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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통죄가 불륜 억지 못 해 … 형벌로서 실효성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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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처벌 조항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린 26일 경찰들이 서울 북촌로 헌재 청사 정문에서 경비를 서고 있다. 이날 헌재 결정에 반대하는 집회나 시위는 없었다. [김상선 기자]

“국가는 개인의 결혼생활이나 애정사에 개입할 수 없다. 불륜은 손해배상 등 민사적 수단으로 풀어야 할 문제다.”

 헌법재판소가 간통죄 처벌조항(형법 제241조)을 62년 만에 폐지하면서 내린 결론이다. 헌법재판관 9명 중 7명이 위헌이라고 봤다. 하지만 위헌으로 판단한 이유는 각각 달랐다. ①간통죄 처벌이 한국 사회에서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현실적 측면을 강조한 다수 의견 ②간통죄가 기혼자와 불륜 관계를 맺는 미혼자까지 처벌하는 등의 부당성을 지적한 위헌 의견 ③간통죄 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위헌이라고 본 의견이 그것이다. 간통죄가 아직은 유효하며 폐지 시 부작용을 우려해 합헌이라고 본 의견까지 재판관들의 견해는 네 갈래로 나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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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한철 소장 등 5명은 간통죄 유지로 사회가 얻는 이득이 적다고 판단했다. “간통이 애정에서 비롯된 경우라면 부부간의 애정과 신뢰에 기초한 혼인관계는 이미 파괴된 상태이므로 형벌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혼인관계를 유지시킬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것이다. 박 소장 등은 또 “간통 처벌 조항으로 간통을 억지하는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형사처벌이 예방적 효과를 거뒀음을 보여 주는 자료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제시했다. 이어 ▶간통죄로 접수되고 기소되는 사건 수가 매년 줄고 있고 ▶구속기소되는 경우는 고소 사건의 10%에도 못 미치며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고소가 취소되는 사건이 상당수여서 형벌로서의 기능이 현저히 약화된 점을 꼽았다. 전 세계적으로 간통죄가 폐지되는 추세라는 것도 근거로 들었다. 보충의견에서 이진성 재판관은 간통으로 인한 가족 해체 등의 문제에 대해 “기존의 민법상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와 재산분할 청구, 자녀양육 등에 대한 재판관행을 개선하고 배우자·자녀의 복리를 위한 제도를 새로 강구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김이수 재판관의 경우 위헌 의견을 냈지만 다수 의견과 관점이 달랐다. 김 재판관은 “간통자에 대한 형사처벌은 기본질서를 최소한 보호하려는 정당한 목적을 갖춘 것”이라며 과도한 제한은 아니라고 말했다. 간통죄 처벌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한 것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간통은 사실상 혼인관계를 회복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발생한다”며 “특히 미혼인 상간자의 경우 애당초 성적인 성실의무가 없는데도 처벌하게 된다”는 등의 문제점을 제시했다.

 강일원 재판관 역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의 간통행위는 일부일처주의에 대한 중대한 위협으로 사생활의 영역이라고 해도 규제의 필요성이 인정된다”고 했다. 하지만 “배우자가 사전·사후에 용인하면 간통죄가 성립되지 않는 등 간통죄 조항이 명확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간통 행위에 다양한 경우가 존재하는데도 선택의 여지 없이 반드시 징역형으로 처벌하게 한 점도 위헌 요소라고 봤다.

 다수 의견에 맞서 합헌 의견을 낸 이정미·안창호 재판관은 “간통은 보호받아야 할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 영역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아직은 혼인과 가족 공동체를 지킬 수 있는 수단으로 간통죄 형사처벌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현실에 대한 진단도 다수 의견과 달랐다. “다수 의견은 간통에 대한 사회 대다수의 법의식이 변화했다고 하지만 최근 실태조사에 따르면 이를 입증할 어떤 증좌도 없다”고 했다. 그 근거로 지난해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0.4%가 ‘간통죄 존치’에 찬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특히 두 재판관은 “간통죄 폐지는 독일 철학자 헤겔이 말하는 ‘가정-사회-국가’라는,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공동체의 틀을 훼손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사회 활동의 경험이 없고 가정 내 경제적·사회적 약자의 처지에 놓여 있는 전업주부는 상대방의 재산 은닉 등으로 인해 재산분할 제도가 실효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우려했다.

글=전영선·이유정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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