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긋지긋한 '오늘 또 뭐 해먹지?'… 집밥을 부탁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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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9년차 주부인 홍진희씨가 잘 구워진 딸기 타르트 위에 슈거 파우더를 뿌려 마무리하고 있다(사진 왼쪽), 정은정씨가 얇게 썬 레몬에 설탕과 꿀을 넣어 레몬청을 만들고 있다(사진 오른쪽). [사진 나무수]

“따뜻하게 차로 드셔도 좋고, 탄산수를 넣어 에이드로 만들어도 맛있어요.” 인터뷰 시작 전, 주부 홍진희(35)·정은정(34)씨는 기자에게 작은 유리병을 건넸다. 리본으로 예쁘게 장식된 유리병 안에는 꿀에 절인 자몽 슬라이스가 켜켜이 쌓여 있었다. 손수 만든 자몽청이라고 했다. 두 사람에게 귀동냥으로 배운 레시피는 매우 간단했다. 깨끗하게 세척한 자몽을 얇게 썰어 꿀과 설탕에 버무리기만 하면 완성.

 집밥, 좀 ‘있어 보이게’ 말하자면 ‘홈 쿠킹(home cooking)’이 대세다. 최근 뜨고 있는 예능 프로그램들만 봐도 집에 있는 냉장고 속 재료만으로 고급 레스토랑 뺨치는 요리를 선보이는가 하면(JTBC ‘냉장고를 부탁해’), 직접 기르고 채취한 음식 재료들로 삼시 세끼를 해결(tvN ‘삼시세끼’)한다. 요즘 ‘홈 쿠킹’ 트렌드는 한 번을 먹더라도 제대로 된 한 끼를 차려 먹는 것. 홍씨와 정씨가 운영하는 SNS 카카오스토리 채널 ‘아내의 식탁’은 간단하면서도 아기자기한 아내들만의 ‘홈 쿠킹’을 보여준다.

 지난해 4월 처음 문을 연 ‘아내의 식탁’은 구독자 수 93만 명으로 카카오스토리 요리 분야 채널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매주 찌개류부터 파스타·디저트류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요리 레시피들이 올라온다. 모두 홍씨와 정씨가 직접 만들어보고 결정한 최상의 레시피다. 지난해 말에는 그동안 올렸던 레시피들을 엮어 책을 내기도 했다.

 홍씨는 결혼 9년차, 정씨는 결혼 4년차 주부다. 8년 전 같은 건물에서 각각 미술 선생님과 피아노 선생님으로 일하던 두 사람은 점심시간마다 도시락을 같이 먹으며 자연스럽게 친해졌다. 둘 다 요리하는 걸 좋아하고 아기자기한 생활 소품을 모으는 게 취미였다. 각자 SNS에 요리 사진을 올리다 ‘우리의 레시피를 좀 더 많은 사람과 공유해 보자’며 의기투합해 만든 게 ‘아내의 식탁’이었다.

 홍진희(이하 홍)=“카카오스토리 제목을 무엇으로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아내의 식탁’에서 시작해 ‘새댁밥상’ ‘밥줘’ ‘뭐 해먹지’ ‘오늘 뭐 먹지’….”

 정은정(이하 정)=“끝까지 경합한 게 ‘아내의 식탁’과 ‘새댁밥상’이었어요. 둘 다 제목에서 따뜻한 느낌이 나잖아요. 그런데 새댁밥상은 뭔가 새댁들만 와야 할 것 같고, 저희도 이제는 새댁이 아니기에(웃음) 결국 ‘아내의 식탁’으로 정했죠.”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내일은 뭐 먹지, 또 그 다음날은?’하며 반찬거리를 고민하던 주부들이 ‘아내의 식탁’으로 몰려들었다. 이 세상 모든 주부의 전형적인 고민거리를 두 사람이 시원하게 긁어준 셈이다. 사실 주방이라는 곳이 그렇다. 냉장고를 열 때마다 한숨이 나기도 하고, 설거지를 기다리는 그릇들을 볼 때마다 짜증이 솟구치기도 한다. 그 순간 주방은 지긋지긋한 공간으로 변해 버린다. 홍씨와 정씨에게도 그랬던 적이 있었다. 가정을 이루고 나만의 주방이 생겼다는 설렘도 잠시, ‘오늘 저녁은 뭐 해먹지?’하는 고민의 나날이 시작됐다. 정씨의 경우 이런 고민을 ‘샐러드’로 극복했다.

 정=“저는 매일 반찬 중 한 가지로 샐러드를 올려요. 샐러드에 드레싱이나 고명은 그때그때 조금씩만 변화를 주고요. 하루는 새싹 샐러드, 그 다음날은 연어 샐러드, 이런 식으로요. 그럼 일단 반찬 하나가 확보되는 거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고요.”

홍진희 주부의 추천 요리 “두부 스테이크요.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기 아주 좋은 메뉴예요. 으깬 두부에 각종 채소를 다져 넣어 함박 스테이크 모양으로 만들죠.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스테이크 옆에 구운 고구마나 감자 같은 것을 곁들이면 보기에도 예쁘고 영양까지 챙길 수 있어요.”

 홍=“주방이 지겨울 때는 그릇 같은 용품 하나만 바꿔도 기분 전환이 돼요. 같은 요리도 어떤 그릇에 올려놓느냐에 따라 다른 요리를 하는 기분이 들거든요. 아내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죠.”

 레시피 자문은 주로 ‘친정엄마’에게 한다. ‘참기름 조금, 설탕 적당히, 간장 쪼르륵…’ 계량 스푼과 컵 따위는 안 나오는 조언들이지만 그 안에서 맛의 실마리가 나오기도 한다. 엄마의 손맛을 제대로 흉내만 내도 그날의 음식은 성공이다. 그 맛을 내기까지는 남편들의 ‘희생 아닌 희생’이 뒤따른다.

 정=“남편이 가끔 괜찮은 레스토랑을 찾았다며 나가서 먹자고 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마다 ‘아니야, 이 음식은 나도 만들 수 있어’ 하며 말려요. 그리고 맛을 내는 데 성공할 때까지 남편에게 먹여보고 반응을 살펴요. 어떻게 보면 저희 남편들이 좀 안됐어요. 외식 한 번 마음대로 못하니까.”

 홍=“전 맛도 맛이지만 음식을 담는 그릇, 수저 세팅 하나하나에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써요. 그러다 보면 시간이 많이 걸려요. 제 식탁에 대한 자존심이라 포기할 수 없는 부분인데 가끔 남편이 조용히 와서 물어요. ‘여보, 근데 우리 밥 언제 먹어?’”

 그동안 올린 레시피만 150여 가지다. 그중에서도 가장 추천하고 싶은 요리는 무엇인지 물었다.

 홍=“두부 스테이크요. 편식하는 아이들에게 거부감 없이 다가가기 아주 좋은 메뉴예요. 으깬 두부에 각종 채소를 다져 넣어 함박 스테이크 모양으로 만들어요. 패밀리 레스토랑처럼 스테이크 옆에 구운 고구마나 감자 같은 것을 곁들이면 보기에도 예쁘고 영양까지 챙길 수 있어요.”

정은정 주부의 추천 요리 “밀푀유 나베는 만들기 쉬우면서도 남들 앞에서 생색내기 좋은 메뉴예요. 전골 냄비에 고기와 채소를 쌓은 뒤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 건데요. 따로 양념을 만들 일도 없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전골 냄비에 쌓기만 하면 돼요. 웬만한 요리 초보들도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는 요리죠.”

 정=“밀푀유 나베는 만들기 쉬우면서도 남들 앞에서 생색내기 좋은 메뉴예요. 전골 냄비에 고기와 채소를 쌓은 뒤 육수를 부어 끓여 먹는 건데요. 따로 양념을 만들 일도 없고 안에 들어가는 재료들을 깨끗이 씻어 전골 냄비에 쌓기만 하면 돼요. 웬만한 요리 초보들도 멋들어지게 만들 수 있는 요리죠.”

 끝내 카카오스토리에 레시피를 올리지 못한 요리도 있다. 의외로 ‘비빔국수’였다. 너무나 평범한 음식인 게 오히려 장애가 됐다.

 홍=“비빔국수는 저희만의 특별한 레시피를 찾기가 정말 어려웠어요. 사실 설탕이 좀 들어가야 맛있는데 최대한 설탕을 안 넣은 비빔국수를 만들어 보고 싶었거든요. 매실액도 넣어보고 이것저것 많이 넣어봤는데 전부 실패였어요. 좋은 레시피가 있으면 꼭 공유해 주세요.”

 홍씨와 정씨가 말하는 식탁은 음식을 차릴 ‘의무’가 아닌 ‘권리’가 있는 곳이었다. 식탁 위는 아내가 누릴 수 있는 ‘놀이’이자 ‘특권’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렇게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 모든 아내에게 주방이 좀 더 즐거운 장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정=“더 많은 아내들과 소통하고 싶어요. 저마다의 요리 비법들을 공유하고 고민을 나누다 보면 더 유쾌한 ‘아내의 식탁’이 펼쳐질 것 같아요.”

 홍=“결혼 전 남편에게 ‘내가 매일 아침밥은 꼭 챙겨주겠다’는 약속을 본의 아니게 한 거 있죠? 그 약속을 용케 지금까지 지켜오고 있어요. 전업주부인 저에게는 식탁에 예쁘게 잘 차린 식사 한 끼가 가족에 대한 제 사랑을 표현할 수 있는 제일 좋은 도구예요.”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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