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뇌 스스로 치료하게 하라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뉴스위크]베이비붐 세대가 노년에 접어들면서 다발성경화증 치료법을 찾기 위한 연구가 뜨거워진다

주사바늘이 등을 찌르자 리처드 M 코언(66)이 몸을 앞으로 기울인다. 바늘 끝이 척주(spinal column) 쪽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자 구시렁거린다. 하지만 악의는 없다. 어쨌든 처음 하는 일은 아니니까. 우리는 미국 맨해튼 57번가 서쪽 끝에 있다. 길 건너편에는 CBS 스튜디오가 자리 잡았다. TV 리포터이자 제작자였던 코언이 1979년 전설적인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와 함께 일했던 곳이다. 2년 뒤 그의 뒤를 이은 댄 래더와도 팀을 이뤘다.

사건이 터지면 지구상 어느 곳이든 기자들이 찾아가던 시절 코언은 세계 곳곳을 돌아다녔다. 1981년에는 폴란드에서 솔리대리티(연대) 노조의 부상을 취재했고, 1982년 베이루트에서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 소식을 전하고, 이어 엘살바도르 내전 현장에 뛰어들었다. 그는 그동안 한 가지 비밀을 안고 있었다. 바로 다발성경화증(multiple sclerosis, MS)이다. 미국인 40만 명이 앓는 퇴행성 신경질환이다. 코언은 이를 “중추신경계 고속도로 상의 끔찍한 연쇄충돌”로 표현한다. 신경을 둘러싼 미엘린이라는 지방 절연체가 벗겨지는 것이다. 미엘린 막이 마모되면 신경이 전기 신호를 제대로 전도할 수 없어 일단의 신경 및 신체적 증상이 나타난다. 일례로 나중엔 코언의 걸음걸이가 대단히 불안정해져 사람들이 그가 술 취했다고 단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코언은 25세 때 MS 진단을 받았다. 워싱턴 DC에서 거주하면서 공영방송 PBS의 장애 관련 다큐멘터리를 제작 중이었다. 편집실 동료들에게 줄 커피를 내리던 중 포트가 손에서 미끄러져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조각났다. 별일 아니려니 생각하고 넘어갔는데 그날 오후 길을 걷던 중 몸의 균형을 잃고 앞으로 휘청했다. 크게 놀란 그는 집으로 돌아가 맥주를 꺼내 들었다. 소파에 앉을 때 다리에 이상하게 감각이 없었다. 내과 의사인 아버지는 코언의 증상을 듣자마자 “다발성경화증인 것 같다”고 했다. 아버지도 같은 병을 갖고 있었다. 코언의 친할머니도 마찬가지였다.

“진단결과를 알리는 전화가 지극히 형식적이었다”고 코언은 1973년 MS 확진 받았던 날을 2000년 뉴욕타임스에서 그렇게 돌이켰다. “치료 방법이나 도움될 만한 조언은 전혀 없었다. 홀로 아무 말 없이 앉아 있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내가 찾아간 신경과 의사 모두 몇몇 신약 말고는 별다른 대안이 없었다. 팔을 뻗었는데 손에 잡히는 게 없었다.” MS 진단을 받은 다른 사람들처럼 코언도 두뇌 기능이 언젠가는 정지하게 되는 암담한 현실에 맞닥뜨렸다.

코언은 이제 은퇴했다. 아직도 머리 숱은 많지만 완전히 백발이다. 지팡이를 짚고 다니며 목소리가 떨린다. 왼쪽 귓볼의 귀고리가 마음만은 청춘임을 암시한다. 뇌에 병이 심각해지고 있음은 잘 알지만 그의 정신은 아직 굴복하지 않았다. 하지만 평생 이미지를 관리하며 살아온 그에게 어쩌면 무엇보다 감당하기 힘든 현실은 따로 있다. 시력을 거의 잃었다는 사실이다. 2004년 펴낸 회고록에는 ‘허를 찔리다(Blindsided)’는 제목이 붙어 있다.

우리는 그의 직장이었던 CBS 스튜디오 건너편에서 만났다. 하지만 코언이 과거를 추억하려 그 장소를 선택한 건 아니었다. 우리가 찾은 곳은 뉴욕 티슈 MS 리서치 센터였다. 사우드 A 사디크 박사가 창안한 줄기세포 치료의 1차 등록 환자 20여 명 중에 코언도 들어 있었다. 그는 한 세미나에서 사디크 박사를 만났다. 치료법은 아직 초기 단계다. 대상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신경 전구세포(neural progenitors)’로 변환한다. 환자 척수액에 신경 전구세포를 주사하면 결과적으로 두뇌의 수초(myelin sheaths, 신경섬유 주위를 둘러싼 피막)를 복원할 수 있다. 코언은 저서에서 뇌를 ‘목의 바로 위쪽에 자리 잡은 별세계(that exotic place just north of the neck)’라고 묘사했다.

코언은 달인(Journeyman)이라는 블로그에 자신의 MS 투병기를 올려 왔다. 사디크 박사에게서 받은 첫 치료가 너무 견디기 힘들어 ‘(고문을 금지한) 제네바 협약 위반’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그런 고통이 따르긴 해도 임상실험은 안전한 듯하다. 하지만 효과는 아직 미지수다. 신경줄기세포연구소의 샐리 템플 박사는 그 치료법에 비판적이다. “이들 세포가 없어진 신경세포를 보충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했다. 채취한 신경 전구세포가 몸속의 토박이 세포와 똑같지는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40년이나 자신의 두뇌와 싸워 온 코언은 그런 모험도 감수할 작정이다. 긴 주사기에 긴 시일이 걸릴지라도 말이다.

사디크 박사의 실험은 뇌 구조에 영향을 미치는 신경장애를 이해하기 위한 더 광범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베이비붐 세대가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MS, 알츠하이머병(미국인 환자 500만 명), 파킨슨병(100만 명) 같은 장애로 쓰러지는 사람이 갈수록 늘어날 전망이다. “신경장애가 증가세를 보일 것”이라고 보스턴에 있는 브리검 여성병원(Brigham and Women’s Hospital) 신경질환연구소의 공동소장인 데니스 J 셀코 박사는 예상했다.

셀코 박사는 앤 롬니 신경질환 연구소(Ann Romney Center for Neurologic Diseases) 공동 소장으로 취임할 예정이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부인인 앤 롬니가 5000만 달러를 기부할 의사를 밝혔다. 앤은 1990년대 후반 MS 진단을 받았다. 그녀의 오랜 신경과 주치의인 브리검 여성병원의 하워드 L 와이너 박사가 연구소 공동소장을 맡게 된다. 이사진의 면면을 보면 두뇌질환은 정치색을 모른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조셉 P 케네디 3세 매사추세츠주 하원의원과 첼시 클린턴의 배우자 마크 메즈빈스키 같은 골수 민주당 소속뿐 아니라 미트 롬니, 폭스 뉴스 진행자이자 MS 환자인 닐 카부토 등의 저명한 공화당원이 포함된다고 알려졌다. 또한 리처드 코언의 부인인 NBC 방송 토크쇼 진행자 메리디스 비에이라도 이사로 선임된다.

치료법 연구사업은 두뇌를 이해하기 위한 더 광범위한 과업이다. 백악관이 ‘원대한 도전과제’ 중 하나로 간주해 연방 연구기금 중 약 1억 달러를 배정했다. 이 과업이 추진되기까지 오랜 시일이 걸렸다. 오랫동안 일종의 ‘치료 허무주의(therapeutic nihilism)’가 두뇌 연구의 발목을 잡았다고 셀코 박사는 설명한다. 지식결핍에서 비롯된 무력감으로 과학자들의 연구 의욕을 꺾어 놓았다. “내가 다니던 메디컬 스쿨의 우리 반에서 신경학을 선택한 사람은 나 한 명뿐이었다”고 그가 돌이켰다.

도둑이 든 건 알지만 막지는 못한다

아직 초기단계인 줄기세포 치료법은 대상자의 골수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 실험실에서 ‘신경 전구세포’로 변환하는 방법이다.

1868년 프랑스 병리학자 장 마르탱 샤르코가 다발성경화증(la sclerose en plaques)을 묘사했다. 수초 손상으로 일어난 병변(병으로 인한 변화)의 축적, 그로 인해 아래쪽 신경인 미세섬유(일명 축삭)가 입는 피해, 그리고 그에 대한 반응으로 생기는 흉터다. 다른 학자들도 MS가 두뇌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챘지만 그것을 독자적인 질병으로 제대로 이해한 학자는 샤르코가 처음이었다. 종종 신경학의 아버지로도 불리는 그는 루게릭병으로 더 잘 알려진 근위축성측삭경화증(amyotrophic lateral sclerosis, ALS)도 발견했다.

그 뒤 150년 사이 우리는 MS에 관해 많이 알게 됐다. 셀코 박사에 따르면 “전형적인 자가면역 이상”임이 밝혀졌다. 백혈구 세포(정확히 말해 T 림프구)가 통상적으론 침투 불가능한 혈액-뇌 장벽(blood-brain barrier)을 뛰어넘는다. 신경을 감싼 지방질 수초를 잠식해 들어가 메마른 반점을 남긴다. 이는 두뇌 촬영에서 MS의 뚜렷한 징후다. MS의 유전율(heritability, 유전적 변이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비율)이 크게 높지 않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주조직적합성복합체(major histocompatibility complex)라는 면역 유전자 군에 뿌리를 둔 유전적 구성요소도 있다. 하지만 다른 수십 종의 유전자가 관련됐을 가능성도 있다. 환경도 영향을 미친다. 비타민D 결핍이 위험요인으로 간주된다. 적도에서 멀리 거주할수록 MS에 걸릴 가능성이 더 크다. 흡연자, 그리고 전염성 단핵구증(infectious mononucleosis, 바이러스 감염질환)이 있는 사람도 고위험군이다.

일부 두뇌 질환(예컨대 자폐증)의 메커니즘은 여전히 상당부분 베일에 가려 있다. 하지만 MS가 무엇을 어떻게 하는지 적어도 일부는 알려졌다. 문제는 그렇다고 그 병의 피해를 막기가 조금이라도 더 쉬워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적어도 일정 부분 대다수 MS 병변에 아무런 증상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누군가 MS 진단을 받을 무렵엔 이미 상당한 피해를 입은 뒤다. 두뇌 곳곳에 병변이 퍼진 상태다. 도둑에게 집을 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지만 그런 오싹한 인식이 도둑의 2차 침입을 막지는 못한다.

미트 롬니 전 매사추세츠주 주지사 부인인 앤 롬니는 1990년대 후반 다발성경화증 진단을 받았다.

그 뒤 신경과 의사가 크게 불리한 입장에서 필사적으로 실마리를 찾는다. “MS가 면역 질환이라면 면역 지표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미국 내 대표적인 MS 권위자로 손꼽히는 와이너 박사가 말했다. 그는 간단한 혈액검사로 식별할 수 있는 생체지표의 탐색을 가리켜 미래 MS 연구의 “주요 개척지 중 하나”로 불렀다.

MS는 늦게 알아차리는 경우가 많다. 특히 대다수 환자가 나빠졌다 좋아지기를 반복하는 재발-완화형(relapsing-remitting) MS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 회복기가 없는 더 중증의 1차 진행형(primary progressive form, 처음부터 점진적으로 진행하는 형태) MS를 가진 사람은 10%선이다. 초기 증상을 거의 알아차리지 못할지도 모른다. 팔다리의 무감각증, 머리를 앞으로 숙일 때 척추를 따라 일어나는 전기 쇼크(신경학에서 레미테 징후로 불리는 느낌) 등이다. 그러나 혹이나 출혈은 없다. 그리고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병이 재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재발하는 건 분명하다. MS는 만성적이지만 치명적이지 않기 때문에 코언은 “고통의 정도가 약하다”고 회고록에 썼다.

이 같은 장애는 보통 간헐적으로 은밀하게 진행된다. 건강염려증 환자(hypochondriac)도 모르고 지나칠 정도다. 그것이 이 질병의 불행한 측면이다. MS 치료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느냐에 조기 개입이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타와대 신경학자 마크 S 프리드먼 박사의 연구 결과다.

와이너 박사 연구팀은 MS의 존재를 알릴 수 있는 잠재적인 생체지표를 찾아냈다. 순환 혈액 중의 마이크로RNA가 한 가지 유망한 인자다. MS 환자의 눈물에는 세르핀 A3라는 단백질 농도가 높다는 사실을 제네바대 과학자 신디 샐비스버그 박사가 알아냈다. 그러나 대규모 실험을 통해 이들 또는 다른 인자가 타당한 생체지표임을 확인해야 한다. 그때까지는 커피잔을 떨어뜨리거나 지속적으로 다리에 마비가 와야 뭔가 크게 잘못됐다는 인식을 갖게 된다.

모두가 추구하는 혁신적 발견은 미래의 재발을 예방할 뿐 아니라 뇌를 고치는 치료법이다. 진정한 의미에서 최초의 MS 치료법은 1993년 등장했다. 인터페론이라는 약물군에 속하는 베타세론이다. 열성 T 림프구가 서로 소통하는 통로를 차단하고 뇌-혈액 장벽을 뛰어넘지 못하도록 하는 화합물이다. 이들은 MS의 진행을 늦추고 어쩌면 증상까지 완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현재 진행중인 피해를 없애지는 못한다. “원상 복구하거나 치료 방법은 없다”고 브리검 여성병원의 신경과 의사 로히트 박시 박사가 설명했다.

진단은 하되 치료는 없다

손놀림 테스트는 다발성경화증의 초기 발견에 유용하다. 다발성경화증이 진행될수록 두뇌 불량 조직이 신경계를 점차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메디컬 스쿨의 새 캠퍼스에서 캘리포니아대(샌프란시스코) 아리 J 그린 박사를 만났다. 그는 남아공 출신의 혈기왕성한 자칭 ‘와이너의 손자’다. 캘리포니아대에서 그의 멘토는 스티븐 L 하우저 박사다. 하우저 박사는 그에 앞서 와이너 박사에게 사사 받았다. MS 연구계가 예전보다 커졌을지 모르지만 아직 여전히 좁은 바닥인 모양이다.

그린 박사는 단순히 병을 저지하는 데 그치지 않고 치유하려 애쓴다. 캘리포니아대 동료인 조나 R 챈과 다른 여러 협력자와 함께 수초를 만들어내는 희소돌기아교세포(oligodendrocytes)라는 세포를 자극하는 방법을 찾으려 애쓴다. MS로 인해 벌거벗겨진 축삭을 복원하려는 목적이다. 이들은 뉴욕의 사디크 박사처럼 줄기세포를 주사하는 대신 신체에 자극을 줘 스스로 그런 기능을 할 수 있게 만든다. 지난해 8월 그린 박사는 챈을 비롯한 동료들과 함께 ‘네이처 메드슨(Nature Medicine)’에 연구 논문을 발표했다. ‘다발성경화증의 치료법을 위한 고속대량스크리닝(high-throughput screening, 동시에 다수의 물질 분석을 고속으로 수행하는 방법) 플랫폼으로서 마이크로필라 정렬’이라는 제목이다.

제목은 거창하지만 전제는 간단하다. 합성 유리 피라미드 구조물이 배양접시에 점점이 배열된다. 피라미드는 막이 벗겨지지 않은 신경 부위 역할을 한다. 피라미드 구조물들은 희소돌기아교세포와 강제로 짝 지워진다. 그 뒤에 잠재적으로 마법의 약이 등장할 차례다. 그린 박사와 챈은 어떤 화합물이 희소돌기아교세포를 자극해 피라미드 구조물을 수초로 감싸도록 할 수 있는지 알아내고자 했다. 접시에 1000가지 분자를 주입한 다음 수초 고리의 두께를 측정했다. 클레마스틴이라는 시판 항히스타민제만큼 효과가 큰 화합물은 없음을 알아냈다. 봄철 알레르기 시즌 중 흘러내리는 콧물을 치료하기 위해 복용하는 바로 그 약이 두뇌 재생에 중요한 역할을 할지도 모른다.

물론 아직도 많은 연구가 필요하다. 클레마스틴은 사람이 복용하기에 안전할지 모르지만 그렇다고 효과적인 MS 치료법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린 박사는 희망적이다. 그리고 봄에는 일차적인 결과를 얻으리라고 예상한다. 몇몇 숙제가 아직 남아 있음을 시인했다. 그는 자신의 방식이 사디크 박사의 치료법보다 더 세련됐다고 믿는다. 하지만 시험관 실험 결과가 인체 대상 실험에서도 재현될 수 있을지는 확신하지 못한다.

간헐적인 재발-완화 단계를 넘어 진행 단계에 들어선 MS의 저지 방법을 연구하는 학자들도 있다. 두뇌의 퇴행이 꾸준한 속도로 계속되는 단계다. “진행성 MS에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고 리오 메이요가 설명했다. 5년 전 와이너 박사 연구소에 합류한 젊은 이스라엘 신경과학자다. 그는 코로 흡입하는 백신을 연구 중이다. 면역체계의 자체 조절 능력을 강화하려는 의도다. 그의 연구가 성공한다면 주사바늘이나 장시간의 수액주입은 없어지게 된다. 코의 점막내층에 살짝 뿌리기만 하면 그만이다. 항체들이 거기서부터 면역체계로 이동해 중추신경계에 대한 공격을 저지한다.

내가 만난 다른 과학자 대다수와 마찬가지로 메이요는 상당히 낙관적이면서도 확신은 전혀 없다. 어쨌든 두뇌는 쉽게 비밀을 털어놓지 않으니까.

2002년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열린 동계 올림픽 때 올림픽 성화가 도착했다. 앤 롬니도 일정 구간 성화 봉송 주자로 뛰었다. 남편 미트 롬니가 도시의 올림픽 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었다. 앤은 성화를 300여m 정도 봉송했다. 하지만 획기적인 여정이었다. 그로부터 4년 전 재발-완화성 MS 진단을 받을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내는 앞으로 휠체어를 타게 될 것으로 예상했다”고 2012년 여름 남편 롬니가 CNN에 말했다. 런던 올림픽이 막 시작되려던 참이었다.

성화 봉송은 앤의 투병에서 전환점을 예고했다. “그때 내가 건강을 회복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고 앤 롬니 신경질환 연구소 기금으로 5000만 달러를 조달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직후 앤이 말했다.

앤은 자신이 “상당히 활동적이고 건강한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상당한 수준의 승마 선수였고 다섯 아들을 키웠다. 그녀의 첫 증상은 흔하고 대수롭지 않았다. 오른쪽 다리에 마비가 왔는데 신경압박(pinched nerve)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 다른 증상이 나타났다. 균형 감각이 없어지고 피로감이 몰려왔다. 안과의사인 오빠 제임스 A 데이비스에게 증상을 설명했다. 그는 희한한 조언을 했다. “신경과에 가봐야겠다.”

앤은 보스턴의 대형병원을 찾아갔다. 거기선 “진단이 명확했다.” 하지만 그래도 긴박감은 거의 없었다. “머리를 한번 치고 정말 심할 때는 전화하세요.” 그녀는 거기서 받은 치료가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이 돌이켰다. “그게 다였다.” 코언은 회고록에서 그런 접근방식을 가리켜 “진단 후 안녕(diagnose and adios)”으로 불렀다.

“내 인생이 완전히 끝났다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고 앤이 말했다. 처음 진단을 받은 두 달 뒤 친구의 조언으로 와이너 박사를 찾아갔다. 그는 즉시 스테로이드 치료를 시작했다. 병의 진행을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미 그녀의 두뇌에 퍼져나가는 병변에는 아무런 대책도 없었다. 그뒤 4~5년 동안 “외줄타기 인생을 살아왔다.” MS 진행은 멈췄지만 “언제나 먹구름이 머리 위에 드리워져 있다”고 그녀가 말했다.

내가 앤과 인터뷰하던 날 그녀의 조카딸이 알츠하이머 관련 합병증으로 세상을 등졌다. 여러 모로 여전히 MS보다 덜 알려진 질병이다. 그 두 가지 질병 외에도 앤 롬니 신경질환 연구소는 ALS, 파킨슨병, 뇌종양에 초점을 맞춘다. 뇌종양은 다른 암보다 신경질환과 더 많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다.

“향후 10년 사이 몇몇 돌파구가 마련될 듯하다”고 앤이 말했다. “정말 그렇게 믿는다.”

앤은 운이 좋았다. 몇몇 미국 최고 수준의 의술이 그녀의 MS를 막아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MS의 먹잇감은 그녀 말고도 많다. 이제야 다발성경화증의 첫 떨림, 첫 마비, 의심스러운 찌릿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도 다시 달릴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줘야 한다.

글=알렉산드르 나자리안 뉴스위크 기자, 번역=차진우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