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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금융정보 활용 시스템 재정비 할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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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김수봉
보험개발원장

“북한이 외국의 보험회사들로부터 받아낸 2000만 달러가 든 두 개의 대형가방이 베이징을 거쳐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에게 전달된다.” 이 장면은 ‘007 시리즈’와 같은 첩보 영화에서나 봤을 법하지만 사실 미국의 한 일간지에 보도된 기사다.

 2009년 6월 워싱턴포스트는 북한이 수년간 국제적인 보험사기를 벌여 확보한 수억 달러의 현금을 노동당으로 송금한 사실을 대서특필 했다. 북한은 헬기 추락사고, 공장 화재 등을 이유로 독일의 알리안츠, 영국의 로이드 등의 외국보험사로부터 거액의 보험금을 수령했다. 이렇게 챙긴 보험금은 결국 김정일의 주머니로 들어갔고 노동당의 공작금으로 쓰였을 것이라는 점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현재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테러단체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이 국제적인 문제로 등장했다. 최근 일본인 기자와 요르단 공군 조종사를 잇달아 처형해 전 세계인에게 충격을 줬다. 재외동포와 해외 여행자가 증가하면서 한국도 그 영향권에 들었다. 10대 학생의 터키 실종, 교민 여대생의 호주 시드니 인질극 피해 등 사건이 해외에서 발생하며 국제적 테러 위험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 높아지고 있다.

 이와 같은 위험에 효과적으로 대응하는 방법으로 국제범죄·테러조직의 자금줄을 차단하거나 추적해 검거하는 방법이 있다. 이들 단체가 필요한 활동자금을 확보하는 과정에선 자금세탁, 고액현금 이체 등 금융거래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특히 외환거래가 자유화 되고 전 세계 금융망이 인터넷으로 연결되면서 테러·공작 자금도 대부분 온라인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대규모 금융거래가 발생하거나 휴면계좌에 갑자기 큰 금액이 입금되는 등 의심스러운 금융정보를 면밀히 분석한다면 범죄 행위 예방에 상당한 성과를 거둘 수 있으리라 본다.

 이미 세계 130여 개국이 금융정보를 활용한 자금세탁·테러자금 거래 차단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한국에서도 2001년 설립된 금융위원회 산하 금융정보분석원(FIU)이 마약·조세포탈 등 범죄행위 수사에 도움을 주고 있다. 금융정보분석원은 지난 한 해에만 약 900여 만 건 자료를 검찰, 경찰, 국세청 등 7개 기관에 제공하는 등 폭넓은 활동을 벌이고 있다. 그러나 현재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FIU법)’에 따르면 내란·외환(外患)죄와 국가보안법 관련 범죄 등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중대 범죄 수사와 같은 ‘진짜 안보’를 위해 우리 정보기관이 금융정보를 활용할 수는 없다. 개인적인 걱정이 앞선다. 앞서 언급했듯이 현대사회에서 범죄 예방과 국가안보에서 금융정보 분석은 매우 실효적이기 때문이다.

 금융정보분석원이 정확한 정보수집과 분석을 하려면 은행·보험을 비롯한 전 금융기관의 거래정보 정비가 필수적 전제 조건이다. 한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금융당국이 각 생명보험사에 자금세탁방지업무 개선안을 전달하고 보험사기의 개연성이 큰 고액보험 가입, 고액일시납보험 등에 대한 의심거래 추출 기준을 마련토록 지시했다고 한다. 그간 은행권을 중심으로 이뤄지던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은행 다음으로 큰 자금이 흘러드는 보험권에 요구한 것이다. 비은행권에 대한 금융정보 정비 조치라는 점에서 꽤 고무적이다. 여기에 정보기관이 대테러, 대공·방첩, 국제범죄 예방 등 국가안보를 위해 금융정보분석원 금융정보를 활용할 수 있게 되고 해외 각국의 금융정보까지 공유하게 된다면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는 거대한 울타리가 쳐지는 셈이다.

 올해 7월부터 신제윤 금융위원장이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의 의장직을 수행하게 된다. 한국이 국제사회로부터 국제범죄·테러조직의 자금줄을 차단하기 위한 국제공조체제의 리더국로서 인정받았다는 의미가 있다. 이제 성숙한 자세로 경제 전쟁, 국가안보, 국민안전을 위해 보험 등 비은행권의 특성을 고려한 자금세탁방지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할 필요가 있다. 뿐만 아니라 금융정보분석원 금융정보를 정보기관이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 마련도 조속히 검토하는 등 법적·제도적 미비점을 점검해 나갈 시기다.

김수봉 보험개발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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