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로 찾아가기] 큐레이터, 전시 기획만 할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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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마 살롱’‘린다 매카트니 사진전’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각각 서울시립미술관·대림미술관·국립중앙박물관에서 하고 있는 전시회다. 이뿐 아니다. 전국 950여 개 박물관과 미술관에서는 각양각색의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전시를 기획하고 총괄적으로 책임지는 사람이 큐레이터다. 대부분 사람들은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도슨트(전시해설자)와 헛갈리거나 TV드라마나 영화에서 비춰지는 것처럼 우아한 직업이라고 생각한다. 청소년 중에는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른 채 막연히 선망하기도 한다. 큐레이터가 하는 일은 뭔지, 큐레이터가 되려면 어떤 능력이 필요한지 알아봤다.

작품을 수집·연구·관리하는 사람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연구·관리하는 사람이다. 국내에서는 큐레이터 대신 학예연구사라고 부르기도 한다. 근무하는 장소에 따라 미술관 큐레이터, 박물관 큐레이터, 독립 큐레이터 등으로 구분하는데 해외에서는 담당 업무에 따라 아키비스트(기록연구사), 컨서베이터(소장품 보존·처리), 레지스트라(작품 대여·구입), 에듀케이터(교육 담당) 등으로 더 세분화하기도 한다. 국내에서는 큐레이터의 업무를 전시기획팀·교육팀·작품관리팀·보존과학팀 등 팀 단위로 나눠서 운영하는 곳이 대부분이고, 규모가 작을 때는 한 사람이 동시에 여러 분야 업무를 담당해야 할 때도 많다.

 업무의 핵심은 전시회를 기획하고 완성하는 일이다. 크게 전시기획과 전시준비, 전시관리 등으로 나뉜다. 기획은 전시 주제와 장소·규모·일정·기간·예산 등을 정하고, 작가와 작품 등을 섭외하는 전 과정을 포함한다. 전시회 종류나 규모에 따라 업무 형태도 천차만별이다. 주제와 소개 작품에 따라 대중의 호응은 달라지므로 기획 단계부터 철저한 사전 조사와 연구가 필요하다.

 해외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작품을 대여해 전시회를 여는 게 진행 과정이 더 복잡하고 까다롭다. 해외에 있는 담당자와 논의해 전시 작품을 고르고, 공간 구성과 작품 진열 방식에 대해 상의하고, 보험가입과 운송방식 등을 정하고, 수익을 어떻게 배분할지까지 정해 계약을 체결하는 게 기획 단계다. ‘린다 매카트니 사진전’을 기획한 권정민 대림미술관 전시팀장은 “의견 차이를 조율하는 과정이 길어져 ‘전시를 하겠다’고 마음 먹고 계약서를 체결하기까지 1년 넘게 걸린 적도 있다”며 “상대방을 잘 설득해 생각의 차이를 좁혀 나가는 것도 큐레이터의 중요한 임무 중 하나”라고 말했다.

 계약서를 작성한 이후부터가 전시 준비 단계다. 전시 준비 단계는 보통 인테리어 업체를 선정해 사전에 기획한 대로 전시 공간을 꾸미고, 작품에 손상이 없는지 살피고, 작품을 설치하는 등 전시회를 완성해 가는 과정이다. 이후 도록 제작, 도슨트 교육, 개막 행사 등을 마무리하면 전시회 준비는 끝난다.

 하지만 끝은 또 다른 시작에 불과하다. ‘빛의 예술, 보헤미아 유리’ 전시회를 기획한 박혜원 국립중앙박물관 교육문화교류단 학예연구사는 “전시장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고, 조명의 밝기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것은 물론, 관람객들의 반응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전시가 종료돼도 마찬가지다. 해외 박물관에서 작품을 대여한 경우에는 안전하게 포장해서 보내고 종료된 전시에 대한 정산작업까지 해야 한다. ‘세마 살롱’을 기획한 김정아 서울시립미술관 수집연구과 큐레이터는 “이 모든 게 한 개씩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게 아니라 3~4가지 일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진다”며 “다음 전시 기획서를 쓰면서 이전 전시에 대한 정산 작업을 해야 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칼 라거펠트 등 세계적 인물과 작업해 보람

사람들은 대부분 큐레이터가 여유있는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을 들여다 보면 야근이 비일비재하다. 모든 전시회는 개막 날짜가 정해져 있는데, 기간 내에 모든 준비를 마치려면 시간이 빠듯할 때가 많다. 김정아 큐레이터는 “관객들에게 좀 더 완성도 높은 전시회를 소개하고 싶다는 욕심이 큐레이터들을 밤샘도 불사하게 만든다”며 “전시회 3~4달 전부터 주 4회 야근을 시작으로 전시회 한 달 전부터는 주말도 반납하고 일하는 사람이 많다”고 전했다.

 새로운 전시를 만들어 내야 하는 창작의 고통도 있다. 작가와 대중의 관심을 파악해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새로운 전시회를 계속 기획해야 하기 때문이다. 권정민 팀장은 “국공립미술관에 비해 사립미술관이 관람객의 반응에 더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전시회가 시작된 후에도 관람객 수를 집계해 만족도를 파악하고 더 많은 관람객이 참여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당 전시에는 반영하지 못하더라도 다음 전시에 응용할 수 있기 때문에 관람객 피드백은 큐레이터가 챙겨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고 덧붙였다.

 어려운 점은 또 있다. 작가와 관람객 사이에서 큐레이터는 늘 을(乙)일 수밖에 없다. 권정민 팀장은 작품 배치를 예로 들어 설명했다. 드라마에서는 정장을 입은 큐레이터가 도도한 표정으로 손가락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까딱’ 움직이면 업자들이 작품을 옮겨주지만 현실은 이와 정반대다. 권정민 팀장은 “항상 납작 엎드린 자세로 ‘정말 죄송한데 한 번만 바꿔주시면 안 되느냐’고 간곡히 부탁해야 한다”며 “대화의 50% 이상이 ‘죄송합니다’는 얘기일 정도”라고 말했다.

 육체 노동도 꽤 많다. 유물이나 작품을 직접 옮길 때도 있고, 벽에 못을 박거나 진열장 내부를 청소해야 할 때도 있다. 박혜원 학예연구사는 “특히 인테리어 공사 등을 할 때는 막노동에 버금가는 일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보람도 크다. 자신의 손끝에서 탄생한 전시를 찾는 사람들이 많고, 관람객들이 즐거워할 때 큐레이터는 뿌듯함을 느낀다. 추여명 서울시립미술관 학예연구부 큐레이터는 “관람객들이 ‘미술관은 딱딱하고 지루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재미있다’고 얘기할 때 이 직업을 선택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며 “특히 청소년을 대상으로 기획한 프로그램 때문에 학생들이 미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을 때는 국내 미술사의 발전에 한몫한 것 같은 기분도 든다”고 말했다.

 역사에 이름을 남길 작가들과 짧게는 2년, 길게는 3년간 일대일로 소통하고 그들의 인생에 참여하는 것도 매력적인 일이다. 권정민 팀장은 지난 2011년 개최했던 ‘칼 라거펠트 전시회’ 진행 과정 중에 있었던 일화를 들려줬다. 사전 인터뷰를 요청했더니 칼 라거펠트가 그를 프랑스의 한 별장으로 초대한 거다. 권 팀장은 “기자들의 인터뷰에도 응해주지 않기로 유명한 그를 직접 만나고 그의 삶 속에 들어가 보는 건 큐레이터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짜릿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미술 지식은 기본, 다양한 분야에 관심 가져야

큐레이터가 미술이나 유물에 대한 지식만 풍부하다고 되는 건 아니다. 전시는 예술과 인문은 물론, 경영 등의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는 융·복합적인 분야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흥미를 끄는 전시를 만들려면 트렌드를 파악하는 능력이 있어야 하고, 현상을 꿰뚫어보는 통찰력도 필요하다. 또 전시 작품을 진열하는 감각도 갖춰야 하고 도록을 제작할 때는 글쓰기 능력도 요구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늘 연구하고 공부하는 자세다. 권정민 팀장은 해외 미술관이나 예술 관련 출판사들의 인터넷 홈페이지를 ‘즐겨찾기’ 목록에 추가해 놓고 틈날 때마다 어떤 책이 출판되는지 확인한다. 팀원들과 함께 책을 선정해 돌아가면서 스터디도 한다. 최신 트렌드를 파악해 대중들의 관심을 끄는 전시를 기획하기 위해서다. 그는 “해외에서 어떤 전시가 열리는지 살피는 것은 물론,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이제는 문화예술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경계가 점점 모호해지고 있다. 권정민 팀장은 “청소년들 중에는 미술관 큐레이터가 되고 싶다고 미술에 대한 지식만을 익히는 경우가 많은데 이는 잘못된 생각”이라며 “인문·사회·정치·경제·역사·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 대해 알아둘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의사소통 능력도 필요하다. 큐레이터는 작가와 대중을 함께 설득해야 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 박혜원 학예연구사는 “전시회를 기획할 때 체코국립박물관 측은 ‘현대미술제품 위주로 전시하자’고 했지만, ‘유리 외에도 체코의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려 주고 싶다’고 설득한 결과 기독교 문화나 인물과 관련한 작품들을 소개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작가나 해외 뮤지엄과 의견 차이가 있을 때는 작품을 통해 어떤 얘기를 하고 싶은지, 관객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지 잘 설명해야 한다”는 게 그의 말이다. 의사소통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또 있다. 많은 사람과 공동으로 작업하는 일이 많아서다. 김정아 큐레이터는 “초반에 상대방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넘어가면 나중에 작품을 잘못 받거나, 도록 디자인에 문제가 생기는 등 문제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해외미술관이나 박물관과의 교류 전시회가 늘어나고 국가 간의 교류도 활발해지면서 외국어 능력은 필수가 됐다. 해외 작가나 관계자와 직접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전시를 기획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어서다. 권정민 팀장은 “독일 작가들과 독어로 대화하면 작품이나 전시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지고 상대방이 훨씬 더 쉽게 마음을 열고 협조적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Q&A 석사 학위 없이는 취업하기 사실상 어려워

Q. 큐레이터는 도슨트나 갤러리스트와 무슨 차이가 있나요.

A. 큐레이터는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기획하고 작품을 수집·연구·관리하는 사람입니다. 전시회를 찾은 관람객들에게 전시에 대해 설명하는 일을 하는 도슨트나 갤러리(상업화랑)에서 작품을 진열하고 갤러리 운영에 관한 행정업무를 담당하는 갤러리스트와는 다릅니다. 국내에서는 큐레이터와 갤러리스트를 혼재해 사용하기도 하지만, 갤러리스트는 영리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미술관·박물관 큐레이터와는 구분됩니다.

Q. 박물관·미술관·독립 큐레이터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박물관 큐레이터와 미술관 큐레이터는 다루는 작품부터 차이가 있습니다. 박물관 큐레이터는 유물이나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미술품 등을, 미술관 큐레이터는 회화·조각·사진 등 예술품을 조사·연구·관리합니다. 독립 큐레이터는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등 특정 기관에 속해 있지 않고 전시회를 기획하는 사람입니다. 최근 미술관이나 박물관 외에서도 대중과 소통하는 전시회가 증가하고 있어 독립 큐레이터의 영역도 점차 넓어지고 있습니다.

Q. 반드시 관련 학과를 전공해야 하나요.

A. 보통 큐레이터를 꿈꾸는 학생들은 큐레이터학·미술사학·예술학·고고학 등에 진학합니다. 하지만 반드시 이들 학과를 전공해야 하는 건 아닙니다. 현재 큐레이터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사람 중에도 학부에서 영문학·사회학 등을 전공한 사람도 있습니다. 미술이나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을 쌓는 데는 부족할 수 있지만, 사물이나 현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Q. 대학원 진학이나 유학도 필수인가요.

A. 석사 학위가 없는 상태에서 큐레이터로 일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습니다. 보통 국공립 미술관이나 사립 미술관에서는 석사 이상의 학위를 취득한 사람을 채용하고 있습니다. 작품에 대한 연구가 큐레이터 업무의 기본이기 때문에 깊이 있게 공부한 사람을 선호합니다. 유학은 필수는 아니지만 외국과의 문화 교류가 점점 더 활발해지고 있어 외국어 능력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Q. 학예사 자격증이 꼭 있어야 하나요.

A. 국공립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공개 채용을 통해 큐레이터를 선발합니다. 국공립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취업할 때는 자격증이 꼭 있어야 하는 건 아니지만 사립미술관이나 박물관에서는 학예사 자격증이 있는 사람을 선호합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시행하는 정학예사 1·2·3급과 준학예사 자격증입니다. 관련 분야 학위 취득 후 국공립 박물관이나 미술관 등에서 일정 기간 이상 일해야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습니다.

전민희 기자 skymini171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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