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사설] 전직 대통령 회고록이 정치이슈 돼서야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12호 02면

내일 발간될 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이 사전에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 현 정부와 정치권을 자극하거나, 다른 나라에 부담이 되는 내용들이 담겨서다.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한 대목엔 청와대가 발끈했다. 또 야당은 자원외교, 4대 강 사업 등의 기술을 이 전 대통령의 자기변명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왜 하필 지금처럼 민감한 시점에 이 전 대통령이 그런 회고록을 내는지, 무슨 정치적 의도가 있는 건 아닌지 의심하는 시각이 확산일로다.

 물론 전직 대통령이 누구 허락받고 회고록을 내야 하는 건 아니다. 어떤 내용으로, 언제 써야 한다는 규정도 없다. 누구에게나 표현의 자유와 자기방어의 권리가 있다.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도 다 회고록을 쓴다. 안 쓴 이는 조지 H 부시 정도다. 오바마 대통령은 현직인데도 썼다. 정치적 민감성을 감안해 재임 중의 얘기는 다 거른 채 쓰기도 한다. 오바마, 카터, 레이건, 닉슨, 아이젠하워가 그랬다. 이들의 회고록은 때로 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며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은 다르다. 우선 타이밍에 문제가 있다. 자신의 업적으로 과시해 온 자원외교나 4대 강 사업 등에 대한 검증작업이 임박한 시점에 출간했다는 점이다. 아무리 객관적이라고 주장해도 자기변명으로 비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내용도 논란거리다.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해 미묘한 해석을 낳을 수 있는 대목을 넣는가 하면, 외교·남북 관계에서 상대방을 고려해야 할 내밀한 사안까지 덜커덕 공개했다. 사려가 부족한 것인가, 아니면 무슨 의도가 있는 것인가.

 세간의 반응 역시 우호적이지 않다. 회고록이 이 전 대통령과 핵심 측근들의 ‘집단기억’이라는 주장에 일각에선 ‘집단창작’이라는 야유가 나올 정도다. 근본적으론 이 전 대통령의 국민적 인기나 지지도가 높지 않기 때문에 나오는 반응인 셈이다.

 집필 취지에 대한 설명에도 문제가 있다. “민감한 내용은 제외했다”는 이 전 대통령 측의 해명은 오히려 현 정권에 대한 위하(威嚇)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 “국정의 연속성을 위해 다음 정부에 참고가 되도록 집필했다”고도 했지만, 국정의 연속성이란 공식 채널의 인수인계를 통해 확보해야 하는 것이지 개인적 주관이 투영된 회고록으로 하는 게 아니다. 굳이 이 회고록의 기록적 가치를 찾자면 이 전 대통령과 그 측근들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우리는 혼란스러운 현 정국에 전직 대통령의 회고록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되는 것을 경계한다. 소모적인 논쟁 탓에 정말 급한 사안들이 뒤로 밀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에 예민하게 반응할 게 아니라 국민의 쇄신 요구에 더 진지하게 대응해야 한다. 정치권도 불필요한 논란에 편승해 국민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진 않기 바란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