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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동 칼럼] 아름다운 선율로 감싼 유치한 사랑 이야기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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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2호 27면

네덜란드 화가 안톤 피크의 ‘거리의 악사(Der Leiermann)’.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 마지막 장면에 등장하는 늙은 악사를 사실적으로 묘사했다.

뎅 뎅 뎅, 아득한 종소리 같은 피아노의 3연타가 울리면 겨울여행(Winterreise)이 시작된다. 슈베르트의 연가곡 ‘겨울나그네(Winterreise, D 911)’의 출발신호다. 올겨울에는 여느 해보다 자주 겨울여행을 떠났다. 창 밖 느티나무가 노랗게 물들었다가 이윽고 앙상한 가지만 남으면 ‘겨울나그네’ LP를 뽑아드는데 올해는 횟수가 잦았다. 여행 안내는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디스카우와 한스 호터, 테너 에른스트 해플리거가 주로 맡았다. 막판에는 메조소프라노 크리스타 루트비히와도 동행했다.

[an die Musik] ‘겨울나그네’ 가사

나에게 ‘겨울나그네’는 슈베르트의 수많은 작품 중에서도 낯익다. 초등학교 고학년인지 중학교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제5곡 ‘보리수’를 배웠기 때문이다. 모임에서 어쩔 수 없이 노래를 불러야 했을 때 이 예술가곡을 불러 떠들썩한 좌중을 침묵에 빠지게 한 적도 몇 번 있다.

‘겨울나그네’는 사랑을 잃은 청년이 추운 겨울 날 연인의 집 앞에서 작별을 고하고 방랑하는 사연이 장장 스물 네 곡에 걸쳐 이어지는 대작이다. 슈베르트 최고의 걸작이라고 일컬어진다.

그러나 어느 해 이 대곡을 제대로 들어보자 마음먹고 가사를 펼쳐들고 노래를 따라가다 크게 실망하고 말았다. 처음에는 뭐 이래, 정도의 느낌이었는데 나중에는 왜 이렇게까지… 하다 결국에는 에이 찌질한! 하며 가사를 내던졌다. 슈베르트의 매혹적인 선율이 감싸고 있는 가사의 내용이 손발이 오그라들 만큼 유치했기 때문이다.

바리톤 피셔디스카우와 명 반주자 제럴드 무어.

꽃피는 봄날 마을에 온 청년은 아리따운 처녀와 사랑에 빠지고 가족의 결혼 승낙도 받는다. 계절이 바뀌고 겨울이 되자 그 사이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청년은 버림을 받는다. 그런데 떠나는 모습이 초라하다. 날이 밝으면 사람들에게 쫓겨날까 두려워 한밤중에 처녀의 창가에 발소리를 죽이고 다가가 ‘안녕히 주무세요’ 메모만 남기고 도망치듯 떠난다. 연인의 얼굴을 마주하고 이별을 고할 용기도 없다.

첫 장면이 이러니 이어지는 스토리도 뻔하다. 처녀의 집 지붕에서 겨울바람에 맹렬하게 돌아가는 풍향계가 자기를 희롱하는 것 같다. 매정하게 돌아선 그녀, 더 좋은 혼처를 구해 기뻐하는 가족들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청년은 분노하기는커녕 눈물·콧물을 흘리고 겨울바람에 얼굴이 얼어붙는다.

당연히 마을을 결연히 떠나지 못한다. 좋았던 봄날에 그녀와 노닐던 들판을 찾아가니 눈발만 분분하다. ‘우리가 밟던 땅이 드러날 때까지 흐느적거리며 대지에 입맞추겠다’고 흐느낀다. 마을을 벗어나는 곳에 그 유명한 ‘보리수’가 있다. 보리수 아래서 맹세하면 효험이 있다고 해서 두 연인은 가지에 그들의 이름과 맹세의 말을 새겨놓았다. 청년은 모자가 바람에 날아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넋을 놓고 그것을 바라본다. 뺨에는 홍수라도 난 것처럼 다시 눈물이 넘쳐흐른다. 들판의 냇물은 얼어붙었다. 청년은 얼음 위에 쭈그려 앉아 뾰족한 돌로 그녀의 이름을 새긴다.

미련은 끝이 없다. 젊고 고운 여인, 달콤한 키스와 포옹, 비길 데 없이 즐거운 사랑…. 그녀를 언제나 다시 안아보려나? 그러나 현실은 비참하다. 마을에서부터 따라온 까마귀는 지붕 위에서 눈을 차 던지며 나그네가 쓰러지기만을 기다린다. 지친 눈에는 도깨비불이 보인다. 그 지경에서도 연인의 마을에서 우편마차가 달려오자 갑자기 심장이 뛴다.

청년은 이정표 앞에 선다. 이제 더 이상 희망을 가지지 않는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아직 아무도 돌아온 적이 없는 험한 길’이라고 노래한다. 죽겠다는 말이다. 하늘의 태양도 여러 개로 보일 정도로 정신조차 혼미한 그에게 거리의 악사가 등장한다. 빙판 위에 맨발로 서서 힘껏 건반을 누르고 있지만 접시에는 동전 한 잎 없고 주변엔 개들만 으르렁거린다. 청년은 늙은 악사에게 말한다. ‘그대와 함께 가도 되겠소?’ 포기와 체념이 절정에 달해 겨울여행은 끝난다.

낭만 후기로 오면 리하르트 슈트라우스는 헤르만 헤세와 아이헨도르프의 세련된 시로 ‘네 개의 마지막 노래’를 짓고 구스타프 말러는 중국의 옛 시에 곡을 붙여 ‘대지의 노래’라는 명작을 남긴다. 그러나 낭만 초기 작곡가였던 슈베르트는 필생의 대작에 좋은 텍스트를 쓰지 못했다. 사서 겸 교사였던 빌헬름 뮐러가 쓴 시는 슈베르트의 아름다운 선율에 어울리지 않는다.

슈베르트도 당대의 대시인 괴테의 시를 많이 사용했다. 대표작 ‘마왕’ ‘들장미’가 모두 괴테의 시다. 그러나 시인은 자신의 작품들에 곡을 붙여준 슈베르트에게 한 번도 고맙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숫기 없고 못생기고 출신조차 한미한 천재를 괴테는 알아보지 못했다. 만약 슈베르트에게 연가곡 시를 써주었다면 어떤 작품이 되었을까?

그래도 ‘겨울나그네’는 아름답다. 피셔 디스카우의 묵직한 저음과 풍부하고 드라마틱한 피아노 선율에 몸을 맡기면 나만의 겨울여행을 떠날 수 있다. 또 사랑은 원래 유치한 법이다. 마흔을 넘긴 양희은도 ‘사랑이 끝나고 난 뒤에는 … 날 위해 빛나던 모든 것도 그 빛을 잃어버렸다’고 노래하지 않았는가. 슈베르트가 ‘겨울나그네’를 완성한 것은 서른이었고, 이듬해 죽었다.

최정동 기자 choij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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