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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입은 요르단 국왕 “가차없다” … 전투기 30대 IS 폭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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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5일(현지시간) 전 세계의 시선이 요르단으로 쏠렸다. 압둘라 2세 이븐 알후세인(53) 요르단 국왕이 자국의 공군 조종사 마즈 알카사스베(27) 중위를 산 채로 불태우는 영상을 공개한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압둘라 국왕은 이날 IS에 “가차없는 전쟁(relentless war)을 시작한다”며 요르단 군 전투기 30대를 동원해 IS 기지 폭격을 지시했다. 공격 대상은 시리아 라카에 위치한 IS의 군사시설이다. 영국 가디언은 이날 공격으로 어린이 12명을 포함해 57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공습작전의 이름은 숨진 조종사의 이름을 따 ‘순교자 마즈 작전’. 나세르 주데 요르단 외무장관은 “이번 공습으로 알카사스베의 죽음에 대한 복수의 서막을 열었다”며 “IS를 괴멸시키겠다”고 했다. 미군도 요르단에 정찰과 첩보를 지원하면서 이번 IS 공습을 도왔다.

 한때 압둘라 국왕이 직접 전투기를 몰고 IS를 공습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왔지만 요르단 정부는 “압둘라 2세가 IS 보복을 위해 직접 공습에 참여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전투복을 입고 진두지휘하는 압둘라 국왕의 모습은 화제를 모았다. 요르단 정부가 공개한 사진에서 그는 전투기에 오르는 군인들을 독려하고 병사들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누며 식사를 하기도 했다.

 압둘라 국왕은 1999년 아버지 압둘라 1세 국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기 전까지 군인으로 복무했다. 영국 샌드허스트 왕립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요르단에서 공군 헬리콥터 부대 전술교관, 경호부대 소령, 특전사령관을 역임했으며 코브라헬리콥터 조종사로 명성을 날렸다. 압둘라 국왕은 헌법을 개정하고 의회에 국왕의 권한을 일부 이양해 ‘아랍의 봄’ 사태 때도 시리아·리비아와 달리 왕정을 지킬 만큼 국내 입지가 탄탄하다. 그는 미국의 인기 SF 시리즈물 ‘스타트렉’의 광팬으로 96년 엑스트라로 출연하기도 했다. 왕위에 오른 이후 한국을 네 차례 방문했다.

 방미 중 알카사스베 중위의 사망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한 그는 자신의 분노를 할리우드 거장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 ‘용서받지 못한 자’를 인용해 설명했다. 주인공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극 중 대사 “나는 나에게 총을 쏜 사람과, 그의 아내와 모든 친구들, 그리고 그의 집까지 모두 불살라 버리겠다”를 인용한 뒤 "IS는 지금껏 한 번도 겪어 보지 못한 응징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어려울 때 뭉쳐 IS에 맞서 싸우는 힘을 보여 주는 것은 우리 요르단 국민의 의무”라며 국민을 독려하기도 했다. 국왕의 전례 없이 강력한 대응에는 그간 요르단 정부가 알카사스베 중위를 구출하는 데 소홀했다는 국내 비판여론을 잠재우는 측면도 있다.

 요르단의 전력 또한 아랍권에서 최고 수준이다. 현역 11만7000명의 병력과 탱크 1300여 대, 장갑차 4600대, 항공기 250대 등을 갖추고 있다. 미국의 지원에 힘입어 아랍에서 가장 현대적인 특수부대를 보유하고 있다. 수도 암만에는 압둘라 국왕의 이름을 딴 ‘압둘라 2세 특수전 훈련센터(KASOTC)’도 있다.

 압둘라 국왕은 IS를 공습하기 직전 부인인 라니아 알압둘라(45) 왕비와 함께 알카사스베 중위의 고향을 방문해 유족을 만났다. 요르단 국영방송은 전투기들이 알카사스베 중위의 고향 마을 상공을 지나며 경의를 표하는 장면을 전했다. 이 전투기들은 암만으로 돌아간 다음 IS 공습작전에 바로 투입됐다.

 ◆ “IS 영상에 파리 테러 여성 등장”=지난달 9일 프랑스 파리에서 발생한 유대인 식료품점 테러 사건과 연관된 여성 하야트 부메디엔이 IS의 선전 동영상에 등장했다고 CNN 등이 5일 보도했다. 사살된 테러범 아메디 쿨리발리의 부인인 부메디엔은 파리 테러와 깊게 연관돼 있으나 사건 이후 행방이 묘연해 프랑스 당국의 추적을 받고 있다.

하선영 기자
[사진 요르단 정부 페이스북·인스타그램·유튜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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