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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줌마저씨 敎육 공感

자식농사란 말부터 쓰지 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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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강홍준
강홍준 기자 중앙일보 데스크
강홍준
사회1부장

“보내야 해? 재수시켜야 해?”

 지난주 대입 추가합격 발표 시즌에 전화를 건 친구 목소리는 다급했다. 아들이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은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안 선다고 했다. 합격 학과의 취업률 실적이 상대적으로 나쁘지 않아 보낼까 싶지만 덜컥 등록했다가 나중에 후회하지나 않을지….

 우선 반수·재수를 권하기엔 너무 상황이 불투명하다. 수능이란 단판 시험에서 올해 역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예측하기 힘들다. 쉽게 출제된다고 하지만 이렇게 되면 당일 컨디션이 큰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한 해 농사가 당일 컨디션에 좌우될 정도인데 재수하라는 말을 할 수 있을까. 그렇다고 그냥 다니라고 권하기엔 뒷골이 좀 당긴다. 굳이 SKY(서울·고려·연세대) 인문계 취업률 통계를 들이대지 않더라도 이제 입학은 고민의 끝이 아니라 문제의 시작일 뿐이다.

 앞으로도 당분간 일자리 창출이 생각만큼 쉽지 않을 저성장시대다. 신문사에서도 같은 부서에 26년차 선후배가 팀을 이뤄 일을 한다. 서로 아빠나 딸이라고 불러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 차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신참은 그나마 정규직 자리를 잡은 게 행운이며, 30년 가까이 한 회사를 다닌 고참은 출근할 곳이 있어 다행이다. 과거 같으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광경이다.

 이런 저성장시대에선 자식농사란 말이 무색해진다. 구슬땀을 흘려 노력한 만큼 수확을 얻는 게 농사인데 이미 교육은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기 힘들다. 농사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투입 대비 산출이 낮다는 뜻이다. 많이 버는 전문직종 종사자들이나 그렇지 못한 사람들이나 자식 교육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지만 한 번은 대입에서, 또 한 번은 취업에서 절망한다.

 농사에선 추수 후 결실의 책임이 농사꾼에게 돌아온다. 자식농사라는 말이 있는 한 교육에서도 부모는 승자 아니면 죄인처럼 스스로를 생각하기 쉽다. 지금도 아이가 명문대에 가거나 그 반대로 대입에서 떨어지면 모든 잘잘못이 부모에게 떨어지는 듯하다. 부모 자신이 성공한 듯 의기양양하거나 쪽박 찬 듯 입도 뻥끗 못한다. 자식이 공부를 잘해 집안이 벌떡 일어날 수 있었던 과거에나 통할 수 있는 게 자식농사란 말이며, 부모의 부채의식이다.

 자식에 대한 조급증부터 좀 줄였으면 한다. 당장 눈에 확 들어오는 수익은 기대하기 어려운 시대 아닐까.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우리의 부모가 그랬듯 우리도 자식을 묵묵히 지켜보는 조력자로서 자리를 지켰으면 한다.

강홍준 사회1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