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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 국가 개입할 일 아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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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재판소가 26일 오후 간통죄 처벌 조항(형법 제241조)에 대해 재판관 9명 중 7명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간통죄는 1953년 형법 제정 후 62년 만에 폐지됐다. 박한철 헌재 소장이 선고를 위해 대심판정으로 들어서고 있다. [김상선 기자]

헌법재판소는 간통죄 처벌 조항(형법 제241조)에 대해 헌법에 위반된다고 26일 선언했다. 재판관 9명 가운데 7명이 위헌 의견을 제시해 위헌 정족수(6명)를 넘긴 것이다. 이로써 ‘현대판 주홍글씨’로 불리던 간통죄가 1953년 형법 제정 후 62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헌재는 간통 혐의로 기소된 심모(52·여)씨 사건 등 헌법소원 및 위헌법률심판 제청 17건을 심리해 이날 간통죄 조항이 위헌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박한철 소장과 이진성·김창종·서기석·조용호 재판관은 “사회 구조와 결혼 및 성에 관한 국민 의식이 변화해 성적 자기결정권을 보다 중요시하는 인식이 확산됐다”며 “간통 행위를 국가가 형벌로 다스리는 것이 적정한지에 대해 더 이상 국민의 인식이 일치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이어 “혼인과 가정의 유지는 당사자의 자유로운 의지와 애정에 맡겨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내밀한 성(性)생활의 영역에 국가가 개입해 형벌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성적 자기결정권과 사생활의 비밀·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다.”

박 소장 등은 “간통 처벌 조항으로 간통을 억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형사처벌이 예방적 효과를 거두었음을 보여주는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또 “오히려 간통죄가 유책(잘못)의 정도가 훨씬 큰 배우자의 이혼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일시 탈선한 가정주부 등을 공갈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고 했다.

 김이수 재판관은 별도의 위헌 의견을 통해 “미혼인 상간자(간통 상대방)는 국가가 형벌로 규제할 대상이 아니다”며 “모든 간통 행위자와 상대방을 일률적으로 처벌하도록 한 간통죄 조항은 위헌”이라고 말했다. 강일원 재판관은 “간통죄의 종용(사전 동의)이나 유서(사후 용서)의 개념이 명확하지 않아 국민이 국가 공권력 행사의 범위와 한계를 확실하게 예측할 수 없다”고 했다. “형법상 성풍속에 관한 죄 중 오직 간통죄만 다른 선택형 없이 징역형이 규정된 것은 책임과 형벌 사이에 균형을 잃은 것”이란 점도 지적했다.

 반면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합헌 의견을 냈다. “간통죄의 폐지는 ‘성도덕의 최소한’의 한 축을 허물어뜨려 우리 사회 전반에 성도덕 의식의 하향화를 가져온다”는 이유에서다. 이들은 “간통죄 폐지 땐 혼인관계에서 오는 책임과 가정의 소중함은 뒤로한 채 오로지 사생활의 자유만을 앞세워 수많은 가족공동체가 파괴될 것”을 우려했다.

 이날 헌재의 결정으로 마지막 간통죄 합헌 결정 다음날인 2008년 10월 31일 이후 유죄 확정판결을 받은 사람은 재심청구 등을 통해 구제받을 수 있게 됐다. 대상자는 2973명으로 추정된다. 1~3심에 계류 중인 피고인들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된다. 앞서 헌재는 90년 “공공생활의 질서 유지를 위해 필요하다”며 6대 3으로 간통죄에 대해 합헌 결정한 이후 93년 6대 3, 2001년 8대 1로 간통죄에 대해 네 차례 합헌 결정을 내렸다.

글=전영선·백민정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성적 자기결정권=성적(性的)인 취향과 행동, 대상을 개개인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권리. 헌법에 보장된 인격권과 행복추구권에 포함된 권리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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