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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해주오씨, 조선조 정승 2·문과급제자 98명 임신·병자난서 3대가순국청과 화해 거부한 오달제 충절 빚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9면

오씨는 인구순위로 우리나라 13번째 대성이다. 전국에 60여만명. 그중 50여만명이 해주오씨. 그러나 그밖의 오씨들도 해주와 한뿌리로 믿고있다.
해주오씨의 시조는 고려 성종조의 검교군기감 오인속.서984년 송나라에서 고려에 귀화한것으로 전한다. 해주에 터를 잡고 살아 본관을 해주로 삼았다.

<모든 오씨 한조상>
전국오씨대동종친회가 낸 족보에 따르면 오씨는 서기5백년 최초로 우리나라에 건너와 경남함양에 자리잡았는데 고려 고종때 그의 24세손 현보(해주군) , 현좌 (동복군) ,현필(보성군) 등 3형제가 거란군침입을 토벌한 공으로 봉군되면서 이들 3형제를 각각 시조로 하는 오씨산맥이 형성되었다한다.
오담과 오인유와는 어떤 관계인지 역사적 문헌이 불확실해 고증하기 힘들다. 오인유와 오현필과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동종친회는 우리나라 모든 오씨는 동조동근으로 보고 오씨문중의 결속을 다지고 있다고 말한다.
문양공 오정룡은 고려 예종2년 윤관장군과 함께 여진족을 토벌하는데 용맹을 떨쳤던 당대의 명장. 고려조 해주오씨를 인물이다. 사부, 병부, 예부 상서를 거치고 문하시랑 평장사에 올랐다.
그밖에 고려조의 인물은 문양공과 동명이인인 오정룡(공민왕, 판삼사) 오한경(충렬왕, 찬성사) 오선정(동,공조전서), 오강(동, 학자)등이 있다.
해주오씨는 조선조에 문과급제98명, 영의정 1명(오윤겸), 우의정1명(오명환), 대제학3명(오도일, 오경, 오재순)을 배출했다.
태조때 호조전서 오성식, 중종때 이조판서 오결, 선조때 8문장의 한사람으로 뽑혔던 오상(이판, 청백리), 임진왜란당시 남원성을 사수했던 전라방어사겸 순천부사 오응정과 전라, 경상도 병마절도사를 지냈던 오정방, 성리학의 대학자 오천민등이 조선 전반기 해주오씨 가문을 빛낸 명현들이다.

<인조반정이후 번창>
이중 오응정장군임가는 임진·병자의 국난에 3대가 순국했다. 그래서 붙여진 이름이 「오씨삼세오충」, 즉 오응정과 그의아들등 3부자가 임진왜란 당시 남원성의 좌후방어전에서 장렬하게 산화했으며 또 오응정의 3남 광해군때 여진족을 정벌하는 전장에서, 그의 큰손자 오방언은 병자호란때 송파의 샛강에서 거란과 싸우다 각각 순절했다.
해주오씨는 인조반정을 고비로 중앙정계에 진출, 기라성같은 명현을 배출하면서 명문의 위치를 굳힌다.
인조반정이후 우·좌의정을 거쳐 영의정에 오은 오윤겸은 당대의 거목
그는 인재등용을 공정히하는 명재상으로 소문났다. 또 그의조카 오달제 ,손자 오도일등도 우뚝한 인재들.
그밖의 조선조 인물로는 오두인 서예가로 이름났던 오태주,부자가 나란히 대제학에 올라 문벌을 떨쳤던 그의아들 오재순 등이었다.
해주오씨는 해방후에도 사회각계에 많은 인재를 내고있다.

<괴짜시인 공초도>
작고한 인물로는 보사부장관을 지냈던 오한영과 오원선, 민의원출신인 오위영과 오재영, 전서울신문사장 오종식, 전국세청장 오정근(전국회의원), 오성환등 있다(전국회의원).
오천석(철박 전문교부장관), 오치성(전내무무장관), 오정수(전상공부장관), 오석근(전법무부장관)등은 관계의 얼굴들.
현역 국회의원은 오세응(정박), 오홍석, 오제도(변호사), 오한구등 4명.
오성환(대법원판사), 오병선(서울고법부장판사), 오윤덕(서울고법판사), 오희택(전수원지검장, 변호사, 오씨대동종친회장)등은 법조계의 중진.
군에는 오경환(해군참모총장)이 있고, 오태환(한국플래스틱 공업(주)사장), 오세정(동산토건(주)사장), 오세중((주)세방사회장)등이 실업계에서 활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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