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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는 을미경장, 우리는 싸움만” … 새정치련 한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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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

지난 2일 오전 11시45분. 국회 본청 246호엔 박수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유승민 원내대표 선출을 자축하는 새누리당 의원들의 박수 소리였다.

 같은 시각 국회 새정치민주연합 당 대표 회의실엔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전당대회준비위원들이 모여 여론조사 룰 변경에 관한 회의를 하는 자리였다.

 이날 전준위원들은 여론조사 문항의 ‘지지후보 없음’이란 항목을 문재인 후보의 요청에 따라 무효 처리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박지원 후보가 강력 반발하면서 야당은 수렁에 빠져들었다.

 이날 오후 9시 JTBC 토론회는 “세 분 중 어느 분도 중간에 안 나가신 게 다행”(손석희 앵커)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유례없이 험악한 분위기였다.

 한자리에 모인 당 대표 후보들은 “친노의 비열한 횡포다. (친노에 패한) 안철수, 손학규 대표의 심정이 이해가 된다”(박지원)거나 “가장 저질의 토론”(문재인)이라는 말을 서로의 면전에 퍼부었다.

 후폭풍은 당내에서부터 일어났다. 3일 국회 본회의장에선 야당 의원들이 삼삼오오 모여 전날 있었던 문·박 후보의 난타전을 걱정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도 이날 측근들에게 “어제 토론회가 최근 상승세에 있던 당 지지율을 5%포인트는 깎아 먹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당내에서 가장 크게 울리던 소리가 ‘옆집’ 새누리당과의 비교다.

 전준위원인 홍의락(초선·비례)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2월 2일은 새정치연합에 ‘블랙 먼데이(Black Monday)’로 기억될 것”이라고 썼다. 그는 “새누리당은 ‘을미경장(更張·해이해진 정치·경제적 제도 등을 개혁하는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만하게 ‘유승민’을 선택해 놀라운 갱생 능력을 보였는데, 우리 후보들 사이에선 최소한의 낭만도 찾을 수 없었다”고 했다.

 문·박 후보와 함께 ‘빅3’로 꼽히다 불출마를 선택한 정세균 의원은 “새누리당이 유승민 의원을 원내대표로 선택한 것은 의회의 권능을 지켜낸다는 3권 분립 차원에서 높이 평가할 선택”이라면서 “반면 우리는 역전 싸움꾼도 안 하는 싸움을 하고 있다”고 개탄했다.

 분위기가 이렇게 돌아가자 양측은 3일엔 난타전을 다소 자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박 후보는 이날 전북도의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청해 “결승점을 바로 앞둔 시점에서 특정 선수의 요구로 경기 룰이 바뀐 것은 상식적으로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긴 했지만 ‘친노’라는 표현은 입에 올리지 않았다. 룰 변경에 대해서도 전날엔 ‘비열’ 등의 단어를 쓰다 이날은 ‘당혹스럽다’ 정도로 수위를 낮췄다. 문 후보는 본인 이름의 성명을 통해 “당내 싸움을 일절 하지 않겠다”고 했다.

 유례없는 난타전 속에 3일 야당 권리당원들에 대한 ARS 투표가 시작됐다. 그러나 박수 소리 대신 지지자들의 걱정과 한숨 소리만 들린다. 전당대회가 야당을 혁신하는 시발점이라는, 출발선에서의 다짐을 세 후보가 잊은 탓이다. 후보들은 명심해야 한다. 전당대회가 무슨 ‘끝장’을 보는 날이 아님을.

이지상 정치국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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