter Thiel)은 자산 22억 달러(약 2조4000억원)를 보유한 자산가이자 『제로 투 원(Zero to one)』의 저자이기도 한 ‘뇌섹남(뇌가 섹시한 남자)’이다. 그의 추천서 중에는 한국어 번역서가 드문 편이다. 눈에 띄는 추천서는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의 『뉴 아틀란티스(The New Atlantis)』다. 1627년 출판된 이 책에는 베이컨이 꿈꿔온 유토피아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다. 사유재산제가 지켜지고 기독교를 믿는 가족제도를 지닌 국가를 이상 국가로 상정했다. 재미있는 점은 피터 틸 역시 이상 국가를 꿈꾸고 실제로 그런 공간을 건설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피터 틸의 꿈은 바다에 인공 섬을 건설해 규제 없는 자유주의 국가를 만드는 것이다. 이런 계획에 뉴 아틀란티스가 영감을 줬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밖에 틸은 종교 인문학자인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쓴 『창세로부터 은폐되어온 것들(Things Hidden Since the Foundation of the World)』 등을 추천했다.

서유진 기자 suh.yo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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