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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배명복 칼럼

나는 샤를리가 아니라 겐지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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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배명복
배명복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

일본의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인 고토 겐지(後藤健二·47)가 결국 목숨을 잃었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위험을 무릅쓰고 분쟁 지역의 참상을 독자와 시청자들에게 전하려 한 죄밖에 없다. 안전한 곳에서 안락한 의자에 기대어 펜대를 굴리고 있는 나는 그의 죽음 앞에서 초라하고 부끄럽다. 무고한 사람을 인질로 잡고 목숨까지 빼앗는 극단적 테러리스트들의 만행에 참을 수 없는 분노를 느낀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는 저널리스트로서, 휴머니스트로서 최선을 다했다. ‘나는 겐지다.’ 그의 명복을 빈다.

지난달 파리에서 발생한 풍자 전문 주간지 샤를리 에브도 테러 사건에 맞서 많은 사람이 ‘나는 샤를리다(Je suis Charlie)’를 외쳤다. 만평이 마음에 안 든다고 언론사를 공격해 기자와 경찰의 목숨을 앗아간 것은 민주주의의 근간인 언론과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관용(톨레랑스)이란 프랑스적 가치의 중대한 훼손으로 받아들인 프랑스인들도 많았을 것이다. 프랑스 역사상 최대 인파인 350만 명이 거리로 나왔고, 파리에서만 150만 명이 운집했다. 1998년 월드컵 대회에서 프랑스가 우승했을 때도 인파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프랑스 국회에서는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나던 1918년 이후 97년 만에 처음으로 프랑스 국가가 울려퍼졌다. 샤를리 에브도 테러 희생자 추모식에 참석한 국회의원과 각료들이 한목소리로 애국가를 제창한 것이다. 그 순간만큼은 여와 야, 좌와 우가 따로 없었다. 모두 하나였다. 프랑스 제5공화국 역사상 가장 인기가 없던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의 지지율은 테러 사건 이후 수직상승했다. 10%대 후반을 맴돌던 지지율이 무려 40%까지 치솟았다. 국가적 위기의 순간, 대통령에게 기대되는 구심점 역할을 나름 해냈다고 보기 때문일 것이다. 파리에 150만 명이 운집하던 날, 그는 전 세계에서 몰려든 40여 명의 각국 지도자들과 팔짱을 끼고 걸으며 연대를 과시했다.

추도와 단합의 시간이 지나자 성찰의 시간이 왔다. 언론 보도를 이유로 테러를 하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지만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핑계로 이슬람의 창시자 마호메트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것이 과연 올바른 것인가 하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했다.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진부한 명제가 아니더라도 샤를리 에브도가 마치 자유의 한계를 시험해 보는 듯한 ‘자유 근본주의’적 태도를 보인 것이 과연 온당했느냐는 문제 제기다. 언론의 자유는 진실을 밝히라고 있는 것이지 남용하라고 있는 것이 아니며, 종교인들의 특정한 행동을 비판하는 것과 종교 자체를 비난하고 조롱하는 것은 다르다는 반론도 나왔다. 적의(敵意)가 있는 풍자는 풍자가 아니라 비난이란 지적도 나왔다. 이런 비판과 자성이 모아져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란 목소리로 나타나기도 했다. 물론 샤를리 에브도의 만평이 마음에 안 들면 안 보면 그만이다. 예외와 성역을 인정하기 시작하면 표현의 자유는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개인적으로 나는 ‘샤를리가 아니다’에 한 표를 던진다. 그러나 여전히 나는 겐지다.

샤를리 에브도를 공격한 두 청년은 프랑스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교육받고 자란 프랑스 시민이다. 다만 뿌리가 알제리일 뿐이다. 알제리는 마지막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나라다. 약 500만 명으로 추산되는 프랑스 내 무슬림 인구 중 알제리 출신이 제일 많다. 이들 중 상당수는 대도시 주변의 방리유(교외)에 살고 있다. 실업률과 범죄율이 높은 방리유는 갈수록 슬럼화하며 우범지대로 전락하고 있다. 이곳에 사는 무슬림들이 느끼는 불만과 소외감, 열등감이 IS 같은 극단주의에 빠지는 배경이 되고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샤를리의 비극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프랑스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 내 이슬람 인구 비중이 갈수록 늘면서 ‘유라비아(Eurabia)’니 ‘런더니스탄(Londonistan)’이니 하는 말까지 나왔다. 이슬람 인구의 출산율은 유럽 평균보다 월등히 높아 2050년이 되면 유럽 인구의 30%가 무슬림이 될 거란 전망도 있다. 프랑스에선 2022년 대선에서 온건파 무슬림이 대통령이 되는 소설까지 등장했다. 프랑스 교도소 수감 인구의 절반은 이미 무슬림들이다. 유럽에 이슬라모포비아(이슬람공포증)가 확산되면서 유럽 곳곳에서 극우파 정당이 급속히 세력을 넓히고 있다.

 이런 와중에 샤를리 테러 사건이 터졌다. 샤를리 테러는 유럽을 잠에서 깨우는 자명종 소리가 돼야 한다. 계층 간 양극화와 차별 문제를 해소하지 못하면 유럽은 정말로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 있다.

배명복 논설위원·순회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