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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삶의 향기

다른 소리를 얻는 기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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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

여럿이 노래할 때 모든 이가 다 같은 가락을 부르는 방식을 제창(齊唱)이라 한다. 국민의례 때 애국가를 부르는 방식이다. 우렁차고 단합된 소리를 얻을 수 있지만 음악적으로는 단조롭다. 제일 쉬운 방식이기도 하다.

 단조롭지 않게 하려면 다른 소리가 필요하다. 물론 다른 소리이되 조화로운 소리여야 한다. 그래서 파트를 나눈다.

가장 일반적인 것이 남녀를 나누고 또 각각 고음과 저음을 나눠 네 파트를 만드는 것이다. 소프라노와 알토와 테너와 베이스의 합창이 이것이다. 애국가를 합창으로 하게 되면 소프라노가 애국가의 선율을 맡는다. 다른 세 파트는 화음을 한다. 애국가의 선율을 포함한 조화로운 네 개의 소리가 합쳐지는 것이다.

비교적 쉽고도 효과적인 방식이어서 애국가뿐만 아니라 교회의 찬송가, 음악시간에 배우는 여러 노래가 이러한 방식으로 부를 수 있게 돼 있다.

 합창의 방식이 쉽고도 효과적이지만 아직 높은 기술은 아니다. 제창처럼 다른 소리를 아주 배제하지는 않지만 한 파트만 주된 가락을 부르고 나머지는 들러리를 서기 때문이다.

회의하는 자리에 비긴다면 한 사람이 다 얘기하고 다른 사람은 받아 적기만 하거나 부수적인 의견만 개진하는 격이다. “왜 나는 주선율을 못 부르게 하느냐?”는 것이 다른 세 파트의 불만이다.

 이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더 고급 기술이 필요하다. 대위법이 이러한 기술을 연마하는 방법인데 그 최고의 단계에 푸가라는 기술이 있다. 푸가가 시작되면 한 파트가 주제를 제시한다. 말하자면 발제다.

이 제시가 끝나면 다른 파트가 그 주제를 받아 노래하는데 이때 먼저 나온 파트는 들러리 선율을 부른다. 두 번째 파트의 발제가 끝나면 다시 세 번째 파트가 받아 주제를 노래하고, 이렇게 모든 파트가 한 번씩 그 주제를 돌아가면서 노래한다.

한 파트에서 주제가 제시될 때 다른 파트들은 들러리 선율로 논의에 참여한다. 그래서 주제의 제시가 진행될수록 다양한 다른 선율이 얽혀 소리가 풍성해진다. 이렇게 한 순배 돌아가면 이것을 첫 번째 제시부라고 한다. 1차 토론이 끝나는 것에 해당된다. 하나의 푸가는 보통 이런 과정을 세 번 거친다.

 학술대회에 가면 지정 토론자가 있다. 그의 역할은 발제되는 논문에 비판을 가하는 것이다. 비판을 통해 발제의 의미가 더 부각되고 있을 수 있는 오류가 미리 걸러진다는 믿음이 이러한 장치를 두게 된다.

푸가에도 마찬가지 수법이 있다. 주제가 제시될 때 다른 파트에서 들러리 선율 대신 대주제, 즉 주제와 대립되는 다른 주제를 부르는 것이다. 대립되기는 하지만 원주제와 조화를 이뤄야 함은 물론이다.

 다른 소리를 얻는 푸가의 기술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제일 멋진 것 중 하나가 2중 푸가다. 위에서 언급한 방식으로 하나의 푸가를 다 마칠 즈음에 새로운 주제를 가지고 다시 제시부가 시작된다.

그러고는 이 두 번째 부분을 마무리하면서 첫 번째 푸가와 두 번째 푸가의 주제를 합쳐 대단원의 결말을 만드는 것이다. 말하자면 회사 발전전략을 놓고 두 조로 나뉘어 분임토의를 한 다음 이 결과를 합쳐 종합토의하는 식이다.

  2중 푸가에서 나오는 두 개의 주제는 흔히 대조되는 성격을 갖도록 만들어지는데 하나가 완만하면 다른 하나는 성급하다.

조금 다르지만 베토벤은 제9교향곡의 마지막 악장 합창 부분에서 “천상의 환희”와 “백만의 인류들이여”라는 두 주제를 따로 제시해 놓은 다음 후에 이를 합쳐 하나의 푸가로 만들면서 감동적인 장면을 연출해 낸다. 하늘과 땅, 운명과 의지, 보수와 진보가 충돌하고 화해하는 것이 저절로 표상된다.

 애국가의 리더십을 우리는 경험했다. 그러나 이제 단합된 소리보다 조화로운 소리가 중요하다. 예전처럼 ‘백의민족’을 앞세운 단일민족에서 하루가 다르게 글로벌화된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이제 열린 사회, 다문화 사회를 맞고 있으니 푸가를 통해 새로운 리더십을 배우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이건용 작곡가·서울시오페라단 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