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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식 기자의 새 이야기 ⑫ 두루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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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쪽같이 사라진 것이 있다. 설 무렵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했던 것. 하얀 새가 ‘감사’ ‘은혜’ ‘기원’의 마음을 품고 붉은 해 위를 날았다. 연하장 얘기다. ‘근하신년’과 함께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새, 두루미. 한 해를 상징하는 십이지간의 동물이 따로 있건만, 두루미는 정초가 되면 가가호호 날아들어 사람과 사람 사이를 따뜻하게 이어주었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두루미에 대해 헷갈린다. 학이니 단정학이라는 말은 두루미의 별칭일 뿐이다. 몸통이 하얘서 두루미와 헷갈리는 새로 황새와 백로가 있다. 그러나 하얗다고 다 학은 아니다.

우선 두루미의 키(140~150㎝)는 아이만큼이나 크다. 이보다 작은 황새(110~115㎝)의 다리는 붉은 색을 띤다. 두루미의 목과 셋째 날갯깃(꽁지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많다)은 검고 정수리가 붉다. 두루미와 황새가 겨울철새인 것과 달리 백로는 대부분 여름 철새다. 그러니까 여름에 제법 큰 하얀 새를 봤다면 그건 학이 아니라 백로라는 얘기다.

예부터 두루미는 우리 생활 주변에 있었다. 연하장뿐만 아니라 글과 그림에서 의복, 도자기에 이르기까지 어디든 자유롭게 넘나들었다. 또 올곧은 선비는 그의 고고한 자태를 닮기를 희망해 학춤까지 따라 출 정도였다. 2015년 정초, 그들은 더 이상 따뜻한 인사를 배달하지 않는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나? 천연기념물과 멸종위기종이 되어 엄동 한철 철원과 연천의 민통선 부근에서만 어렵게 만날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두루미는 있다. 주머니에 500원 동전이 있는가? 동전을 던져보시라. 뒷면이 나왔다면 새해 돈 많이 벌 운세, 앞면이 나왔다면 무병장수할 운세. 그가 바로 천년을 산다는 두루미니까.

안성식 기자 anses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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