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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그리스엔 왜 금 모으기 운동 없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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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31면

우리나라에선 별로 화제가 되지 못하지만 그리스의 새 좌파 정권은 기세가 등등한 모양이다. 야니스 바루파키스 신임 재무장관은 “유럽연합(EU)·유럽중앙은행(ECB)·국제통화기금(IMF)의 트로이카와는 상대하지 않을 것”이라며 “유로존 정상들과 직접 협상해 그리스의 부채를 절반 이상 탕감해 달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위기 때 금 모으기 운동까지 벌이며 죄라도 지은 듯 시키는 대로 구조조정을 했던 우리와는 전혀 딴판이다. 바루파키스 장관은 한술 더 떠 예룬 데이셀블룸 네덜란드 재무장관 면전에 대고 “그리스에 요구되고 있는 채무 이행계획은 반유럽적인 발상”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누가 누구에게 반유럽적이라는 건가. 그리스는 무분별한 재정 지출로 국가 채무를 국내총생산(GDP)의 175%까지 높여 놓은 나라다. 그런 나라가 부채 탕감을 요구하겠다, 개혁하라는 국제기구와는 상대하지 않겠다 하는 것은 한마디로 염치없는 일이다. 그리스 정부는 현재 진행 중인 민영화를 중단하고, 구조조정 된 공공기관 직원들을 다시 고용하며, 전 정부가 이행한 다른 개혁조치들을 원상복구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유럽 전체를 위기에 빠뜨려 놓고 위기 해결을 위해 동분서주하는 사람에게 반유럽적이라고 대드는 모습이다.

이번 사태는 경제와 정치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것을 말해 준다. 자국 국민들의 표만 의식해 무책임한 발언을 일삼고 있는 그리스의 일부 정치인은 구조개혁을 지연시키고 있다. 장기적으로는 자국 국민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이다. 청년 실업률이 50%를 넘나드는 그리스의 상황은 안타까운 일이다. 긴축정책만 고집하는 독일 등 채권국의 입장도 개선의 여지가 있다.

하지만 정권이 바뀌었다고 그동안의 입장을 손바닥 뒤집듯 하는 것은 책임 있는 정부가 할 일이 아니다. 그리스 국민이 고통을 겪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그리스 정부의 책임 아닌가. 일각에선 그리스 정부가 겉으론 부채 탕감을 얘기하면서도 물밑으로는 채권국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경제개혁안을 준비해 어느 정도의 재정적 지원을 얻어 낼 구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차라리 그게 사실이면 좋겠다.

ECB가 3월부터 양적완화를 단행하겠다고 발표하면서 그리스의 유로존 탈퇴에 대한 우려는 예상보다 크지 않은 것 같다. 유로존 국가들이 그리스가 무너질까 걱정하며 채무 재조정 협상에 응할 인센티브가 별로 없다는 얘기다. 한편 그리스 은행에서는 새 정부의 강경노선을 우려한 투자자들이 돈을 빠른 속도로 빼내고 있다.

따라서 그리스 정부엔 시간이 없다. 유로존 채권국들에 신뢰를 줄 개혁안을 빨리 내놓고, 진행 중이던 구조개혁을 이른 시일 내에 마무리 지어야 한다. 뼈를 깎는 각고의 노력 없이는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 낼 수 없다. 그리스 국민부터 당장 금 모으기 운동이라도 시작해야 할 판이다.

박성우 경제부문 기자 blas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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