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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3무 탈락 수모, 리우서 씻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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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역대 올림픽 축구대표팀 유니폼 앞에서 선전을 다짐하는 신태용 감독. [김진경 기자]

“내 운명이라고 생각했다.”

 신태용(45) 올림픽축구대표팀 감독은 비행기 안에서 운명이 바뀌었다. 지난 1일 호주 시드니에서 한국행 비행기에 오를 땐 A대표팀 코치였는데, 내릴 땐 올림픽팀 감독이 됐다. 울리 슈틸리케(61) 감독을 보좌해 아시안컵 준우승에 힘을 보탠 그는 이광종(51) 감독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아 올림픽팀 지휘봉을 내려놓으면서 중책을 맡았다.

 신 감독은 성남 시절 K리그 최초로 선수-감독으로 아시아 챔피언스리그와 FA컵 우승컵을 품에 안았다. 19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에 선수로 출전한 신 감독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본선행을 이끌면, 한국축구에서 선수-감독으로 올림픽 본선 무대를 밟는 세번째 인물이 된다. 16일 서울 축구회관에서 만난 신 감독은 “바르셀로나 올림픽에서 3무로 조별리그에서 탈락한 한을 풀고 싶다”고 말했다.

 -감독직 수락 과정은.

 “아시안컵 귀국 비행기에서 옆자리의 이용수 기술위원장이 갑자기 ‘올림픽팀을 맡아줄 수 있겠소’라고 물었다. 아시안컵 결승전(1월 31일) 전날 이광종 감독님이 급성 백혈병 진단을 받았고, 이 위원장이 고민 끝에 나에게 의사를 타진한 거였다. 아시안컵을 마친 뒤 충분한 휴식 없이 비행기에 올라 비몽사몽이었는데, 그 이야기를 들은 뒤 고민하느라 한 숨 못 잤다. 어린 선수들과 함께 뭔가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을 것 같아 수락했다. 이 위원장이 기술위원회와 논의 끝에 그날 밤 문자를 보냈다. ‘22세 이하 대표팀이 출전 중인 킹스컵 관전을 위해 태국으로 가야 되겠소’.”

 -리우 올림픽팀에 대해 ‘역대 최약체’란 평가도 나온다.

 “최고가 아닌 선수들을 데리고 최상의 전력을 만들 수 있는 게 감독의 능력이다. 도전해보고 싶었다.”

 신 감독은 2009년부터 4년간 성남을 이끌었다. 감독이 선수의 목을 장난 삼아 조르고, 선수는 감독의 엉덩이를 툭 찼다. ‘당나라 부대’처럼 보였지만, 아시아 챔피언스리그(2010년), FA컵(2011년) 우승을 거뒀다.

 -올림픽팀에서도 ‘형님 리더십’을 이어갈 것인가.

 “우리 선수들은 주입식 교육의 영향으로 늘 굳어있다. 일부러 훈련 때 장난을 치고, 스킨십을 한다. 실수를 하더라도 부담 갖지 말고, 즐기면서 할 수 있도록. 그래야 공격 지향적이고 과감해질 수 있다.”

 -슈틸리케 감독 보좌하며 배운 점은.

 “늘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의 의견을 경청하더라. 임기응변도 좋았다. 호주와 결승전 연장에서 수비수 곽태휘(알힐랄)를 최전방 스트라이커로 올린 게 대표적이다. 공격 자원이 워낙 부족해 경기 전부터 염두에 뒀다.”

 -리우 올림픽 주축은 류승우(22·독일 브라운슈바이크)를 비롯한 1993년생이다. 바르셀로나(스페인) 유스팀 소속 이승우와 장결희(이상 17), 백승호(18)도 발탁 가능하다.

 “류승우는 좋은 선수라 뽑을 생각이다. 반면 바르셀로나 유스팀 선수들을 호출하면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골격과 파워가 완성된 20살은 28살과 경쟁할 수 있지만, 청소년 또래에서 1년은 하늘과 땅 차이다. 선배들에게 밀려 벤치만 지키면 오히려 기가 죽을 수 있다.”

 -손흥민을 와일드 카드(23세 초과선수)로 뽑을 수도 있는데.

 “손흥민은 긍정적이고, 재능이 뛰어나다. 손흥민이 좋은 활약을 이어간다면 안 뽑을 이유가 없다.”

 -이광종 감독이 투병 중이다.

 “킹스컵에서 선수들이 이광종 감독님에게 우승을 바치겠다며 진짜 열심히 뛰었다. 우승 후엔 감독님을 위해 큰절을 올렸다. 좋은 성적을 낼수록 감독님이 마음 편히 병마와 싸울 수 있지 않겠나.”

글=박린 기자
사진=김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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