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집으로 가는 길, 버스로 49시간 팔도유람 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9면

고향으로 가는 길, 꽉 막힌 도로 위의 당신. 많이 답답하신가. 혹시 이게 ‘작은 위로’가 될 수 있을지. 거의 49시간 걸린 어떤 이의 귀향 얘기다.

 2월2일 오후 5시48분 인천의 인하대 정문에서 출발. 총 서른 번의 버스를 탔다. 비용은 3만5300원. 2월4일 오후 7시33분 부산 배산역에 도착했다. 전국 18개 시·군을 거친 총 소요시간은 48시간45분. 대학생 이준건(26·사진)씨가 설을 앞두고 귀향한 방법이다.

 학교가 있는 인천에서 집인 부산까지 시내버스와 광역버스 만으로 이동했다. 한 손에는 빨랫감이 잔뜩 들어있는 가방, 다른 한 손에는 DSLR 카메라를 들었다. 꽤나 무거운 짐을 들고 광주를 제외한 광역시는 전부 들렀다. 버스 번호조차 없는 오지마을 순환버스도 탔다. 말로만 듣던 ‘사서 하는 생고생’이었다.

 ‘도대체, 왜?’라는 질문이 제일 먼저 튀어나왔다. 이씨는 “보통 여행이라고 하면 특정 목적지에 가는 것만을 이야기 하지만, 그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과정에서도 즐거움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떠나기 전 버스 노선을 모두 검색해 만반의 준비를 했다. 아니, 준비를 했다고 생각했다.

 막상 정류장에 가니 노선 번호가 바뀐 곳이 꽤 많았고 하루에 네 대만 다니는 버스도 있었다. 버스를 놓치니 당장 잘 곳도 없었다. 24시간 안에는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여행 이틀째에도 여정은 끝나질 않았다. 버스 시간에 신경이 곤두서 밥도 제대로 못 먹었다.

 그래도 이따금 버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풍경이 이씨를 위로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로서는 생경한 장면들도 많았다. “충북 옥천의 한 시골 마을에서 버스를 탔는데, 기사님하고 동네 어르신 손님들하고 정겹게 인사를 건네며 이야기를 나누더라고요. 안부를 묻는 것으로 시작해 동네 사람들 근황 얘기까지, 버스 안이 하나의 토크쇼 장이 됐어요. 난생 처음 본 광경이었어요.” 어르신들은 동네 버스에 탄 낯선 청년의 이야기에도 귀를 기울였다. ‘어떻게 여기까지 왔느냐’, ‘대단한 청년일세’부터 시작해 ‘나도 왕년에…’라는 어르신의 개인사까지 돌아왔다.

 이씨는 “산골 마을부터 계획 도시인 세종시까지 보고나니 마치 과거에서 현재로 시간여행을 하다 돌아온 기분”이라며 “새삼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지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도시에만 살아본 사람이라면 한번쯤 해보는 걸 추천한다고. ‘인천으로 돌아갈 때 또 한 번 시도하는 것 어떠냐’고 제안했더니 두 번은 힘들어서 못하겠단다.

홍상지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