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대기업 오너 몰리는 청담동 빌딩가 - 재벌가 회장님들의 유별난 청담동 사랑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이코노미스트] ‘명품 상권’으로 투자 수익률 높아 … 이익잉여금 부동산 투자에 활용

대기업 오너들이 투자 목적으로 청담동 일대 빌딩을 활발하게 사들이고 있다. 사진은 지난해 매일유업이 매입한 청담동의 한 빌딩.

재벌가 회장님들의 ‘청담동 사랑’이 유별나다. 일반인이라면 땅 한 평 사기 힘든 동네에서, 수백억원을 호가하는 빌딩을 척척 사들이고 있다. 대기업 오너와 계열 법인이 소유한 빌딩은 청담사거리와 학동사거리를 함께 끼고 있는 2개 블록에만 30여개. 도산공원을 품고 있는 옆 신사동 블록까지 합하면 40여개에 달한다. 대략적인 시가는 1조원 규모다. 현재 거래가 진행 중인 곳도 5개 이상이라고 한다. 부동산 경기는 나날이 나빠지고 있는데 빌딩 매집에 여념이 없는 회장님들. 그들은 과연 무슨 생각으로 청담동 빌딩 매입에 몰두하고 있는 걸까.

도산대로 북쪽은 신세계, 남쪽은 삼성이 매입 경쟁

우선 청담동의 대지주라 할 수 있는 곳은 신세계그룹이다. 이명희 회장은 1990년대 후반부터 이 지역에 전략적으로 접근했다. 청담동·신사동 일대는 지난 1996년 서울시가 패션 거리로 지정한 후 대한민국 최고의 명품거리로 성장했다. 이 회장은 청담동 일대 토지를 적극적으로 매입하는 한편 자사의 브랜드 매장을 전진 배치했다. 청담동 내에서도 패션 1번지라 불리는 곳은 갤러리아 백화점 명품관 맞은편의 압구정로 60길이다. 이 일대에는 ‘분더샵’ ’엠포리오 아르마니’ ’브루넬로 쿠치넬리’ 등 신세계 관련 브랜드가 빼곡히 들어서 있다.

압구정로 60길을 끼고 있는 청담동 78·79·82·83·89번지 일대 토지 및 빌딩도 현재 대부분 신세계 소유다. 이들 빌딩의 가치는 2000억원 안팎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신세계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13년에 550억원을 들여 이 지역 빌딩을 2개 더 매입했다. 현재도 새 물건을 물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신세계가 현재까지 청담동·신사동 일대에 매입한 빌딩은 신세계인터내셔널 명의 12개(20개 필지), ㈜신세계 명의 2개(3개 필지),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 명의 3개(3개 필지),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명의 1개(1개 필지) 등이다. 이마트도 지난 2012년 도산대로변 신사동 빌딩을 매입했다. 신세계는 이 밖에도 청담사거리에 약 1000㎡의 부지를 매입해 지하 4층, 지상 15층 규모의 신사옥을 올리고 있어, 그야말로 청담동 터줏대감으로 자리매김했다. 인근 공인중개사 관계자는 “신세계는 5~6년 전부터 업무용 빌딩을 다수 매입하는 등 거래가 꾸준히 이어져 왔고 일대 부동산 가격도 오름세”라며 “개인이 직접 사들이기보다 법인을 통해 매매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도산대로를 기준으로 북쪽이 신세계 영토라면 남쪽은 삼성 땅이다. 삼성은 원래 삼성동 한전부지 인근의 빌딩을 많이 갖고 있었으나 최근 4~5년 전부터 청담동으로 영역을 확장했다. 삼성생명은 지난 2012년 효성골프클럽이 있던 청담동 3번지 일대 9개 필지(약 3300㎡)를 대거 사들였다. 이래빌딩·유담빌딩 등 빌딩을 5개나 끼고 있던 부지다. 현재는 기존 빌딩을 모두 헐고, 개발을 준비 중이다. 삼성생명은 아직 명확한 토지 사용 계획을 밝히지 않았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호텔 등 수익형 부동산 개발에 쓰지 않겠느냐”고 추측한다. 분당선 압구정로데오역에 위치한 청담동 79-15번지 빌딩은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개인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 이 회장은 지난 2009년 이 땅을 시세의 2배 값에 사들였고, 패션브랜드인 ‘토리버치 플래그십 스토어’를 세웠다. 과거 현대스위스상호저축은행이 있던 바로옆 78-6번지 빌딩도 이 회장 개인이 매입했다.

최근에는 대상그룹도 청담동에 빌딩 매입에 적극적이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의 장녀인 임세령 대상 상무는 지난 2010년 4월 청담동 85번지 토지와 빌딩을 약 260억원에 사서 지하 2층 지상 6층으로 신축했다. 이 빌딩에는 대상에이치에스가 투자한 레스토랑 등 고급 외식 업체들이 다수 입주해 있다. 이 빌딩은 유동 인구가 많은 학동사거리와 갤러리아 백화점 사이에 위치해 있고, 인근에 고급 외식 업체들이 많아 집적 효과를 누릴 전망이다. 임 상무는 또 최근 매물로 나온 청담동 97번지 M빌딩도 매입할 목적으로 접촉 중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 빌딩은 국민은행과 개인이 공동으로 보유하고 있는데, 국민은행 명의로 등기된 지하 및 지상 4~8층 부분이 매물로 나왔다. 현재 이곳은 신세계인터내셔널이 임대해 사용하고 있는데, 바로 옆 신축 중인 사옥이 완성되면 빠질 예정이라 국민은행도 이를 매각할 계획이다. 이 밖에도 김정완 매일유업 회장은 최근 도산대로 75길에 위치한 빌딩(청담동 99-5)을 법인 명의로 매입해 폴바셋 등 자사 외식 브랜드를 입점시켰다.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의 장녀인 신영자 롯데 장학재단 이사장도 최근 도산공원 앞 빌딩(신사동 651-1)을 자신이 운영하는 에스앤에스인터내셔날 명의로 175억원에 매입했다. 여기에는 현재 화장품 브랜드인 SK-ll가 들어섰다.

3년 새 가격 2배 치솟은 곳도

대기업 일가가 이처럼 청담동에 몰려드는 이유는 무엇보다도 높은 투자 가치에 있다. 청담동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부촌으로 경기와 무관하게 소비가 꾸준히 이뤄지는 곳이다. 고소득층의 활발한 소비 활동에 발맞춰 의류·잡화·요식업 등 고급 매장들도 줄지어 입점 대기 중이다. 시장의 수요를 매장 공급이 못 따라가다 보니 시세와 상가 임대료도 많이 올랐다. 도산대로변 토지의 경우 지난 2007년 3.3㎡당 시세가 1억원에 못 미쳤던 것이 최근에는 1억5000만원 안팎까지 치솟았고, 까르티에 매장이 있던 빌딩의 경우 3.3㎡당 3억원선에서 거래됐다. 신영자 이사장이 사들인 빌딩의 경우 2007년 98억원 하던 것이, 2010년에는 175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가격 상승으로 임대료가 높아지자 이를 견디지 못한 고급 미용실·쥬얼리숍·웨딩숍 등이 청담대로사거리나 영동대교 남단 등지로 이탈한 덕분에 상권도 확대돼 앞으로 성장이 기대된다.

재벌가 입장에서는 경기 악화와 소비 심리 부진 등으로 기존의 사업을 확장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익잉여금을 이 지역 부동산에 묻을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건물주의 매도 의사가 없을 경우 시가보다 10% 정도 비싼 값을 쳐 줄 정도다. 실제로 이마트가 사들인 신사동 빌딩의 경우 시세는 270억원이었는데, 이마트가 사들인 가격은 300억원으로 30억원 비싸게 샀다. 이는 미국의 대표적인 부동산 재벌인 도널드 트럼프의 ‘사람이 몰리는 지역은 수요가 꾸준하게 발생하며, 부동산값도 자연스럽게 오를 수밖에 없다’는 투자 철학과도 맞닿은 대목이다. 특히 지난 4~5년 전부터 재벌가의 청담동 빌딩 매입에 적극적이란 소식이 전해지면서 호가 역시 크게 올랐다. 오동협 원빌딩부동산중개 이사는 “대기업들이 유동 자산이 늘어나다 보니 부의 상권이라는 청담동에서 빌딩을 많이 구입하고 있다”며 “시세보다 다소 비싸게 구입하더라도, 일단은 사두자는 기류가 강하다”고 최근 분위기를 전했다. 아울러 앞으로 위례신도시를 잇는 지하철 ‘위례-신사’ 노선의 역이 생길 경우 유동인구 증가 등의 수혜도 기대된다.

계열사·매장 입점시켜 수익 올리기도

사실 대기업 오너들 입장에서는 빌딩을 얼마에 사든 별로 손해 볼 것 없는 장사다. 개인 명의로 빌딩을 사더라도 법인 사무실이나 매장 등을 입점시키면 꾸준히 수익을 올릴 수 있어서다. 실제로 이건희·이명희·임세령 등 오너 일가가 가진 빌딩에는 각각 계열 및 관계사 매장이 입점해 있고 임대료는 고스란히 건물주에게 들어간다. 도산대로에 위치한 지하 2층, 지상 6층 규모의 한 빌딩의 경우 한 달 임대 수익만 1억원에 달한다. 오동협 이사는 “임대인들의 가장 큰 고민은 공실인데, 재벌가가 빌딩을 매입하면 계열사를 통해 이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를 두고 법인 자산을 개인에게 옮기는 합법적으로 자산 승계 방식이라는 해석도 나온다.

용적률·건폐율 규정 변화도 재벌가의 ‘청담동 러시’를 부채질했다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지난 2012년 8월 노선상업지구 등 2개 이상의 용도가 있는 땅에 대해 가중평균으로 용적률을 적용하는 내용의 국토계획법 개정안을 시행했다. 이전까지는 토지에 상업용지와 주거용지가 혼재할 경우, 비율이 높은 쪽 용도의 용적률을 모든 토지에 적용해줬다. 일반 상업용지의 용적률은 800%, 3종 일반주거용지는 250%인데, 상업용지 비중이 크면 일반주거용지의 용적률도 800%로 해 준 것이다. 이 때문에 주거지구 비중이 큰 땅을 가진 소유주는 주거용지 일부를 잘라내는 이른바 ‘분표’ 행위를 통해 상업지구 비중을 높여 용적률을 키우는 꼼수를 부려왔다. 정부는 이런 행위를 난개발의 원인으로 지목하고, 이를 가중평균 방식으로 바꿔 용지 비중의 가중평균값을 산출해 용적률을 정하도록 했다. 이러자 법 시행전에 빌딩을 사자는 매수 심리가 폭발했고, 2012년 무렵 재벌가의 빌딩 매입도 활발해졌다는 분석이다. 이 때문에 법 시행의 유예기간인 2년이 지난 2014년 8월부터는 용도가 섞인 땅보다는 100% 상업지구인 곳을 중심으로 매매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한 부동산업체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용적률이 과거보다 불리해진 측면이 있지만, 오히려 토지의 옥석이 명확히 구분됐다”며 “브랜드 가치를 올리고자 하는 기업과 재벌 일가의 투자가 앞으로도 활발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글=김유경 이코노미스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