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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 이론만 학문인가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2호 30면

자연과학이 자연 현상을 다루는 학문이라면, 사회과학이란 사회 현상을 탐구하는 학문이다. 한국 사회과학은 우리가 겪고 있는 모든 사회 현상에 대한 이론적 설명을 하고, 처방을 내려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렇다면 최근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여러 현상들을 얼마나 학문적으로 설명할까.

근대화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외국(특히 미국)에서 유학했기 때문에, 이들이 귀국 후 외국에서 배운 이론을 전파했다는 것은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국내 대학이 박사를 생산해내는 오늘날에도, 명문대일수록 교수 중에 외국 박사학위 소지자가 거의 100%에 이르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이들은 한국의 독특한 사회 현상을 외국 이론을 빌려 설명해 왔다. 외국 이론을 심층적으로 이해하고 비판하기보다 외국 학자의 이름과 논문을 피상적으로 거론만 해도 실력 있게 보인다. 외국 학문을 수입하는 수입업자인 셈이다.

그것도 부족해 우리 사회에 큰 문제가 생기면 외국 석학을 초빙해 그들의 입을 통해 말하게 한다. 문제는 과연 석학이 누구냐라는 데엔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그러니 자신의 옛날 지도교수 등 개인적 인연이 있는 사람이 초청된다. 미국에서는 보통의 교수인데, 제자에게 한 번 초청받아 칙사 대접을 받아 본 외국 학자들은 처음에는 환대에 당황한다. 이들은 점점 한국을 한몫 잡는 ‘봉’으로 착각한다.

예컨대 미국에서 공공 윤리학자로 알려진 모 교수는 여자친구의 비행기표까지 비즈니스 클래스로 요구했다. 그 여성이 학회에서 제공한 호텔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갑자기 시내 특급호텔로 숙소를 바꾸기도 했다. 학회는 그 교수에게만 2000만원을 족히 썼고, 이것도 부족해 그 교수는 이 대학 저 대학 특강비로 수입을 더 챙겨 갔다. 윤리를 주장하는 그 학자가 스스로는 비윤리적이었던 것도 문제지만, 문제의 근원은 그런 사람을 초청하는 한국 학자들에게 있다.

정작 우리의 특수성에 기반한 학문적 국적을 유지해야 할 사회과학이 학문적 주권을 포기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60여 년간 많은 사회과학자들이 외국 이론의 소개업자로 안주하고, 학계의 주류로 군림해 왔기 때문에 한국적 학문이 발달하지 못하고 있다.

국비로 장기 외국 연수를 다녀온 관료들도 한몫한다. 누가 요직에 앉느냐에 따라 시카고 학파, 위스콘신 학파 등 특정 학파가 개혁한답시고 섣부른 칼을 휘두른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 꼴을 여러 번 경험했다. 몇몇 개인의 문제가 아니고, 한국적 관학유착의 구조적인 문제다.

그러니 한국적 이론을 전파할 기회가 와도 전파할 게 없다. 요즘 외국에 가면 한국 경험이 있는 ‘지한파’를 자주 만난다. 예컨대 개발도상국에선 KDI 정책대학원 출신이 적잖다. 우리 세금으로 교육받은 이들이다. 이들에게 한국에 대한 극찬을 들으면 기분이 붕 뜬다. 그런데 얘기가 길어지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학위 과정에서 무엇을 배웠느냐고 물어보면, 미국의 경제학을 배운 것밖에 없다는 것이다. KDI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울대 등의 강의실에서도 온통 외국 이론을 다루는 탓에 정작 외국 학생들이 실망하는 경우가 흔치 않다.

사회과학이 국적 없이 종속돼 있는 가운데, 오히려 우리가 배운 학문이 거꾸로 외국의 주목을 받는 사례가 있다. 서울대 의대 교수들은 거의 대부분 국내 박사다. 열악한 환경에서 수많은 환자를 돌보면서도 논문을 쓰고 의학 기술을 발달시켰다. 분야에 따라선 우리 의술이 세계에서 인정받고 있다.

자연과학이 생활을 편리하게 한다면, 사회과학은 우리의 사고를 풍성하게 해준다. 우리 사회가 겪고 있는 혼돈을 오직 미국식 효율성으로 설명하려니 이해가 가지 않는다. 사회의 성숙도는 사회과학의 발달과 정비례한다. 한국의 사회과학은 자체 브랜드를 개발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물론 아직 외국에서 배울 게 많다는 점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사회과학이 외국, 그것도 미국의 것에 압도당할 이유는 이젠 없다.

임도빈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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