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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 35개월 연속 흑자 … 코너에 몰린 원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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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한국 경상수지가 35개월 연속 흑자 행진을 했다. 한국은행은 올해 1월 경상수지 흑자는 69억4000만 달러(약 7조6400억원)라고 2일 밝혔다. 지난해 같은 달(33억2000만 달러)보다 배 이상 많은 액수다. 2012년 3월 이후 2년 11개월 연이어 흑자다. 역대 최장 흑자 기록 38개월(1986년 6월~89년 7월)까지 불과 석 달을 남겨뒀다.

 경상수지는 한 국가가 상품·서비스·배당·이자 거래에서 낸 흑자와 적자 모두를 따져 산출한다. 한국 경제가 그만큼 외화를 벌어들였다는 뜻이지만 마냥 환영할 만한 일은 아니다. 80년대 수출 호황기와는 흑자 성격이 한참 달라서다. 한은 집계에 따르면 올 1월 수출액은 1년 전과 비교해 10%, 수입액은 16.9% 줄었다. 수출보다 수입이 더 많이 감소해 나타나는 ‘불황형 흑자’ 조짐이 뚜렷하다. 노충식 한은 국제수지팀장은 “국제유가 하락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석유류를 비롯한 원자재 값이 떨어지면서 수입 액수가 줄었다는 의미다. 시장의 분석은 좀 더 냉정하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수석연구원은 “한국 수출경기에 브레이크가 걸렸음을 부인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국 인민은행의 기준금리 인하, 일본은행(BOJ) “규모, 기간 제한 없는 양적완화(돈 풀기)” 선언, 이달 개시하는 유럽중앙은행(ECB)의 양적완화에 대규모 경상흑자까지 원화는 사면초가에 빠졌다. 미국을 제외한 선진·신흥국이 자국 통화 가치를 낮춰 수출 경기를 부양하는 ‘통화전쟁’에 앞다퉈 나선 상황에서 한국은 대규모 경상흑자 부담까지 떠안았다. 지나치게 많은 경상흑자는 ‘양날의 칼’이다. 달러 곳간이 탄탄하단 의미지만 그만큼 원화 값을 끌어올리는 요인도 된다.

 불황형 흑자 가능성까지 불거지면서 한은이 통화전쟁에 참여하리란 시장의 기대는 한층 커졌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달러당 원화 가치는 전날보다 2.4원 내린 1100.8원에 마감했다. 하건형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은 “경상흑자 지표보다는 중국 인민은행의 기준금리 인하가 외환시장에 영향을 더 끼쳤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추후 인하하거나 외환당국이 원화 절상을 막기 위한 환율 개입에 나설 것이란 전망이 우세했다”고 분석했다. 손은정 우리선물 연구원은 “유가 수혜로 인한 경상흑자 증가, ECB 양적완화로 유럽계 자금 국내 증시 유입 기대, 한국 국채에 대한 외국인의 견고한 수요 등 원화 값 약세를 제한할 요인이 많다”며 “외환시장 변동성이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조현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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