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예산정책처 인력 부족 … 입법지원 한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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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당 김효석 의원은 우리나라의 의원 입법에 대한 지원 기능이 너무 약하다고 지적했다. 의원들이 예산정책처와 국회 상임위원회 전문위원실의 도움을 일부 받지만 의원당 평균 3명에 불과한 보좌 인력으로 법안을 만들다 보니 법안이 부실하고 전문성도 떨어진다는 얘기다. 심지어 당론과 배치되는 법안을 개별적으로 제출하는 경우도 자주 벌어진다.

이에 비해 미국의 의원들은 법안을 만들 때 예산정책처(CBO) 외에도 세제합동위원회(JCT).의회조사국(CRS) 등 당파를 초월한 전문기구로부터 충분한 지원과 조언을 받는다. 의원들이 구상한 개별적인 법안은 이 같은 전문기구의 조언을 통해 걸러지고 다듬어져 의원 개인의 이익과 국가 전체의 이익을 적절하게 조절하게 되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의원입법안이 충실해지기 위해서는 국회 예산정책처 등 입법보좌기구의 기능이 강화되고 정치적인 중립성이 보장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 당파 초월한 입법 지원기구="일부 의원은 정책을 정해 놓고 제한된 자원(예산)을 억지로 끼워 맞추는 경우가 있다. 예산과 관련된 법안은 정치적인 파워가 개입될 수밖에 없지만 객관적이고 전문적인 조언으로 이를 최대한 줄이는 게 우리 조직의 과제다."

지난달 21일 국회 예산정책처 주최로 열린 국제세미나에 참석한 멜리사 머슨 CBO 공보국장은 CBO의 역할을 이렇게 설명했다. 미국의 CBO는 의원이 예산이 소요되는 법안을 제출할 때 비용 추계와 타당성.장단점을 분석해 준다. CBO 처장은 정파를 초월한 중립적인 인물을 선출한다. 처장은 독립적인 인사권을 행사한다.

더글러스 해밀튼 CBO 거시경제정책 부국장은 "CBO는 의원들의 법안을 분석하면서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직접 어떻게 하라는 권고를 하지 않는다"며 "다만 장단점을 충분히 검토해 의원들이 스스로 판단하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CBO는 행정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할 권한이 있어 정부의 방대한 자료도 활용한다.

CBO의 객관성과 전문성은 미국의 재정정책에 막강한 영향력을 미친다. 지난달에는 부시 행정부가 감세를 추진하자 CBO는 행정부의 감세안이 통과될 경우 2015년엔 재정적자가 6400억 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경고해 제동을 걸었다.

JCT는 의원들의 조세법안에 대해 세수 감소, 비용대비 효과 등을 분석해 준다. 또 건당 100만 달러를 넘는 세금의 환급이나 면제에 대한 타당성을 검토해 준다.

◆ 의원 정책보좌진도 매머드급=미국 의회 의원들의 입법지원을 하는 인력은 개인보좌관, 상임위 보좌관, 의회 소속 기관 및 행정보조원까지 합하면 2만4000명에 이른다. 하원의원은 워싱턴의 의원회관 사무실과 지역구사무실 보좌관, 비서 등을 고용하는 비용으로 의원당 연 57만 달러를 지원하고 있다. 의원들은 이 돈으로 최고 18명까지 상근 비서나 보좌관을 고용할 수 있다. 그 외 4명까지 비상근 비서를 추가 고용할 수 있다.

상원의원의 경우 인구 500만 명 이하인 주는 100만 달러, 인구 2800만 명 이상인 주는 약 200만 달러의 행정.비서 고용수당을 받는다. 입법업무 직원수당은 입법업무를 수행할 비서를 고용하는 데 쓰이며 의원당 38만5000달러가 지급된다.

규모가 큰 캘리포니아나 텍사스주 상원의원은 50~70명의 보좌진을 둘 수 있다.

◆ 의원입법 지원조직 확대해야=우리나라도 2003년 국회 예산정책처가 출범, 예산이 들어가는 법안의 비용추계 등을 해주고 있다. 하지만 처리해야 하는 법안에 비해 인력이 모자라고 인사를 둘러싸고 정치성 시비에 휘말리는 등 적지 않은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예산정책처 인력 90명 중 비용추계를 하는 인원은 법안비용추계팀 5명에 세입세제분석팀 4명 등 모두 9명에 불과하다. 이들은 17대 국회 임기가 시작된 이후 1인당 월 평균 2.5건의 법안 비용추계를 했다. 미국 CBO에 비용 추계 업무 담당자(45~46명) 한 사람이 월평균 1.1건(2004년 기준) 처리한 것의 배가 넘는 수준이다. 미국에서는 CBO 외에 JCT에도 약 60명 정도의 전문가들이 의원들의 조세감면 법안을 분석해 주고 있다.

미국의 CBO처럼 예산정책처가 법안 분석에 필요한 자료를 정부에 요구할 권한이 없다는 점도 문제다. 특히 납세자료를 근거로 세수를 추계해야 하는 조세법안은 국세청 자료를 이용할 수 없어 비용추계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세 관련 의원입법안 가운데 세수 변동 내용이 포함된 법안이 적은 이유다.

따라서 개인의 이름과 전화번호 등 신상정보는 제외하고, 과세 분포 등 조세법안을 만들 때 참고할 수 있는 정보는 의원들이나 예산정책처에 공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초대 최광 처장이 임명된 지 8개월 만에 그만두는 등 예산정책처의 독립성에 대한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한나라당 윤건영 의원은 "현재 예산정책처는 정치적 압력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다"며 "처장의 장기적인 임기와 폭넓은 재량권을 보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철근.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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