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중 대사, 국방장관 출신 김장수 … 한·중 군사협력 ‘밀착’

중앙일보

입력 2015.02.16 01:00

업데이트 2015.02.1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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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013년 11월 18일 김장수 당시 국가안보실장(왼쪽)이 청와대에서 양제츠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과 한·중 첫 고위급 외교안보 전략대화를 했다. [중앙포토]

정부가 신임 주중국대사에 김장수(67) 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내정했다고 한다.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23년 만에 첫 군인(육군 대장) 출신 중국대사다. 김 내정자를 발탁한 건 권영세 대사에 이어 중량급 인사를 배치할 필요가 있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여권 관계자들이 전했다.

 김 내정자는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내며 1년3개월간 박근혜 정부의 외교안보 컨트롤타워 역할을 해 왔다. 2013년 11월엔 양제츠(楊潔?)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과 최초의 한·중 고위급 외교안보 전략대화도 연 경험이 있다. 외교 소식통은 “한·중 관계가 좋아지는 중에도 개선 속도가 더딘 분야가 군사협력”이라며 “4성 장군 출신을 중국대사로 보내는 것은 한·중 관계 전체를 업그레이드해 보자는 뜻으로, 박 대통령이 심사숙고해 내린 결정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내정자는 지난해 5월 세월호 참사 국면에서 경질된 지 9개월 만에 다시 외교현장 업무로 복귀했다. 당시 김 내정자는 “국가안보실이 재난 컨트롤타워는 아니다”는 발언으로 여론의 비판을 받아 퇴진했다. 그를 1년도 안 돼 주중대사에 기용한 건 박 대통령의 신임이 여전하다는 사실을 보여 준다.

 김 내정자는 진보와 보수 정부를 가리지 않고 3개 정부에 걸쳐 역할을 하고 있는 보기 드문 이력의 소유자다. 노무현 정부에서 국방부 장관을 지낸 김 내정자는 이명박 정부에서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소속 비례대표 의원으로 영입됐다. 2012년 대선 캠프에서 ‘국방안보추진단장’을 맡으며 박 대통령의 외교안보 분야 최측근으로 부상했다.

 국가안보실장 시절인 2013년 초에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 맞서 3개월 동안 서울 장충동 자택으로 퇴근하지 않고 청와대 인근에서 숙식을 해결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안보실장을 마치고 나서 한동안 허리디스크로 고생했다고 한다.

 김 내정자는 학창 시절 쌀겨를 볶아 도시락을 쌀 정도로 어려운 집안에서 자라나 광주제일고를 졸업한 뒤 육사(27기)에 들어갔다.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등을 거쳐 별 넷(대장)인 합참의장을 마지막으로 2006년 11월 전역했다. 전역 후 바로 국방부 장관에 발탁된 그는 당시 노무현 대통령을 수행해 평양에 갔을 때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악수하며 허리를 숙이지 않아 ‘꼿꼿장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김 내정자는 “내 뒤에 60여만 명의 장병이 있다는 생각에 허리를 숙일 수 없었다”고 당시를 회고하곤 했다. 국방 전문가로서 외교 분야 경험이 부족하다는 평가도 있지만 중국은 김 내정자를 반기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과 ‘핫라인’을 가동할 수 있는 인물이라 여기기 때문이다.

 중국은 과거 “직업 외교관이 주중 한국대사로 오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우리 측에 몇 차례 불만을 표한 적이 있다. 무게감 있는 정무형 인사를 원한다는 취지였다. 실제 제2대 주중대사(1993~95년)를 역임한 황병태 전 대사는 가장 성공적인 ‘실세 대사’로 꼽힌다. 황 전 대사는 경제관료 출신으로, 13·15대 국회의원을 지낸 김영삼 전 대통령의 최측근이었다. 장쩌민(江澤民) 당시 중국 국가주석이 황 전 대사를 ‘영원한 주중대사’로 칭할 정도로 중국 지도부와 각별한 네트워크를 맺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2009년 류우익 대통령실장을 주중대사로 임명했을 때도 중국은 환대했다.

 정부는 이번 상반기 공관장 인사에서 위성락 주러시아대사도 교체할 예정이라고 한다. 김 내정자는 아그레망(주재국 동의) 절차를 거친 뒤 공식 임명된다.

정용수·유지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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