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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요르단 국왕의 ‘전투복 메시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3호 02면

요르단의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 국왕의 전투복 차림 사진 한 장이 전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가 자국 공군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 중위를 산 채로 불태운 데 대한 보복 공습에 앞서 요르단 정부가 공개한 사진이다. 요르단은 이후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시리아의 IS 기지를 폭격하는 ‘순교자 마즈 작전’을 수행했다.

 압둘라 국왕이 직접 공습에 나서진 않았지만 전투복 차림으로 군을 진두지휘하는 모습은 요르단 국민은 물론 전 세계인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에 충분했다. 그가 “어려울 때 맞서 싸우는 힘을 보여 주자”며 국민을 독려한 덕에 요르단 국민은 엄청난 충격 속에서도 내 탓, 네 탓을 따지며 분열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를 비롯해 국가적 난제가 벌어질 때마다 국론이 사분오열하기 일쑤였던 한국과는 대조적이다.

 군주국 요르단에서 왕은 군 통수권자다. 압둘라 국왕은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육군사관학교를 나온 공군 조종사 출신이다. 전투복을 입는 게 굳이 화제가 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건 위기 때 국가 지도자의 역할과 리더십에 대해 결정적인 메시지를 던져줬기 때문이다.

 지도자의 진면목은 위기 때 드러나는 법이다. 위기 속에서 국민을 통합시킬 수도, 거꾸로 분열시킬 수도 있다. 그는 전투복 차림 하나로 테러리스트에게 무기력하게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지를 확실하게 보여주며 충격에 빠진 국민 마음을 추슬렀다.

 리더십은 옷차림과 표정의 문제가 아니다. 안 입던 전투복을 갑자기 입는다고 리더십이 확 생겨나겠는가. 평소에도 소통하는 자세를 꾸준히 보여왔기 때문에 전투복에 담긴 메시지가 국민에게 고스란히 전파되는 것이다. 그게 리더십이다. 불통이라는 비판을 의식해 잠시 재래시장 찾아가는 식의 유치한 쇼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압둘라 국왕에 관한 기사에 줄줄이 달린 인터넷 댓글들도 대부분 우리에겐 왜 그런 리더십이 없느냐는 내용들이다.

 물론 국왕의 전투복 차림이 정치적 제스처란 지적도 나온다. 요르단 정부가 지난해 말 알카사스베의 생포 사실을 알고도 구출에 소홀했다는 비판여론을 의식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강력한 리더십의 연출은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군주제 국가인 요르단은 한국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정치 선진국이 아니다. 또 국왕과 민주국가의 정치 지도자를 단순 비교할 수도 없다. 그러나 리더십의 본질은 같다. 국민은 어려울수록 강력한 리더십을 갈망한다. 무기력한 지도자에겐 실망한다. 강력한 리더십은 철권통치와는 다르다. 난국을 뚫고 나가겠다는 결연한 의지, 국민을 하나로 모으는 통합적 소통, 명확한 신념에 근거한 신속한 결단력, 그리고 스스로 모든 책임을 지겠다는 궁극적인 당사자 의식이 강력한 리더십의 구성요소다. 그런 면에서 전투복을 입은 단호한 요르단 국왕의 모습은 그 어떤 정치인의 입놀림보다 효과적인 메시지를 줬다. 우리의 정치 지도자가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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