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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둘, 아빠 하나 … “유전병 치료” vs “유전자 조작 빗장 풀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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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부모들은 아이의 유전적 자질을 일부 선택하거나 조작하게 될 것이다. 이런 선택 중 일부는 여전히 혐오감을 주는 반면 어떤 선택은 신중한 육아의 일부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어떤 지역에서는 이런 기술을 허용하지만 이를 법으로 금지하는 지역도 있기 때문에, 이런 기술은 생식 기술을 다루는 국제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을 것이다.”

 2012년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앨빈 로스 미국 하버드대 명예교수가 공저 『새로운 부의 시대』에서 내놓은 21~22세기 예측이다. 먼 미래의 전망 같지만 기술적으로는 이미 현실이 됐다. 지난 3일(현지시간) 영국 하원이 여성 2명과 남성 1명의 DNA를 결합해 아기를 가질 수 있도록 하는 ‘3부모 체외수정’ 법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본지 2월 5일자 12면>

정말 ‘디자이너 베이비(맞춤 아기)’ ‘GM (유전자 변형) 베이비’ 시대가 열리는 걸까.

 영국에서 통과된 법부터 알아보자. 디자이너 베이비 시술 대상은 일반인이 아니다. 미토콘드리아에 돌연변이를 가진 여성들로 한정된다. 미토콘드리아는 세포에 에너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이 때문에 이곳에 문제가 생기면 체내 기관이 기능장애를 일으킨다. 특히 에너지를 많이 쓰는 뇌·근육 등이 고장 나 뇌졸중·근병증 등에 걸리기 쉽다. 이런 미토콘드리아 돌연변이는 신생아 5000명당 한 명꼴로 발생하는데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미토콘드리아 DNA가 큰 영향을 미친다. 이 DNA는 남자의 정자에도 들어 있지만 이들은 수정 후 사라지기 때문에 돌연변이는 100% 난자를 통해 모계 유전된다.

 BBC에 따르면 샤론 베르나르디라는 여성은 이런 미토콘드리아 질환으로 7명의 아이를 잃었다. 이번에 통과된 법안은 그녀와 같은 여성의 난자(혹은 배아)에서 핵만 추출한 뒤, 핵을 제거한 다른 여성의 미토콘드리아와 결합해 체외수정하는 것을 허용했다. 베르나르디는 법안 통과 후 “(감격해) 어쩔 줄을 모르겠다(overwhelmed)”고 말했다. .

 법안 지지자들은 윤리적 논란은 하등 문제 될 게 없다고 주장한다. 사람은 대략 2만~2만5000개 유전자를 갖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세포 핵 에 담겨 있다. 미토콘드리아에 있는 유전자(37개)는 전체의 0.1%밖에 안 된다. 과학적으로 보면 ‘3부모’가 아니라 ‘2.001 부모’이며, 미토콘드리아 치환은 세포의 ‘배터리’를 갈아 끼우는 것에 불과하다는 것이 찬성론자들의 얘기다.

 반면 반대파는 한 번 미끄러지기 시작하면 멈출 수 없다는 ‘미끄러운 비탈길(slippery slope)’ 이론을 강조한다. 처음에는 희귀질병 치료를 위해 허용한다지만 한 번 ‘빗장’이 풀리면 곧 걷잡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있다. 2013년 저명 과학저널 ‘사이언스’가 개최한 정책토론에 참여한 독일 튀빙겐대학의 클라우스 라인하르트 박사는 “핵 DNA와 미토콘드리아 DNA는 광범위하게 상호작용을 한다. 한쪽에 변화가 생기면 정상 기능을 못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이런 방식으로 태어난 원숭이 수컷들은 4세가 될 때까지 제대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차병원 줄기세포연구소 이동률 교수는 “ 문제 가능성이 있다는 보고가 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환자들에겐 죽고 사는 문제다. 어느 정도 위험은 감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한국에도 미토콘드리아 질병 환자가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2013년 ‘미토콘드리아 근(筋)병증’으로 치료받은 환자만 652명이다. 매년 환자가 조금씩 늘고 있으며, 이들 중 절반 이상이 10세 미만 어린이다. 영국 못지않게 미토콘드리아 대체 기술에 대한 잠재 수요가 있는 셈이다.

 이 기술이 난임(難姙) 환자에게까지 적용된다면 논란은 더 커질 수 있다. 1990년대 미국 뉴저지주의 자크 코언 박사는 자신의 병원에서 미토콘드리아를 포함한 세포질을 환자들의 난자에 이식해 17명의 아이를 출산시키는 데 성공했다. 다른 병원들도 곧 같은 기술을 도입했고 전 세계적으로 30~50명의 ‘3부모 아이’가 태어났다. 미토콘드리아를 이용한 난임 치료는 2001년 미국식품의약국(FDA)이 ‘생식세포 유전자 치료법’으로 규제하면서 중단됐다. 하지만 FDA는 지난해 규제 철폐 여부를 논의하기 위한 공청회를 시작했다. 같은 해 미 생명과학업체인 ‘오버사이언스’는 “젊은 여성의 난자 전구세포에서 채취한 미토콘드리아를 다른 여성의 난자에 주입해 노쇠한 난자를 ‘회춘’시키는 기술을 개발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생명윤리 전문가인 강원대 의학전문대학원 류영준 교수는 “한국은 불임 치료에서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인데, 미토콘드리아 대체술 같은 첨단 보조생식술에 대한 규정이 하나도 없다”며 “제도 정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미토콘드리아 대체술을 직접 명시한 규정은 없지만 생명윤리법에 사회적으로 심각한 윤리 안전 문제를 야기하는 기술은 반드시 심의를 거치도록 돼 있다”며 “환자나 의료계의 요구가 있으면 공론화 과정을 거칠 것”이라고 밝혔다.

김한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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