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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략] 헝가리와의 수교, 다른 공산국과 이어준 전략적 연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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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28면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모습. 경부고속도로에는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이라는 의미의 AH1 표지판이 현재 설치돼 있다. [중앙포토]

역사 속 2월 1일에 발생했던 사건으로는 1881년 파나마 운하 기공식, 1917년 독일의 외국 선박 공격, 68년 경부고속도로 기공식, 89년 한국·헝가리 수교 등이 있다. 운하, 해상 공격, 도로, 수교 등 이들 이질적 사건이 공통적으로 갖는 전략적 함의는 연결이다. 새로운 길을 만들어 전략적 거점을 마련하고자 했거나 아니면 기존의 길을 지켜 전략적 이해를 고수하려 했다.

⑩ 연결의 전략

다니던 곳에 길이 생기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수요에 따라 공급이 생기기 때문이다. 이와 반대되는 선후(先後)관계도 있다. 즉 공급이 수요를 창출하기도 한다. 길이 생기게 되면 그 길을 따라 사람이나 물건이 다니게 되는 현상도 있다. 종종 공공시설의 엄청난 조성비용은 그 시설로 발생할 새로운 수요에 대한 기대로 정당화된다. 물론 현실은 그런 기대와 달리 공급에 의한 실제 수요 창출이 별로 없을 때도 있다. 여하튼 길 만들기 자체가 전략이고, 따라서 전략적 고려가 필수다.

2월 1일의 역사적 사건 가운데 가장 전략적인 연결은 파나마 운하다. 파나마 운하라는 지름길은 출발 및 도착 지역에 따라 다르겠지만 대서양과 태평양 간 연결에 약 1만5000㎞라는 거리를 단축시켰다. 수에즈 운하가 단축시킨 약 1만㎞보다 훨씬 긴 거리다.

파나마 운하는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인 1881년 2월 1일 기공됐다. 수에즈 운하 건설에 참여했던 프랑스인이 당시 파나마를 지배하던 콜롬비아 정부와 계약을 하고 운하 공사를 시작했지만 난공사와 재정난으로 1889년 공사를 중단하고 말았다.

파나마 운하의 완공은 미국이 주도했다. 1898년 쿠바에서 스페인과 일전을 벌인 미국은 미 서부 해안에 정박 중이던 자국 함대들을 쿠바 전투에서 전혀 활용하지 못했다. 그리하여 태평양과 대서양을 연결하는 운하의 필요성을 절실히 체감하고 콜롬비아 정부에 돈을 주고 건설과 운영을 승인 받았다. 하지만 콜롬비아 상원은 이를 비준하지 않았다. 이에 미국은 파나마 독립을 부추기고 군사적으로도 지원했다. 미국은 독립한 파나마의 양해하에 1903년 운하 굴착권을 프랑스 회사에서 구입했고 공사를 재개했다. 파나마 운하는 1914년 완공됐는데, 운하 개통은 미국 부흥의 시작을 의미한다. 파나마 운하는 미국이 운영하다 우여곡절 끝에 1999년 12월 31일 파나마에 이양됐다.

중국, 루트 확보 위해 니카라과 운하 지원
태평양과 대서양의 연결은 그 자체가 거대 전략이다. 그 루트는 파나마뿐이 아니다. 미국은 파나마 운하 굴착권 구입 이전에 니카라과 운하를 추진했다가 포기한 바 있다. G2 가운데 하나인 중국도 대양 연결이라는 거대 전략을 추진 중이다. 중국이 지원하고 있는 니카라과 운하는 2020년 완공을 목표로 2014년 12월 착공됐다. 중국은 태평양-대서양 루트 확보뿐 아니라 태평양-인도양 루트 확보를 위해 인도양 곳곳에 항구를 건설하고 있다. 이에 미국과 인도가 경계하고 있음은 물론이다.

수로뿐 아니라 육로, 또 국외뿐 아니라 국내에서도 전략적 연결이 시도돼 왔다. 47년 전인 1968년 2월 1일 경부고속도로 기공식이 있었다.

사실 경부선은 고속도로보다 철로가 먼저였다. 일본 자본이 한·일 병합 이전에 일본과 중국 대륙을 연결하는 루트로 경부선과 경의선 철로를 건설했다. 당시 러시아와 지역 패권 경쟁을 벌이던 일본은 러시아의 한반도 접근을 차단하면서 일본의 만주 접근을 용이하게 만들 필요가 있었는데, 그런 전략적 의도가 철도 건설 노선 선택에 영향을 주었던 것이다. 노선뿐 아니라 철길 궤도 너비와 레일 종류도 누구를 견제하고 누구의 진출을 활성화하느냐에 따라 선택됐다.

100년 전 경부선은 부관선(부산~시모노세키), 경의선(서울~신의주), 만주선 등과 연결돼 아시안 하이웨이로 기능했다. 제국주의시대의 연결망과 그 속성을 달리하지만 오늘날에도 유사한 연결망에 대한 갈구가 있다. 경부고속도로에는 아시안 하이웨이 1호선이라는 의미의 AH1 표지판이 설치돼 있는데, 일본·한국·북한·중국·동남아·인도·터키를 경유하는 AH1 하이웨이가 터키에서 유럽 하이웨이 E80에 연결된다는 구상이다. AH1은 아직 개통하지 않았지만 그런 전략적 연결에 대해 아시아 국가들은 공감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 분단선과 바다로 둘러싸여 일종의 섬으로 불리는 대한민국 내에서도 지역 간 연결은 전략적으로 추진돼야 한다. 그렇지만 지역 간 연결 루트는 늘 논란거리다. 공항 유치를 둘러싼 지역 갈등이 그런 예다. 47년 전 착공한 경부고속도로 노선도 대표적인 갈등 소재였다. 서울과 부산을 연결하는 루트는 유행가 가사의 “서울·대전·대구·부산 찍고”를 포함해 매우 다양하다. 설명의 편의상 서울·부산·대전·광주의 네 도시만을 생각해 보자. 이 네 도시 가운데 두 도시만을 뽑아내는 방식이 6가지이고, 그 두 도시 간에 연결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구분할 수 있으니 네 도시 간 연결시스템 종류는 64(=26)가지나 된다. 네 도시 간 모두에 직통로 6개가 건설된 연결시스템은 여러 좋은 효과를 낼 것이나 연결로 개설 및 운용에 비용이 들기 때문에 늘 좋은 선택은 아니다. 또 네 도시 간 아무런 연결이 없는 시스템 또한 건설비용은 들지 않으나 효과 또한 없을 테니 좋은 선택이 아니다. 전략적으로 고려되는 네 가지 유형만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방사형 연결시스템이다. 대전이나 광주를 중심 도시로 해 나머지 3개 도시로 연결하는 방식이다. 육로가 아닌 항공로는 현재 서울을 중심으로 한 방사형 연결시스템이다.

다음 유형은 일자형 연결시스템이다. 서울-대전-광주-부산 순서로 연결하는 것은 그 예다. 물론 다른 일자형 연결시스템도 있으나 연결 거리가 더 길다.

순환형 연결시스템도 있다. 서울-대전-부산-광주-서울로 연결하는 루트가 그 예다.

끝으로 교차형 연결시스템이다. 방사형에서 관찰되는 전략적 거점 없이 4개 지역 간 모두 총 6개의 루트를 설치하는 방식이다. 로컬과 로컬 간(L2L) 연결은 전략적 거점이 없기 때문에 균형 발전을 도모한다. 특히 루트 건설비용이 크지 않은 부문에서 효과적이다.

이런 다양한 연결 방식 가운데 가장 나은 것을 선택하기 위해서는 비용과 효과를 계산해야 한다. 연결 비용은 주로 도로 길이와 지형, 도로 부지의 기회가치에 따라 좌우되는 반면 연결 효과는 주로 운용의 부가가치에 따라 좌우된다. 대체로 동선(動線)이 짧을수록 그 비용이 적게 든다. 가장 짧은 동선은 운영분석(OR) 기법으로 계산될 수 있는데, 그 가장 짧은 동선을 위주로 해 연결하는 것이 기본 접근이다.

물론 동선 길이 외에도 감안해야 할 다른 조건들이 있을 것이다. 분배도 그런 조건 가운데 하나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에 반대했던 사람들도 고속도로 건설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 루트에 대한 이견이었고 자기 지역이 소외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다. 그러한 반발에도 불구하고 가장 효율적 루트를 선택하고, 분배의 문제는 다른 메커니즘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옳다. 연결 자체를 효율성 이외의 다른 기준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연결의 전략적 가치는 훼손된다. 활용도가 지극히 낮더라도 공항을 유치하는 것이 유치하지 않은 것보다 지역사회에 훨씬 도움이 된다고 인식하는 한 핌비(Please In My Backyard) 갈등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적절한 장소에 공항을 건설하는 것이 다른 지역들에도 도움이 되도록 분배의 메커니즘이 작동해야 한다.

최호중 외무장관(오른쪽)과 줄러 호른 헝가리 외무차관이 1989년 2월 1일 수교 합의 의정서에 서명한 뒤 악수하고 있다.

하드웨어 연결뿐 아니라 소프트웨어 연결도 전략이다. 26년 전인 1989년 2월 1일 한국과 헝가리는 대사급 공식 외교를 맺었는데, 헝가리는 한국과 국교를 수립한 최초의 공산권 국가였다. 공식 수교 이전 1988년 양국은 극비리에 접촉해 이미 상주대표부를 설치하던 중이었다. 한국은 헝가리를 전략적 거점으로 해 다른 공산권 국가와 연이어 수교를 맺었다. 이런 맥락에서 헝가리와의 수교는 전략적 연결이었다.
헝가리는 동독과 서독 간의 연결에서도 전략적 연결고리였다. 89년 5월 소련 고르바초프의 지원으로 헝가리는 오스트리아와의 국경, 즉 철의 장막을 해체했다. 그해 9월 동독인들은 서독을 바로 가지 않고 헝가리를 통해 우회해 서독으로 갔다.

프랑스 마지노선, 독일군 우회해 무용지물로
독일인의 우회 전략은 제2차 세계대전 때도 관찰된 바 있다. 프랑스는 1차 대전 직후 독일과의 국경 지역에 지붕 있는 포대로 구성된 방어선을 구축했다. 육군 장관 마지노의 건의로 추진됐기 때문에 마지노라인으로 불린다. 2차 대전에서 나치 군대는 프랑스로의 짧은 진격로에 위치한 마지노 요새를 그냥 우회했다. 우회함으로써 난공불락의 요새는 무용지물이 됐다. 즉 전략적 연결이라고 해서 늘 물리적으로 짧은 루트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때로는 우회가 좋은 전략이다.

1917년 2월 1일 독일의 무제한 잠수함 전투 지역(진한 색)을 공표한 지도.

끝으로 연결 유지도 중요하다. 연결 단절은 전략적 손실이기 때문이다. 1차 대전 당시 독일은 영국의 해상 봉쇄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독일도 영국에 대한 해상 봉쇄로 맞섰다. 이는 전쟁물자 수출로 이득을 보던 미국의 이해와 충돌했다. 미국의 참전을 원치 않았던 독일은 제대로 된 해상 작전을 실시하지 못하다 1917년 2월 1일 적국에 전쟁물자를 수송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모든 선박을 잠수함으로 격침하겠다고 선언했다. 독일은 해상 봉쇄로 미국의 참전 이전에 영국이 항복할 것으로 기대했다. 이런 독일의 기대와 달리 미국은 2개월 후 참전했다. 적국과 제3국 간의 해로를 차단해 자신의 해로를 확보하려는 시도는 거꾸로 제3국인 미국의 참전을 가져와 자국의 패전을 가져다주었다. 남의 길을 끊는 행위도 전략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전략적 연결은 지름길이어야 하고, 확산 효과가 큰 거점 연결이어야 한다. 가끔은 우회가 더 나을 때도 있다. 봉쇄 역시 연결만큼 그 파급효과가 크기 때문에 전략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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