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로봇수술, 맞춤 항암치료 … 암 정복 앞장선 ‘퍼스트 무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01면

암 치료는 전술에 비유된다. 먼저 적(암세포)이 숨어 있는 장소(장기)와 적의 약점(유전자 변이)을 정찰(진단)한다. 그 다음 핵폭탄(항암제) 또는 유도탄(표적항암제)을 쏠 것인지, 탱크(개복수술)를 진격시킬지, 저격수(복강경 수술)를 보낼 것인지를 조합해 전략을 세운다. 승전보는 첨단 장비를 이용한 기술과 이를 운용하는 두뇌(의사)에 달렸다. 전술교과서 ‘손자병법’처럼 암 치료의 세계 표준을 써내려 가는 병원이 있다. 고려대안암병원 암센터다. 부단한 연구를 통해 진단·치료 분야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고 암 수술의 치료 성적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다. 암 치료의 패러다임을 진두지휘해 온 ‘퍼스트 무버’, 고대안암병원 암센터의 치료 노하우를 취재했다.

고려대안암병원 김열홍 암센터장(가운데)이 암 환자의 혈액에서 항암제 내성에 반응하는 단백질 변화의 추이를 확인하고 있다. [서보형 객원기자]

지난해 11월 대한외과학회에서 발표한 논문이 세계 의학계의 주목을 받았다. 로봇수술을 받은 직장암 3기 환자의 5년 생존율이 83%로 일반 복강경 수술 환자(72.8%)보다 높다는 연구결과다. 일반 복강경과 로봇수술의 치료 성적을 장기적으로 비교한 건 세계 최초다. 연구를 진행한 고대안암병원 김선한(대장항문외과) 교수는 “단기적인 데이터만으로 안전성과 타당성을 받아온 로봇수술 효과가 명확하게 입증됐다”고 말했다.

직장암 3기 로봇수술로 환자 5년 생존율 83%

고대안암병원 암센터는 몸에 내는 상처를 최소화하는 수술(최소침습)로 암환자의 치료 성적을 끌어올린다. 대표적인 수술법이 로봇수술이다. 작은 절개창을 내 수술기구를 집어넣는 일반 복강경에서 한 단계 진화했다. 절개창으로 의사가 원격 조종하는 여러 개의 미세한 로봇 팔이 들어간다. 김선한 교수는 “병변이 깊숙이 있어 접근이 힘들거나 세밀한 술기가 필요해 일반 복강경으로는 하기 어려운 암 수술을 대상으로 한다”고 말했다.

 암환자에게 최소침습은 암 치료의 효과를 극대화한다. 암환자는 항암·방사선·수술 같은 다양한 치료를 받아야 한다. 그런데 수술 때문에 회복이 늦어지거나 합병증·후유증이 있으면 다른 치료에 악영향을 준다. 최소침습은 일단 상처가 작아 회복이 빠르고 후유증·합병증이 적다. 고령환자에게는 암 수술이 주는 두려움도 낮춘다. 이는 치료 성과로 이어졌다. 김선한 교수는 “고대안암병원 암센터에서 결장암 3기 복강경 수술 환자의 무병(암 진행 없는 상태) 5년 생존율은 80%가 넘는다”며 “일반적으로 결장암 3기의 5년 생존율은 50~60%대”라고 말했다.

암센터가 최소침습 분야에서 우수한 치료 성적을 잇따라 발표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째, 수술의 표준화다. 암의 형태·종류·위치·병기에 따라 단계별로 수술법을 표준화했다. 수술 사례가 충분히 축적됐고, 이를 장기간 추적해 치료효과를 끊임없이 확인하는 시스템이 있다는 것을 방증한다.

 둘째, 최소침습 수술의 영역을 넓혀가는 맨파워다. 세계 의료진을 대상으로 실시간 수술을 생중계하는 김선한 교수는 대장암·직장암 수술의 세계적 표준으로 불린다. 로봇비뇨기수술 교과서 집필에 아시아권 교수로는 유일하게 참여한 전립선암 수술의 권위자 천준 교수도 있다. 강석호 교수는 방광암 로봇수술 전절제술을 성공하고, 아시아 최다수술 건수를 보유하고 있다.

머리카락 경계선을 이용해 흉터 없는 갑상선수술을 선도하는 정광윤 교수, 입안으로 수술해 작은 흉터마저 외부에서 보이지 않는 경구 갑상선수술을 세계 최초로 성공한 김훈엽 교수도 있다. 윤을식 교수는 국내 최초로 로봇을 이용한 흉터 없는 가슴재건술로 유방암 절제환자를 치료했다.

최소침습 수술과 톱니바퀴처럼 맞물리며 치료 역량을 끌어올리는 건 맞춤 항암치료다. 암을 일으키는 유전자 돌연변이에 선택적으로 작용하는 표적항암제로 치료 효과를 높인다. 지금까지 암 종류별로 몇 개의 유전자 돌연변이를 발견했다.

미세한 유전자 변화 찾아 표적항암제 치료

표적치료제의 성공 여부는 약이 효과가 있는 암세포를 가진 환자를 찾아내는 기술에 달렸다. 고대안암병원 암센터는 조직검사에 더해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으로 유전체를 좀 더 예리하게 검출하는 방법을 사용한다. 차세대 염기서열분석법은 미세한 유전자 변화까지 찾아내 표적항암제 치료가 가능한 환자를 놓치지 않는다.

 일반 항암제를 적시에 적정 용량 사용하며 부작용을 관리하는 것도 치료 효과를 좌우하는 노하우다. 여전히 환자 5명 중 4명은 일반 항암제를 쓴다. 김열홍(종양혈액내과) 교수는 “일반 항암제는 부작용이 나타나는 길목에서 컨트롤하는 대처가 필요한데, 이는 의사의 노하우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고대안암병원은 항암제가 용량대로 조제되고 투여되는지를 주치의, 각과 교수, 약사, 전문 간호사가 확인하는 4단계 과정을 거친다. 김열홍 교수는 “암환자는 주기별로 투약 용량이 달라지는데 자칫 항암제 용량을 잘못 처방받아 발생하는 부작용을 예방하는 안전 시스템”이라고 말했다.

혈액으로 암 유전자 분석하는 진단법 연구

암센터가 연구 중인 첨단 진단기술은 앞으로 암 치료 성적을 끌어올릴 열쇠가 될 것으로 보인다. 고대안암병원은 환자의 혈액에 떠돌아다니는 암세포 유전자를 분석하는 진단법을 개발 중이다. 혈액검사만으로 어떤 유전자 변이가 있는 암인지 알아내 맞춤약을 사용할 수 있게 된다. 암 조직을 떼어내 검사하는 것도 일종의 작은 수술이다. 암 조직이 깊이 있어 찔러 들어가기 어렵거나 나이가 많고 신체 컨디션이 좋지 않은 환자에게 접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항암치료 효과를 실시간으로 모니터링하는 기술도 암센터의 주요 연구 주제다. 혈액검사만으로 약의 효과 유무와 내성 여부를 파악하고, 다음 약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예측 치료의 길을 열어준다.

고대안암병원 암센터 들여다보니

수술

● 김선한(대장항문외과) 교수 대장암 5년 생존율 2기 95% 이상, 3기 90% 이상, 로봇수술 직장암 3기 환자 5년 생존율 83%
● 전훈재(소화기내과) 교수 조기 위암 치료성공률 95% 이상, 내시경 점막하박리술 국내 최초 도입
● 폐암 냉동치료 요법 국내 최초 도입(2005), 작은 치료침을 이용해 아르곤과 헬륨가스를 주입해 암세포를 급속 냉동·해동시켜 괴사
● 말기 간암 방사성동위원소 치료법 국내 첫 도입(2008), 방사능으로 말기 간세포암 환자의 간암 조직 치료

평가

● 대장암·유방암·위암·간암·췌장암·폐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병원평가 1등급

진행 중인 연구

● 암 조직을 떼어내지 않고 환자의 혈액에서 암세포 유전자를 분석하는 진단법
● 항암치료 효과를 혈액검사로 실시간 모니터링해 약의 효과 유무와 내성 여부를 파악하고, 다음 약으로 바꿔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기술
● 조직 확보가 어려운 폐암 환자의 혈액을 통한 유전자검사를 가능하게 해 불필요한 치료를 줄이고 독성은 낮추는 연구

 
이민영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