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클립] 뉴스 인 뉴스 <264> 민통선 마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한반도를 갈라놓은 군사분계선(휴전선). 그로부터 남쪽으로 2㎞ 떨어져 나란히 달리는 남방한계선이 있다. 군사분계선과 남·북방한계선 사이에 비무장지대(DMZ)가 존재한다. 남방한계선에서 더 남쪽으로 또하나의 선이 지난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이다. 일반인은 허가 없이 출입할 수 없는 곳이다. 하지만 그 안에도 마을이 있다. 뭍에 있지만 쉽사리 드나들 수 없다고 해서 ‘육지속의 섬’이라고도 불린다. 한 때 112개가 있었지만 이젠 아홉 곳만 남았다.

① 대성동 마을(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조산리)

남한에서 유일하게 비무장지대(DMZ) 내에 있는 마을이다. 군사분계선에서 남쪽으로 500m 떨어져 있다. 6·25 전에 살았던 30가구가 돌아와 마을을 만들었다. 현재 49가구 205명이 살고 있다. 국내 최고인 99.8m 높이의 국기게양대가 설치돼 있고 가로 18m·세로 12m의 대형 태극기가 펄럭인다. 마을에서 1.8㎞ 북쪽에 있는, 북한의 ‘기정동 마을’과 맞서 있다. 기정동 마을은 대남선전 마을로 입구 158m 게양대에 북한 인공기가 걸려 있다.

 대성동 마을은 대한민국이 아닌, 유엔(UN)사령부의 통제하에 있다. 군사정전협정에 따라 국방·납세 의무를 면제받는다. 남성은 결혼 후에도 계속 여기서 살 수 있지만, 여성이 외지인과 결혼하면 마을을 떠나야 한다. ‘출가외인(出嫁外人)’이라는 전통 풍습에 따라 마을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정한 규칙이다.

② 통일촌(경기도 파주시 군내면 백연리)

1972년 육군 1사단에서 전역한 전역 부사관 14명이 둥지를 틀고 농사를 짓기 시작한 게 출발점이 됐다. 직후 고(故) 박정희 대통령이 “전략적 시범농촌을 만들라”고 지시해 마을이 조성됐다. 일부 산등성이를 밀고 택지를 만들어 전역 부사관 40가구와 원주민 40가구 등 80가구가 살게 했다.

 애초 모델은 이스라엘의 집단농장인 ‘키부츠’였다. 제대한 부사관들과 원주민들이 함께 군사 훈련도 했다. 이런 까닭에 처음부터 무기고와 방공호·벙커가 조성됐다. 현재는 169가구 466명이 거주 중이다.

 현재는 장단콩 슬로푸드 체험장과 부녀회 식당·농산물직판장이 조성돼 관광객들이 줄을 잇는다. 장단콩과 파주개성인삼을 지역특산물로 재배하면서 안보관광마을로 거듭났다. 매년 인근 임진각에서 장단콩과 파주개성인삼 축제가 열린다.

③ 해마루촌(경기도 파주시 진동면 동파리)

고(故) 김대중 대통령 때인 98년 햇볕정책에 따라 뒤늦게 조성됐다. 실향민 1세대와 이 지역 연고자들이 입주했다. 6·25 당시 민간인 소개(疏開·이리저리 분산시키는 것) 작전으로 고향을 떠났던 주민들이 돌아왔다. 해 뜨는 마을이란 뜻의 지명 ‘동파리’를 우리말로 풀이해 마을 이름을 지었다. 느지감치 조성된 덕에 자연과 어우러진 전원주택단지 비슷한 집들이 들어서게 됐다. 현재 60가구 165명이 거주하고 있다.

 판문점과 제3땅굴, 도라산전망대 등 안보관광지와 인접해 안보관광을 겸한 녹색농촌체험 마을 역할을 하고 있다. 마을 복지관을 게스트하우스로 운영 중이다. 조봉연(59) 농촌체험마을추진위원장은 “두루미·검독수리·독수리·흰꼬리수리 등 임진강에 오는 철새를 보기 위한 생태관광이 인기”라고 말했다.

④ 횡산리마을(경기도 연천군 중면 횡산리)

안보관광 명소인 태풍전망대가 인근에 있다. 마을 주변엔 임진강변의 광활한 농지가 펼쳐져 있다. 마을 입구에는 북한 황강댐에 대응하기 위해 조성된 군남댐이 들어섰다. 천연기념물 두루미와 재두루미 300여 마리가 마을에서 머지 않은 임진강 빙애여울 일대에서 겨울을 난다. 빙애여울 인근에 조성된 습지원에는 두루미 관찰대가 마련돼 있다.

 알이 굵고 빛깔이 좋은 연천콩 재배지로 유명하다. 깨끗한 임진강과 맑은 공기 등 천혜의 자연조건에서 생산되는 쌀도 특산물이다. 친환경 재배하는 율무도 유명하다. 현재 27가구 77명이 거주하고 있다.

⑤ 철원 갈말읍 정연리

71년 12월 재건촌으로 출발했다. 한탄강 상류인 남대천과 한탄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주택 60동을 건립하고 120가구가 입주했다. 1동에 2가구가 사는 구조로 현재 1채가 당시 형태로 남아 있다. 주민은 정식 입주에 3,4년 앞서 이곳에서 농사를 지었다. 움막에서 생활하며 봄부터 가을까지 농사를 짓고 겨울에는 나갔다. 아이들이 철원 읍내에 나가면 ‘농장애들’ 왔다는 얘기가 나왔다. 현재 인구는 94가구 233명.

 정연리는 96년 홍수에 마을 대부분이 침수됐다. 소가 떼죽음하는 등 피해가 컸다. 때문에 높은 지대로 일부 주민이 이주했다.

 금강산 가는 철길이 남아 있다. 이길리와 함께 DMZ평화마을조성사업을 추진하고 있는 정연리는 이 철길과 군부대 철책을 관광자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군부대와 협의해 철책 탐방을 추진하고 안보체험관도 세울 계획이다.

 고령인구가 많아 2014년부터 건강장수마을 사업을 하고 있다. 농한기인 요즘 난타 등도 배운다. 소득사업으로 배추와 부추 등을 원료로 하는 절임 공장도 세울 계획이다.

⑥ 철원 동송읍 이길리

당초 정연리였다가 79년 11월 분리됐다. 그러면서 지금의 자리에 주택 68동을 건립하고 340명이 이주했다. 현재 주민은 67가구 181명이다.

 이길리 주민 상당수는 갈말읍 토성리 출신이었다. 선전마을이라 벌판 한 가운데 주택이 들어섰다. 현재도 절반 정도의 집은 이주 당시의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13년 1년 동안 이 마을에 대해 조사해 마을풍경·생활상·전통·역사 등에 관한 것을 사진으로 촬영, 글과 함께 소개하는 공간인 마을박물관을 꾸몄다. ‘두루미 자는 마을’로 양 날개를 펴고 비상하려는 모습의 두루미 조형물을 설치했고, 마을회관과 창고·주택 등을 다양한 벽화로 장식했다. 2013년 두루미탐조대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소음이 없는 에코차(14인승)를 타고 철새를 관찰할 수 있다. 여름에는 한탄강 상류에서 물놀이 및 다슬기 잡기 등을 할 수 있다. 농어촌체험휴양마을로 올해 펜션 1동과 체험관을 지을 계획이다.

⑦ 철원 근북면 유곡리

정부가 주관해 조성했다. 마을이 만들어지는 동안 주민은 농경지를 개간했다. 73년 7월 30일 60가구 주민 230명이 입주했다. 당시 입주민은 3사단 제대군인 30가구와 신원이 확실한 철원지역 주민 30가구였다. 지금도 대부분 입주 1세대만 있다. 2세대는 인근에 살면서 농사 때만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현재 주민은 55가구 118명이다.

 유곡리는 원래 근북면이지만 김화읍에 편입돼 있다. 근북면의 다른 마을은 주민이 거주하지 않아 면사무소가 없기 때문이다. 주소와 토지대장 등에는 근북면으로 표기하지만 각종 행정 사무는 김화읍사무소에서 처리하고 있다.

 민통선마을 가운데 가장 변화가 없다. 조성 당시의 모습에서 달라진 것이 별로 없다. 슬레이트 지붕도 그대로다. 올들어서야 일부 지원을 받아 지붕을 개량할 계획이다. 이장 안석호(74)씨는 “누구도 마을에 들어와 살려고 하지 않아 1세대가 떠나면 마을이 공동화 될 것”이라고 말했다. 현재도 5동은 빈 집이다.

⑧ 철원 근남면 마현1리

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집을 잃은 경북 울진군(당시는 강원도) 주민이 1960년 이주해 정착한 ‘철원 속의 울진’이다. 이주민들이 고향을 잊지 않기 위해 울진 근남면을 따 이름지었다는 설이 있지만 사실이 아니다.

 처음 도착한 66가구 울진 주민 앞에 놓인 것은 갈대밭만 있는 황무지였다. 주민들은 24인승 텐트에 갈대를 깔고 군에서 지원한 닭털 이불을 덮고 1년을 지냈다. 다음해에도 천막에 구들을 깔아 생활하는 등 4년의 천막생활 끝에 군부대에서 흙벽돌 집을 지어 주었다. 학교도 없어 텐트촌에 천막을 쳐 교실로 사용했다. 교사도 없이 중학교 출신이 책 몇 권을 얻어다 가르쳤다.

 주민들은 2001년 마을 입구에 입주기념비를 세웠다. 기념비에 원입주민과 입주 2세대 이름을 새겼다. 원입주민 가운데 남성은 모두 사망하고, 여성만 20명 정도 생존해 있다. 재경울진군민회가 매년 이 마을을 찾아 주민들을 위로하고 있다. 황무지에서 출발했지만 마현2리와 함께 2000년대부터 벼농사 대신 파프리카·토마토 등의 시설농사를 하면서 소득이 높은 마을이 됐다. 흙벽돌집은 80년대 콘크리트로 새로 지었다.

⑨ 철원 근북면 마현2리

민통선 북방 전략촌을 만들고, 유휴농경지를 개발해 식량을 증산할 목적으로 68년 8월 조성됐다. 연립주택 30동을 지어 60가구가 입주했다. 입주민은 인근 군부대 제대 군인 출신이었다.

 마현1,2리는 동서로 길쭉한 분지형 마을이어서 일조량이 풍부하다. 낮과 밤의 기온 차이도 크다. 그 덕에 당도 높은 과채류가 나온다. 주민들은 90년대 후반 비닐하우스 농사에 눈을 돌렸다. 2000년대부터 파프리카·토마토·고추 농사를 주로 짓고 있다. 13농가는 일본에 파프리카를 수출한다.

 마현2리는 휴전선의 동·서 중간 지점에 위치했다. 앞 산에는 남북 분단 현장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승리전망대가 있다. 2002년 개관한 이곳에서는 금강산 철도, 아침마을 등 북한 모습이 보인다. 올해부터 하우스 농사체험과 함께 군부대 병영체험을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시설도 갖출 계획이다.

이찬호·전익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