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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 포커스] 중국, 이젠 벨트가 아니라 백이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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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18면

한국은 전체 수출의 30%를 중국에 의존한다. 그런데 지난해 대중국 수출이 2009년이래 처음으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한국의 대중국 수출 감소, 한국 대표 기업의 실적 악화와 주가 속락, 한국 증시의 박스권 횡보는 모두 깊은 연관성이 있다.

검의 고수에게 칼로 덤빈 결과다. 세계 최대 생산 규모를 가진 제조대국 중국에 한국은 컨베이어벨트의 길이와 속도를 가지고 덤벼들었다. 5년이 지나자 생산 규모와 속도에서 모두 추월당했다. 중국이 2012년부터 제조대국이 아니라 서비스대국으로 대전환을 했지만 한국은 여전히 제조업으로 대중국 수출에 목숨을 건다.

한국은 전체 무역 흑자 475억 달러의 1.7배나 되는 807억 달러를 중국에서 번다. 금융위기 이후 5년간 한국의 성장은 중국에서 왔지만 이젠 중국의 전략 변화에 한국의 눈물이 기다린다.

검의 고수에게 칼로 덤비면
미국과 일본을 베낀 한국, 한국을 베끼고 거기에 하나를 더한 중국 때문에 한국은 코피 터지고 있다. 애플을 벤치마크 해 성공한 삼성은 휴대전화를 팔지만 애플과 구글을 벤치마크 한 중국 샤오미는 앱을 판다. 샤오미의 수출을 시비 걸지만 중국은 휴대전화 수출을 안 해도 먹고살 만하다. 중국의 휴대전화 가입자가 12억8000만 명이다. 이는 미국·유럽·일본의 전체 가입자를 합친 것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강일구

한국의 대중국 수출 마이너스를 심각하게 봐야 한다. 손바닥만 한 한국의 내수시장을 아무리 뒤집어도 시장 규모가 작아 금방 차 버린다. 차가 밀리면 여의도에서 분당까지 두 시간은 족히 걸리지만 김포공항에서 비행기를 타면 베이징(北京)까지 1시간 30분이면 간다. 중국은 심리적 거리가 외국일 뿐 분당보다 가까운 나라다. 13억7000만 명의 시장은 미국·유럽·일본을 합한 시장보다 더 크다. 한국이 여기에 ‘올인’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그러나 중국어가 안 돼 그림의 떡이다. 지금 한국에 미국 경영전문대학원(MBA)출신은 넘쳐나지만 중국어를 하는 중국 MBA 출신은 약에 쓰려고 해도 찾기 어렵다. 한국의 모든 대학에 경영학과가 있지만 정작 지금 한국 기업이 가장 필요로 하는 중국 경영학을 가르치는 곳은 없다. 산둥(山東)성 호랑이도 저장(浙江)성 가면 고양이에게 지는 나라가 중국이다. 미국식 글로벌화가 중국에 가면 중국식 차이나이제이션에 쪽도 못 쓴다.

한국 제조업이 모조리 중국에 몰려갔지만 미국 경영학만 배운 한국은 가는 족족 중국에 터졌다. 이제 한국에 필요한 건 60년간 우리가 배웠던 AS(American Standard)가 아니라 CS(China Standard)다. 이걸 못하면 한국이 중국에서 돈 먹기는 글렀다. 미국과 유럽·일본 주재원은 반드시 현지에서 공부한 MBA를 보내면서 중국 주재원은 중국어학원 6개월 다닌 초보자를 보내도 별문제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밀물에는 그물만 치면 누구나 고기를 잡지만 썰물이 오면 진검 승부다. 진짜 선수가 아니면 그사이 잡은 고기마저 다 토해 낸다. 지금 중국 시장에서 한국이 처한 현실이 딱 그 형국이다. 한국은 수출이 안 되면 주식이 안 되고 소비가 안 되고 취업이 안 된다. 정보기술(IT) 분야 연구개발(R&D)의 중심이 실리콘밸리인 이유는 IT의 최대 시장이 미국이었기 때문이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 세계 최대의 IT와 자동차 시장은 중국이다. 이젠 R&D도 실리콘밸리가 아니라 중국의 중관춘에서 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비행기·항공모함·우주선·우주정거장을 만드는 나라를 휴대전화와 자동차 제대로 못 만든다고 무시하는 것이 한국이다. 무시하다 당한다. 중국인을 하청공장 노동자로 생각하는 것부터 바꿔야 한국이 산다. 길거리에서 중국말 하면 공사판 잡부 취급당하지만 롯데면세점 11층에 가면 VIP 대접을 받는다. 다른 나라 여행객은 모두 관광객이라고 하면서 유독 중국 여행객만 “요우커”라고 부르는 이유가 무엇일까?

중국에 대한 생각 바꿔야 산다
중국은 백(Bag)이다. 가방에 든 돈이다. 일본 관광객의 두 배를 쓰고 가는 중국 관광객의 구매력이다. 한국이 1인당 2000달러 이상 쓰는 중국 관광객 3000만 명만 유치하면 성장률 3%포인트가 높아진다.

중국이 4조 위안 퍼 넣어 경기 부양하는데 중간재 팔아 떼돈 번 한국, 중국이 정권 바뀌고 전통산업을 구조조정하고 소비와 서비스산업으로 방향 전환하자 만리장성에서 길을 잃었다. 한국의 대표 기업들이 중국의 구조조정 덫에 빠져 오도 가도 못하고 있다. 벨트(belt)에 목맨 한국 기업들, 중국인들의 백(bag)을 노려야 하는데 번지수가 틀렸다.

지금 한국이 팔고 있는 모든 아이템은 중국에서 이미 시들해졌다. 중국에 지금은 없지만 시진핑(習近平) 1기 후반 2년6개월에 중국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예측하고 먼저 만들어 기다리지 않으면 한국의 대중국 수출의 화려한 봄날은 다시 오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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