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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명동, 탈명품 … 13만 요우커, 한국인처럼 쇼핑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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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중국인 관광객들이 24일 서울 강남구 가로수길 매장에서 상품을 구매한 뒤 이동하고 있다. 중국인들이 명동을 벗어나 강남과 홍대 등을 즐겨 찾고 있다. [김상선 기자]

HSBC컨설팅은 최근 보고서에 ‘New(새로운) TST’라는 신조어를 내놨다. TST는 홍콩 번화가인 침사추이(Tsim Sha Tsui)의 알파벳 이니셜인데, 도쿄(Tokyo)·서울(Seoul)·타이베이(Taipei)의 이니셜을 모아 ‘New TST’라고 지칭한 것이다. 풀이하자면 중국 최대 명절인 춘절(18~24일)을 맞은 중국 쇼핑객들이 민주화 시위로 시끄러운 홍콩 대신 서울 등지로 발길을 돌렸다는 의미다. HSBC컨설팅의 어원 램버그 소비재·럭셔리부문 대표는 “TST 중에서도 화장품과 패션 부문에 힘입은 서울이 이번 춘절 특수의 확실한 승자(clear winner)”라고 평가했다.

 실제 올해 춘절 기간엔 사상 최대 규모인 약 13만 명의 요우커(遊客·중국인 관광객)가 한국을 찾았다. 내수 부진에 신음하던 국내 유통업계도 춘절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지난 18~22일 롯데백화점 본점은 중국인 매출이 75% 늘었다. 현대백화점은 서울 중구에 점포가 없지만 ‘강남 요우커’들 덕에 매출이 60% 가까이 늘었다.

 흥미로운 건 달라진 소비행태다. 마치 한국인처럼 쇼핑하는 요우커들이 부쩍 늘어난 것이다. 서울 명동을 쳇바퀴 돌며 특정 ‘한류 브랜드’만 싹쓸이해 가던 과거와 달리 홍대·가로수길·용산으로 동선을 넓혀 맛집을 찾아다니고, 한국 대학생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난 화장품이나 옷을 사는 식이다.

 지난 18일 서울에 도착한 루진팡(露金芳·여·24)이 대표적이다. 그는 설 연휴 기간을 이용해 간단한 눈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친구 3명과 함께 강남에 숙소를 잡았다. 그는 병원 인근 백화점 식품관에서 유명하다는 디저트를 먹고, 친구들과 가로수길에만 있다는 SPA(패스트패션) 매장을 둘러봤다. 한국에 오기 전 블로그를 통해 한산하고 분위기 좋은 카페도 다 찾아놨다. 여느 한국 여대생과 크게 다를 것 없는 모습이다.

 관광·유통업계에선 2013년 중국의 여유법(저가 덤핑 단체여행 금지)으로 인해 기존 단체 관광객이 개별·자유여행으로 한국을 재방문하는 경우가 늘면서 한국에 익숙해진 요우커들도 크게 늘어난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명품이나 보석류에 집중됐던 쇼핑 목록에도 변화가 뚜렷하다. 롯데백화점이 춘절 기간 동안 ‘중국인 매출 톱10’을 뽑아본 결과, 2012~2014년 부동의 1~2위였던 MCM이 올해는 6위로 떨어졌다. 당시 10위권에 올랐던 샤넬·프라다 등 명품 브랜드도 자취를 감췄다. 대신 최근 인기 드라마 여주인공이 입어 국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스타일난다’, 케이블TV 미용 프로그램인 ‘겟잇뷰티’에 소개돼 유명해진 화장품 ‘투쿨포스쿨’ 등 한국 젊은 층들이 좋아하는 브랜드가 상위권에 들었다. 네이버가 운영하는 메신저 라인의 캐릭터인 ‘라인 프렌즈’ 역시 2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롯데백화점 측은 “올해 요우커들의 구매 트렌드는 참신성”이라며 “과거 명품에만 쏠리는 소비가 아니라 영캐주얼 브랜드를 비롯해 요즘 뜨는 상품을 알뜰하게 구매하는 요우커들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의류나 패션뿐만 아니라 생활환경 자체를 한국식으로 꾸미고 싶어하는 요우커들이 많아지면서 ‘생활용품’ 특수도 두드러졌다. 춘절 기간 동안 신세계백화점 본점 주방용품의 중국인 매출은 70.9% 늘어났다. 가전(32.5%)·가구(28.3%) 매출도 크게 뛰었다.

 유통업계에선 이번 춘절을 계기로 ‘요우커 내수고객화’를 선언하고 마케팅 전략을 새로 짜는 분위기다.

 신세계백화점 영업전략담당 홍정표 상무는 “이제 중국 관광객을 외국인 소비자가 아닌 핵심 내수 고객으로 인식하게 됐다”고 말했다.

글=이소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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