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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김종문의 스포츠 이야기

수퍼 세이브도 감정과잉의 산물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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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김종문
김종문 기자 중앙일보 기자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콘텐트 본부장

최근 열린 아시안컵 축구대회에서 차두리·손흥민 못지않게 주목받은 스타로 수문장 김진현이 있다. 그는 멋진 선방으로 골 문을 지키며 팀을 여러 차례 위기에서 구해냈다. 김진현은 골키퍼가 예측하기 가장 어렵다는 상대의 헤딩슛을 쳐내는 동물적인 감각을 발휘했다. 1대 1 상황에선 찰나의 망설임도 없이 거침없이 튀어 나가 상대 공격수를 압박하는 데 성공했다. 그가 나선 5경기에서 4경기가 무실점이었다. 이번 대회를 계기로 그는 한국 축구대표팀의 새로운 ‘수호신’으로 자리를 잡는 모습이다.

 그가 극적으로 공을 막을 때마다 방송중계 등에서 흔히 듣는 말이 있다. ‘수퍼 세이브(super save)’. 그런데 영어권 미디어에서는 축구 골키퍼에게 ‘수퍼 세이브’란 말은 정작 잘 쓰지 않는다고 한다. 대신 매우 뛰어나다는 뜻의 형용사 ‘수퍼브(superb)’를 붙여 ‘수퍼브 세이브’라는 표현이 있다고 한다.

 스포츠는 국경과 언어의 장벽을 쉽게 넘어다닌다. 그래서 용어나 표현도 외국어를 자주 사용한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말들이 나타나 돌아다니는 경우도 많다. 야구에서는 ‘스카우터’가 한 예다. 숨겨진 재능을 찾아 유망주를 발굴해내는 사람을 지칭하는 말로 국내에서 자주 쓰인다. 그러나 틀린 말이다. 스카우트(scout)는 그 일을 하는 사람을 나타내는 접미사(-er)를 붙이지 않는 단어다. 요즘 프로야구는 해외 전지훈련이 한창인데 이를 ‘스프링 캠프’라는 말로 표현하기도 한다. 정작 미국에선 ‘스프링 트레이닝’으로 통한다. 축구에서 골을 넣은 뒤, 야구에서 홈런을 친 뒤 선수가 멋지게 자축하는 모습을 ‘세리머니(ceremony)’라고도 하는데 이 역시 영어권에선 어색해한다. 셀리브레이션(celebration·축하)이 그들이 쓰는 말이라고 한다. 골프의 ‘훅 라이’ 등도 소위 콩글리시다.

 오늘 이야기의 주제는 정확한 용어를 쓰자는 데 있지 않다. 영어를 잘 하자는 말도 아니다. 일본에서 ‘리모컨’이란 줄임말로 원래 영어에 없던 용어를 만들었듯 새로운 외래어가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정체불명의 말을 생산 유통하고, 추종하는 우리의 심리는 한번쯤 생각해봤으면 싶다. 우리말 대신 왠지 영어가 멋져 보인다는 일종의 우상(偶像)숭배만은 아닌 것 같다. 번듯한 이미지에 쉽게 속는 일종의 허세 때문이 아닐까. 자극적인 형용사를 갖다 붙여야 직성이 풀리는 감정과잉의 시대에 살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 ‘슈퍼맨’이 냉전시대의 불안감에서 잉태됐듯이 말이다.

김종문 프로야구 NC다이노스 콘텐트 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