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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뜨거운 박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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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어느 곳이든지 지켜야 할 예절이나 관습이 있기 마련이지만, 음악회장의 에티켓은 좀 유별나다. 그리고 그것을 안 지켰을 때 돌아오는 비난도 가혹하기 짝이 없다. 무엇보다 연주의 감상을 방해하는 소음은 절대 금물이다.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기침을 참기도 쉽지 않다. 멀쩡하다가도 음악회만 가면 기침이 나오니 이것도 일종의 노이로제다. 음악이 잠깐 멈추는 순간을 이용해 너도나도 헛기침을 미리 하느라 분주한 것을 보면 왠지 처량해 보이기까지 하다. 설상가상으로 감기에 걸렸다면 아무리 비싸게 예매한 표라도 포기하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기침을 할 때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날카로운 비수가 사방에서 날아올 터이니 말이다.

 박수는 더욱 골칫거리다. 몇 분마다 연주가 멈추는데 언제 박수를 쳐야 하고 언제 치지 말아야 할지를 모르는 경우가 많으니 말이다. 처음 음악회장을 찾은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불편한 것이 바로 이 박수 때문이다. 박수의 타이밍을 맞추는 것이 어려운 만큼 어떤 이는 마지막 음의 잔향이 채 사라지기도 전에 박수를 치는 것으로 자신을 과시하기도 한다. 그런 능력이 없으면 다른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적당히 따라 하는 수밖에.

 박수는 관객이 연주자에게 보내는 메시지다. 수고한 연주자에 대한 격려와 감사이자 그날 연주에 대한 관객의 평가다. 그러니 훌륭한 연주일수록 박수는 길어지기 마련이다. 흥미로운 것은 연주자와 관객 사이에 발생하는 미묘한 심리 게임이다. 이를테면 연주자들은 관객들이 한참 박수를 치고 있는데도 무대에 머무르지 않고 한두 번 인사를 하다가는 얼른 무대 뒤로 들어가 버린다. 박수를 받기 싫어서가 아니다. 이 세상에 자기 연주에 관객이 환호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 연주자가 누가 있겠는가. 그런데도 연주자가 퇴장하는 이유는 역설적으로 다시 무대에 불려 나오고 싶어서이다. 이른바 커튼콜이다. 박수가 끊이지 않아 다시 불려 나오는 상황을 연출하려는 것이다. 오늘 연주에 커튼콜을 몇 번 받았나 하는 것은 연주자들에게는 매우 중요한 성적표이기 때문이다.

 연주자에 대한 박수도 나라마다 도시마다 상당한 차이가 있다. 보통 유럽은 박수가 후한 편이다. 미국도 인색하지는 않지만 뉴욕만큼은 예외다. 우리나라도 박하지는 않다. 오히려 연주의 질과 상관없이 모든 연주자에게 적당히 후하게 박수를 보내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다. 음악의 내용을 정확하게 평가할 능력이 없는 관객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으나 웬만하면 체면을 살려주려는 우리나라 특유의 문화이기도 하다. 못했어도 못했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니 관대함이자 미덕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계속되는 박수는 관객이 연주자의 앙코르를 원한다는 표현이기도 하다. 여기에서도 연주자와 관객 사이의 줄다리기는 계속된다. 관객들이야 비싼 입장료를 내고 왔으니 한 곡이라도 더 듣고 가고 싶겠지만, 연주자들은 이런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이 쉽지 않다. 앙코르에 대한 청중의 과욕은 이미 최선을 다해 본 연주를 마친 연주자를 피곤하게 만들기도 한다. 오죽하면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슈나벨이 “박수란 이미 끝난 연주에 대한 영수증이지 앞으로 앙코르를 하라는 청구서가 아니다”는 말까지 했겠는가. 한마디로 너무 당연하게 앙코르를 기대하지 말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반대로 앙코르 요청이 나오지 않을까 봐 전전긍긍하는 연주자도 적지 않다. 박수가 시작되자마자 앙코르를 연주하기는 체면이 안 서고 그렇다고 청중들이 언제까지 박수를 쳐줄지 모르니 좌불안석이다. 요즘은 앙코르를 본 프로그램 이상으로 신경 써서 꾸미는 연주자가 많아졌다. 앙코르가 인상에 오래 남는다는 것을 이용한 일종의 차별화 전략이라고나 할까.

 살아가면서 누군가로부터 마음에서 우러난 박수를 받고 싶은 마음은 모두가 마찬가지일 것이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질투나 사랑만큼 강렬하다. 인생을 살아갈수록 더욱 그렇다. 새로운 한 해, 뜨거운 박수를 받고 싶은가. 최선을 다해서 인생을 연주할 일이다. 보이지 않는 관객이 그대를 지켜보고 있을 것이니. 앙코르는 그런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영예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