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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죽음의 계곡' 못 넘는 신기술 상용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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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덕용
KMW 회장

지난달 말 미국 메이저리그 소속 시애틀 매리너스의 홈구장인 세이프코필드에서 경기장 주 조명을 발광다이오드(LED)로 교체하는 점등식을 하면서 만감이 교차했다. 잘 나가던 직장을 그만두고 아내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을 시작하며 극복해온 숫한 좌절의 시간들이 떠올랐다. 지금도 필자의 회장 사무실 바로 옆에 크레이지 연구소를 두고 기술개발에 목숨을 건 덕이기도 하지만 이 기술을 상용화하는 것은 더더욱 어려웠다.

 그나마 필자는 운이 좋은 편이라는 생각을 항상 한다. 기술동향을 열심히 살피는 필자가 볼 때 국내 유수의 대학이나 연구소들이 이룩한 빛나는 연구 성과가 기업을 통해 성공적으로 제품화되었다는 소식은 참으로 듣기 어렵다.

 통계에 의하면 세계 유명 학술지에 발표된 국내학자들의 논문 수가 2012년 기준 무려 4만7066편으로 세계 10위이고, 기술개발 건수는 1만2482건에 달한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대학의 연간 기술이전은 2431건으로 미국의 절반 수준이고, 5조5510억원에 달하는 막대한 연구개발비에 비해 기술료 수입은 580억원에 불과하다.

 신기술의 상용화가 우리나라에서는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일까? 필자는 세 가지 이유가 있다고 본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비의 수십배가 넘게 든다는 사업화 자금이 부족한 탓이다. 실험실 단위의 연구 성과를 제품화가 가능한 수준의 기술로 다듬으려면 시간과 자금을 겸비한 각고의 노력이 필요하다. 하지만 실험실에서 나온 연구 성과들이 사업화하는 길목에서 사장되는 일이 비일비재 하다 보니 ‘죽음의 계곡(Death Valley)’이라는 용어가 나올 정도이다.

 또 다른 이유는 기업과 대학 사이의 가교가 되어 효과적인 산학협력을 이끌 수 있는 전문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기술 및 시장 동향을 살펴 연구개발 전략을 세우고, 기업의 수요에 맞추어 사업화 계획을 마련하여 추진하며, 사업화를 염두에 두고 연구 성과를 특허로 보호할 수 있는 인력을 보강하고 역량을 강화시킬 수 있어야 기업과 대학의 실질적인 협력이 가능하다.

 마지막으로 ‘대학 내 산학협력 문화 정착 및 확산의 한계’라는 문제점이 여전히 해결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이제는 교수 개개인의 기업과의 산학협력은 다양한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하지만 이는 지극히 개인적인 단위의 협업일 뿐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번에 교육부가 대학의 연구 성과를 사업화할 수 있도록 ‘창의적 자산 실용화 지원사업’을 통해 전폭적으로 지원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다고 하니 두 손 들어 환영하고 싶다. 특히 요즘과 같은 기술의 융합화 시대에는 다방면의 연구를 한울타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대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본다. 사업화 잠재력이 높은 유망 기술을 지원해 죽음의 계곡을 넘고, 기업과 대학이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더 활성화되어 기업도 발전하고 고용 환경도 개선된다면 기업인의 한 사람으로서 더할 나위 없겠다.

김덕용 KMW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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