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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김영란법, 안 막아줘도 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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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2주 전 시시각각 코너에서 ‘김영란법’에 언론인 특혜를 주지 않아도 된다고 썼습니다. 걱정이 되고 자존심도 상하지만 지금 언론의 특수성을 인정받으려 하면 ‘김영란법’은 또 물 건너 갈 우려가 있기 때문입니다. 법의 적용 대상을 공직자로 한정하면 몰라도 연관 민간 직종까지 확대할 요량이라면 언론인에게도 같은 잣대를 들이대도 좋다고 주장했습니다. 공교롭게도 이번 주에 김영란법과 언론인을 싸잡아 욕 보이는 발언이 튀어나왔습니다. 돌출 발언의 스피커는 다름 아닌 이완구 총리 후보자였습니다.

 그는 경찰 출신 정치인입니다. 젊은 기자 시절에 본 그는 야심만만하고 언행이 민첩했습니다. 현장 기자에게 친절과 압박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할 줄 아는, 몇 안 되는 경찰 간부였습니다. 최근 공개된 녹취파일을 보며 그의 일관성을 봤습니다. 20여 년이 지났는데도 그 모습이 남아 있더군요. 그는 현장 기자들과 김치찌개를 나눠먹으며 프로다운 말솜씨를 보여줬습니다.

 “김영란법에 기자들이 초비상이거든, 안 되겠어 통과시켜야지 내가 막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통과시켜서, 여러분들도 한 번 보지도 못한 친척들 때문에 검경에 붙잡혀가서 당해봐… 지금까지 내가 공개적으로 막아줬는데, 이제 안 막아줘.”

 이를 요약하면 이렇게 됩니다. ①언론인들이 금품향응 규정에 걸릴까 봐 김영란법을 두려워한다. ②언론이 김영란법을 저지하려 한다. ③자신이 입법 저지로 언론에 특혜를 주고 있다. 결론부터 얘기하겠습니다. 언론인 중 과도한 금품향응을 받는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않습니다. 몇몇 기자가 불편함을 호소했는지는 몰라도 대다수 언론은 김영란법 통과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셋째는 모르겠습니다. 그가 언론의 수호자로 활동했는지….

 소액(少額)매수 가능자-. 언론인들이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농처럼 쓰는 표현입니다. 용돈 정도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을 뜻합니다. 이 표현에는 취재 과정에서 어쩔 수 없이 약간의 식사와 편의 제공에 응해야 하는 현실이 스며들어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쓸 건 쓴다”는 반어적 의미도 포함돼 있습니다. 일부 정치인은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조금만 잘해주면 언론인의 행동과 태도를 금방 바꿀 수 있다고 믿습니다. 시대가 바뀌었는데도 ‘소액매수 가능자’의 신화는 여전합니다.

 얼마 전 JTBC 뉴스에서 손석희 앵커가 ‘위스키 & 캐시’라는 표현으로 역대 권력이 언론을 대하는 자세를 설명하더군요. 김대중 정부 시절 한 실세가 했다는 말입니다. 실세는 위스키(술자리)와 캐시(용돈)로 언론인을 구슬러 왔다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발언의 파문이 확산되자 그 실세는 “밥과 술은 자주 나눴지만 돈은 아니다”고 해명했습니다. 기자를 ‘소액매수 가능자’로 본 겁니다. 20년 전 ‘위스키 & 캐시’가 ‘김치찌개 & 김영란’으로 부활했습니다.

 김영란법은 검사같이 힘 있는 공직자의 부정청탁을 막기 위해 출현했습니다. 그 적용 범위를 민간 직종까지 넓히면 부작용이 예상됩니다. 권위주의 정권이 들어서면 검찰이 민간 영역을 옥죄는 수단으로 악용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언론에 특혜를 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직자로 한정하면 몰라도 사립학교 교원이나 병원 의사 등이 들어간다면 언론인도 포함돼야 한다고 봅니다.

 돌출 발언으로 김영란법과 언론인의 관계 설정은 더욱 뚜렷해졌습니다. 핵심 공직자의 입에서 이런 말까지 나온 마당에 언론인이 별도의 취급을 받았다가는 특혜 시비에 휘말릴 겁니다. 그러니 다른 민간 직종과 같은 기준에 따라 처리하십시오.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2월을 넘길 생각을 하지 마십시오. 김치찌개, 내 돈으로 먹어도 됩니다. 김영란법, 안 막아줘도 됩니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