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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TV의 탄생 … 1995년, 그 뒤 한류가 터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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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올해로 20주년을 맞은 케이블TV. 지난 13일에는 성대한 20주년 기념식이 열리기도 했다. 케이블TV가 출범한 1995년은 우리 대중문화 전반에 주요한 해다. ‘토토가’ ‘응답하라’ 열풍으로 자주 소환되는 90년대의 한복판에 있는 시기인 만큼 방송·미디어뿐 아니라 영화·음악 등 문화산업 전반의 새로운 토대가 이때 만들어졌다. 훗날 한류 열풍의 단초를 마련한, 대중문화산업의 원년이라 할 만하다. 과연 95년 우리 대중문화계에는 무슨 일이 있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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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케이블TV로 열린 ‘다매체 다채널’ 시대=95년 3월 1일 케이블TV의 개국은 ‘다매체 다채널’ 시대를 열었다. 뭉뚱그린 보편 취향의 지상파와 달리 특화된 시청층을 겨냥한 장르·전문채널이 등장했다. 영화·음악·교육·여성·애니메이션 등을 망라했다.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이 아닌 ‘내로캐스팅(narrowcasting)’이다. 이어 세계 최초의 게임채널인 온게임넷(2000), 새로운 유통문화를 선보인 홈쇼핑채널들도 등장했다. 속도감 있는 진행으로 유명한 우리 홈쇼핑채널은 전 세계 10개국에 진출하며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

 케이블채널을 통한 수준 높은 해외 드라마 열풍은 시청자 눈높이를 높였다. ‘프렌즈’ ‘CSI’ ‘섹스 앤 더 시티’ 등 미드 열풍이 이어졌다. 케이블 자체 제작물의 경쟁력은 tvN ‘막돼먹은 영애씨’(2007), ‘재밌는 TV 롤러코스터’(2009)가 기점이었다. 이어 2010년 시즌2에서 시청률 10%대를 돌파한 ‘슈퍼스타K’(M.net), 90년대 복고바람을 일으킨 tvN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 ‘미생’ 등 히트작이 쏟아졌다. ‘슈퍼스타K’는 중국에 포맷이 팔렸고 ‘로맨스가 필요해’는 케이블 드라마 최초로 일본 지상파 TBS에서 방영됐다. 드라마 ‘나인’도 미국 ABC와 리메이크 계약을 맺었다.

 2011년 종합편성채널의 개국은 유료 방송 경쟁력 도약의 결정적 계기가 됐다. JTBC가 선두에 섰다. 드라마 ‘아내의 자격’ ‘밀회’, 인기 예능 ‘히든싱어’ ‘비정상회담’ 등을 내놓으며 지상파를 위협했다. 고려대 미디어학부 김성철 교수는 “다양한 장르에서 지상파 프로그램의 성과를 넘어서는 역전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했다.

 케이블TV의 개막은 방송통신 융합을 선도하며 쌍방향 디지털 시대를 여는 거점이기도 했다. 김 교수는 “이제 케이블TV는 과감하게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OTT)에 투자하는 등 내수시장을 넘어 해외시장까지 공략하는 인터넷 기반의 종합 미디어로 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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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기업, 문화산업 본격 진출=케이블TV 개국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삼성(캐치원), 현대(현대방송), 대우(DCN) 등 대기업의 방송산업 진출이다. 케이블 1세대인 이들은 대부분 초기 사업 부진을 견디지 못하고 방송산업에서 철수했지만 문화콘텐트산업에 대기업이 뛰어드는 전기를 마련했다. 영화채널에 손댄 삼성과 대우를 중심으로 대기업의 영화 진출도 이뤄졌다. 주먹구구식 전근대적인 충무로 토착 자본과 달리 철저한 기획·마케팅·제작 시스템을 통해 한국 영화계의 체질 개선이 이뤄졌다.

 95년 출범한 삼성영상사업단은 99년 한국형 블록버스터 1호인 ‘쉬리’를 내놓았다. 한국영화 르네상스의 신호탄이 된 영화다. 아이러니하게도 삼성영상사업단은 ‘쉬리’를 끝으로 해체됐다. 제일제당은 95년 스티븐 스필버그, 제프리 캐천버그의 할리우드 제작사 드림웍스에 출자하는 한편 ‘모래시계’의 김종학 PD, 송지나 작가와 손잡고 제작사 제이콤을 공동 설립했다. 제이콤은 훗날 CJ그룹 영화사업의 모태가 된다.

 #한류의 발판 만든 90년대=95년 케이블 음악채널의 등장은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 시대를 열었다. ‘문화대통령’ 서태지와 아이들로 촉발된 10대 중심 댄스음악 붐을 한껏 고조시켰다. 뮤직비디오가 하나의 장르로 자리 잡았다. 이듬해인 96년 데뷔한 HOT는 아이돌 전성시대를 예고했다. 기획사의 철저한 제작·관리 시스템과 팬덤이 결합된 산물이다. 99년 HOT의 베이징 공연에서 ‘한류’란 말이 처음 나왔다. 2000년대 아이돌 K팝 한류의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95년은 SBS 드라마 ‘모래시계’의 해이기도 했다. 영화 못잖은 영상미학으로 주목받았다. 이 시기 ‘질투’(1992) 등 일련의 트렌디 드라마들이 새로운 영상어법을 선보이면서 국내 TV 드라마의 질적 전환이 급격하게 이뤄졌다. 당시 문화소비의 축으로 부상한 X세대의 아이콘 신은경은 94년 한 CF에서 면도하는 모습을 보이며 성적 경계를 허물었다. 문화의 경제적 효과에 주목하는 문화산업론도 이 무렵 등장했다. 94년 “할리우드 영화 ‘쥬라기 공원’의 흥행 수익이 1년간 자동차를 수출해 얻은 8억3000만 달러와 같다’는 정부 보고서가 나오면서 ‘영상이 미래 먹거리’라는 담론이 형성됐다.

 민성욱 백제예술대 교수는 “95년은 케이블TV 개국으로 인한 미디어 플랫폼의 변화, 콘텐트 수요 증가, X세대 등 새로운 문화소비자 등장, 대중문화 전반의 산업화 등이 맞물려 우리 대중문화 역사에 전기가 됐다”고 평했다.

양성희 기자 sh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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