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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 '하녀들' 삼각 로맨스, 끌리는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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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널찍한 부엌이다. 부뚜막에는 솥단지가 세 개나 걸려 있다. 수고로운 설 음식 장만도 이런 부엌이라면 신이 날 것 같다. 갈수록 재미를 더하는 JTBC 주말드라마 ‘하녀들’(금·토 오후 9시45분, 조현탁 연출·조현경 극본)의 실내 세트다. 조선 개국 공신의 외동딸 인엽(정유미)이 하루 아침에 노비로 전락하면서 이 곳도 더 바빠졌다. 하녀 생활의 수모를 견디며 아버지의 한을 풀 길을 찾는 인엽에게 매사 냉정한 노비 무명(오지호)도 끌리는 눈치다.

양반 도령 은기(김동욱) 역시 변함없는 사랑을 호소한다. 세트에서 세 배우를 만났다. 설 연휴에도 한층 흥미진진한 ‘하녀들’을 보여주겠다는 각오가 단단했다.

글=이후남·정아람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오지호 “감정 폭발 곧 보여줄 것”
정유미 “끝내 죽을 수 없는 운명”
김동욱 “순수한 사랑·열정 가득”

JTBC ‘하녀들’ 주연들이 말하는 캐릭터

그 중에도 정유미(31)는 시작부터 각오가 남달랐다. 도도한 양반 아씨에서 노비로 전락하는 인엽이 워낙 극적인 캐릭터인데다가, 드라마의 핵심인물이기 때문이다. 그는 "처음에는 부담이 굉장히 컸지만 연기를 하면서 육체적으로든 감정적으로든 힘든 게 힘들다고 느껴지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초반부터 혼례복 차림(인엽이 은기와 혼례를 올리는 날, 아버지가 역적으로 몰려 붙잡혀갔다)에 맨발로 도망치고, 오랏줄에 목이 묶이고, 물에 빠지는 힘든 장면을 찍었는데, 이 정도 힘든 건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어요. 전에는 작품에 ‘참여한다’는 생각이었는데, ‘내 작품’이란 마음이 든 건 이번이 처음이에요.”

미리 4회 분량까지 나온 대본은 캐릭터 준비의 중심이 됐다. "대본 안에서 많은 것을 찾으려 했어요. 예전에는 억지로 다른 영화나 책을 찾아 보고 도움을 받으려 했는데, 김수현 작가님의 ‘천일의 약속’(2011)을 하면서 아주 많은 게 대본에 숨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인물 간의 대사, 뉘앙스나 행동에 그 동안의 삶이나 관계가 보이는 거죠.

‘하녀들’도 대본이 너무 좋았어요. 내 연기가 더해져 망치면 안 된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감독님과도 얘기를 많이 했지만, 제 스스로 핵심 하나를 찾으려고 했어요.”

정유미는 그렇게 찾은 인엽의 핵심을 ‘강인함’으로 꼽았다. "아버지가 눈앞에서 사지가 찢겨 죽는 걸 보고도 ‘살아 남으라’는 말을 새겨 듣고, 아버지의 한을 풀려고 살아간다는 게, 강인한 정신력이 아니고는 못할 일이에요. 죽으려고도 했지만 죽지 못하는 운명이었고. 조선시대에 있기 힘든 여자에요. 노비인 무명 못지 않게 강인한 캐릭터죠.”

오지호(39)가 연기하는 무명은 정유미의 말마따나 한눈에도 강한 남자다. 인엽이 노비살이를 하게 된 병조판서(박철민)댁 하인 중 으뜸인데, 몸을 쓰든 말로 하든 매사를 빼어나게 처리한다. 다만 속내는 좀체 드러내지 않는다. 이런 무명을 오지호는 "비밀스런 사내”라고 불렀다.

"양반이라고 뭐든 잘하는 게 아니듯, 그 시대에도 모든 것에 능통한 노비들이 있었을 거에요. 그 중 하나죠.” 노비 연기라면 이미 드라마 ‘추노’(KBS2, 2010)에서 맛을 본 터다.

"‘추노’의 송태하는 장군이었다가 노비가 됐죠. 목적의식도 뚜렷했고. 그와 달리 무명은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른다는 점이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욕심도 없고, 시키는 것만 집중합니다. 그러다가 뭔가 자신을 알아가면서 변화하고 성장하는 캐릭터에요.”

초반에 유독 감정을 자제하며 연기한 것도 그래서다.

"하녀들이 뭘 물으면 무명이 좀 친절하게 답해주는 대사가 있었는데, 일부러 덜 친절하게 소화했어요. 감정 표출을 못하면 연기를 안 하는 것 같은 기분도 들지만, 그렇게 해놓아야 나중에 무명 스스로 내가 누구인지 알았을 때 폭발이 일어날 겁니다. 중·후반부터 드러날 무명의 정체, 감정적 혼란을 기대하셔도 좋아요.”

반면 김동욱(32)이 연기하는 은기는 지고지순함이 한결같은 캐릭터다. 신분이 몰락한 연인 인엽을 구하기 위해 이제는 다른 여자와 억지로 결혼하는 일까지 감내한다. 이런 은기를 김동욱은

"순수한 사랑에 대한 열정이 가득한 인물”이라고 말했다.

"그 사랑에 대한 믿음과 자신감도 넘쳐요. 누구든 한 번쯤 그랬을 법한, 어릴 적 누군가를 순수하게 한없이 바라보고 사랑했던 그 때를 떠올리게 하는 인물입니다. 그저 한 여자만을 아낌없이 사랑하는 순수함과 열정이 은기의 가장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얼핏 온실에서 자란 도련님 같은 은기를 그는 좀 색다르게 해석했다.

"부족함 없는 집안 배경과 달리 아주 외로운 어린 시절을 보낸 아이라고 생각했어요.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했고, 홀로 보내는 시간이 많았고. 그러면서 자립심이 강해졌고, 그렇게 외롭던 어린 시절부터 마음을 나누고 지내온 인엽이라서 지키려는 의지가 더욱 강한 거죠.”

이런 두 남자를 두고 정유미는 "듬직한 나무같이 지켜준다(무명)” "하나부터 열까지 지고지순하게 챙겨준다(은기)”면서도

"저는 친구 같은 사람, 뭘 해도 같이 할 수 있는 사람이 좋다”고 제3의 노선을 골랐다.

세 사람 중 은기는 호조판서(김갑수)의 아들이니 현재 신분이 가장 높다. 헌데 정유미는 김동욱이 영화 ‘후궁-제왕의 첩’(2012)에서 왕 역할을 했던 것을 두고 "신분이 하락했다”고 농담을 했다.

김동욱도 농담으로 받았다. "박철민 선배는 그 영화에서 내시 역할이라 허리를 편 적이 없어요. 서로 눈을 마주보고 대화를 한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는 가마만 타고 다니더라고요.”

정작 노비 중에 상노비인 오지호는 "왕보다 노비를 좋아한다”며 "노비는 일단 수염이 멋있어야 한다”고 당당히 말했다.

"저는 왕이 안 어울려요. 이국적인 선이 많은 얼굴이죠. ‘추노’에서는 장군-노비-장군이었는데 이번에는 완전 노비라 더 재미있을 것 같았어요.”

신분에 따른 서열이 엄연했던 시대에 신분의 벽을 넘나드는 세 사람의 관계에는 현대적인 로맨스 감성이 묻어난다. 오지호는 "과도기인 조선 초기가 배경”이라며 "고려 잔당이며, 왕자의 난이며 시대적으로 혼란스럽고 급격한 변화가 많았던 시기라서 그런 사랑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풀이했다.

지난해 말 ‘하녀들’은 퍽 참담한 일을 겪었다. 촬영장에 화재사고가 나서 메인 스크립터가 목숨을 잃었다. 오지호는 "마음을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아프고 안타까웠다”며 "모두들 그 친구가 잘하라고 도와준다고 생각하면서 열심히 하고 있다”고 전했다. 정유미는 "사명감이, 이 작품은 반드시 잘 끝내야 한다는 마음이 생겨서 다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설을 앞두고 만난 자리라 잠시 저마다 고향 얘기에도 열을 냈다. 부산에서 나고 자란 정유미는 "남포동의 맛있는 먹거리가 지금도 그립다”고, 김동욱은 "아버지의 고향인 춘천에 현재 부모님이 살고 계신다”고 들려줬다.

지난해 결혼한 뒤 첫 설을 맞는 오지호는 "고향 목포의 어른들은 물론이고 처가의 어른들도 여럿이라 찾아 뵐 데는 많은데, 아마 드라마 촬영장에서 연휴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드라마의 절제된 톤과 달리 여유로운 말솜씨로 인터뷰 내내 활력을 불어넣은 그는 자신감이 넘쳤다.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가 어마어마하게 재미있을 거에요. 정치적인 이야기도 그렇고, 하녀로 떨어진 인엽이를 통해 노비들의 설움을 이야기하는 것도 그렇고.”

글=이후남·정아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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