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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에 카메라 들이대세요…반짝이는 순간 잔뜩 있죠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좋은 사진을 찍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소중 학생사진기자들이 임종진 사진작가를 만나 이야기를 듣고, 실제로 사진 찍기 실습을 하면서 그 답을 찾아 나섰습니다. 사진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과정을 소개합니다.

사진을 잘 찍으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좋은 카메라, 사진 찍는 기술, 사진 잘 나오는 장소….

그런 조건보다 더 중요한 건 사물과 사람을 보는 시선입니다.

임종진 사진작가는 남다른 시선으로 유명합니다. 남들은 뼈가 앙상히 드러난 비극적인 아이의 사진으로 아프리카의 빈곤과 비극을 들여다볼 때, 그는 빈곤한 가운데에서도 반짝이는 삶의 순간을 담아냈습니다. 지난 22일 소중 학생사진기자들이 서울 충무로의 작업실로 찾아갔습니다. 임 작가가 소중 학생사진기자들에게 들려준 사진 이야기를 소중 독자들에게 전합니다.

임종진(가운데) 사진작가가 서울 충무로에서 운영 중인 비영리 사진·인문학 교육장 ‘달팽이 사진 골방’에 찾아간 소년중앙 학생사진기자들. 왼쪽부터 박상하·전성민·이원준·김진서·김민지.

안녕? 난 임종진이라고 해. 나는 신문사 사진기자였어. 가난한 사람들, 힘이 없어서 힘 많은 사람에게 쫓겨나는 사람, 장애로 어려움을 겪거나, 외국에서 한국으로 일하러 왔다가 다친 사람들. 그런 분들이 조금 더 잘 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기자시절 많이 찾아 다녔어.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생각하는 것만큼만 보였던 것 같아. 너희들은 ‘아프리카’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올라?

“빈곤, 물 부족, 가난, 아픔, 차별, 상처…”

아프리카는 굉장히 넓은 대륙이고 아주 많은 나라가 있는데, 항상 가난하고 힘들고 굶주리고 서로 쏴 죽이는 이미지가 많이 떠오르지. TV에는 가난한 검은 피부의 깡마른 아이를 백인이 돌보는 모습이 많이 나와. 실제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많은 나라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야. 그런데 그것만 보게 되면 우리는 그곳에 가난만 있다고 생각하기 쉬워. 그곳도 사람 사는 곳이고, 가족끼리 주고받는 정이 있는데, 저런 나라 사람들에겐 그런 일상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하거든. 그런데 가보면 있더라고.

신문사 다닐 때 급하게 집에 가서 뭔가를 가져올 일이 있었어. 지하철역 계단을 막 뛰어 나가려는데, 한 여덟살 난 여자 아이가 장애가 있어서 못 올라가고 있었어. 시간은 없지만, 저 친구를 도와줘야겠다는 생각에 “도와줄게요”하고는 팔을 잡고 막 뛰어갔던 것 같아. 그런데 “조심해서 가세요.” 인사하곤 정신을 차려보니 그 친구가 땀을 뻘뻘 흘리고 있는 거야. 아차 싶었어. 도와줄 거면 그 친구의 속도에 맞춰서 내가 천천히 올라갔어야 하는데, 생각만 앞서서 내 방식대로 그 친구를 끌고 올라간 거였어. 사실 그건 도와주는 게 아니라 그냥 내 마음 속 동정심을 채우려 했던 욕심이었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그동안 사진을 찍을 때 내가 너무 안 좋은 상황만 보고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지. 저 사람들은 힘들어해야 할 처지인데 왜 저렇게 웃고 있을까. 나는 그런 모습을 사진에 담기 시작했어.

아내가 밥을 먹는 동안 손으로 파리를 쫓아주는 남편. 캄보디아 스떵민쩌이.

신문사를 그만두고 캄보디아에 가서 2년 동안 살았지. 전쟁 때문에 지뢰로 팔이나 다리를 잃은 친구들에게 기술을 교육하는 학교, 캄보디아에서도 제일 가난한 빈민촌 같은 데를 찾아 다니면서 가족 사진 찍어주는 일을 했어. 빈민촌 사람들은 호숫가에 집을 짓고 살았어. 금방이라도 집안에 물이 들어올 것 같은 곳이지. 그런데 모래로 그 큰 호수를 메우면서 거기 살던 사람들은 전부 쫓겨났어. 나는 집에서 쫓겨나가기 전에 마지막 산책을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았지. 사진을 보고 나니 어떤 느낌이 들어?

“우리 눈엔 못 살고 있는 것 같은데,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는 것 같아요.(김진서)” “보이는 것만 판단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김민지)”

임종진 작가의 첫 사진집 『캄보디아: 흙 물 바람 그리고 삶』 표지

내가 보여준 사진들의 배경엔 가난한 모습이 보이지만 사람들의 표정은 잘 웃고 행복해 보이지. 저 사진 속 사람들은 대부분 나랑 친하거나 잘 알고 지내는 사람들이야. 캄보디아에 10년간 찾아갔고, 2년간 살았으니까. 처음엔 가난만 생각하고 들어갔어. 불쌍해서 어떻게 하나 했는데. 세상에! 그 안에서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이웃의 정, 친구끼리 즐기는 재미난 놀이와 가족끼리 나누는 즐거움이 눈에 들어오는 거야. 예전엔 잘못된 걸 사진으로 파헤치는 것만 내 일이라 생각했어. 하지만 이제는 안 좋은 상황 안에서도 좋은 부분이 있다는 걸 사진으로 잘 담아 세상에 꺼내 보이고 있어. 가난하거나 다치거나 했더라도 그것만으로 이들을 바라보는 건 옳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졌지.

캄보디아에는 쓰레기매립장에서 먹고 사는 가족들이 있어. 우리나라는 쓰레기 분리수거를 많이 하는데, 캄보디아는 쓰레기를 죄다 쌓아놓은 다음에 분리해. 늘 파리떼가 떠다니고, 음식물 쓰레기도 섞여있으니 냄새도 심하지. 여기에 온 가족이 모여서 분리수거를 해서 돈을 벌며 살아가. 상황은 안 좋아. 하지만 여기서 일하는 가족들은 학교도 못 다니고 하루 종일 일하는데도, 밝게 웃고 있어.

남편이 힘든 아내를 위해 비밀봉지에 담긴 생수를 사서 건네주고, 힘들게 일하다 중간 중간 수다를 떨기도 하지. 점심 시간에는 도시락을 싸와서 먹는데, 가만히 지켜보니까 남편은 밥을 굉장히 빨리 먹더라고. 밥을 다 먹고 나서 아내의 밥에 달려드는 파리를 손으로 쫓아주는 거야.

나는 이런 곳을 찾아 다니면서 저 안에서 살랑살랑 일렁거리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모습을 담고,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 되려고 한 거야. 가난하다고 해서 무시하고 깔보거나 차별하면 안 되는데, 어른 세상에는 그런 게 많아. 욕심 가득한 어른들끼리 싸우고 다투는 걸 보면 잘 이해가 안 될 거야. 돈 많고 권력 있는 사람들이 죄를 짓는 것도 그렇고. 어른이 돼서도 잃지 말아야 할 정의감, 이런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는 판단 능력을 기르도록 지금부터 준비해야 해. 세상을 바라보는 아주 넓은 눈을 가져야 할 것 같아.

임종진 작가가 말하는 사진 잘 찍는 법

사진 보는 법을 설명하는 임 작가.

내 강의를 들은 제일 어린 친구가 중학교 1학년이었어. 그 친구가 “사진을 시작하고 나서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졌다”고 하더라. 공부만 할 때는 앞만 보고 살았는데, 사진을 찍으니 왼쪽 오른쪽, 아래도 보고 뒤도 본다는 거야. 어느 한 부분만 자꾸 생각하면 우리들의 판단능력이 좁아져요. 사진은 하나만 보고 있으면 그거밖에 못 찍지만, 사방을 보면 그 중에서 골라 찍을 수 있어.

자, 먼저 좋아하는 친구 얼굴을 하나 떠올려봐. 그 다음엔 싫어하는 친구도 생각해봐. 둘 중에 누굴 찍고 싶어? 그래. 당연히 좋아하는 친구일 거야. 사진은 자기가 좋아하는 걸 찍는 거거든. 좋아하는 사람, 기분 좋은 곳, 내 마음이 어디로 가는지 보여주는 거야. 카메라는 내가 어떤 사람인가, 내가 뭘 좋아하나를 확인시켜주는 도구일 수 있어.

예쁜 화초를 찍고 싶은 사람도 있지만 벽 틈새를 비집고 올라온 풀을 찍고 싶은 사람도 있단 말이야. 일단 내가 찍고 싶은 것들을 많이 찍어보는 게 좋아. 그렇게 하다 보면 다른 것도 보는 능력이 생기게 될 거야.

사진기자는 거기에서 그치지는 않아. 좀 더 나은 세상,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잘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드는 일 하는 것이라 내가 좋아하는 것 말고 싫어하거나 마음에 안 드는 것 앞에도 당당히 서서 사진으로 이야기할 줄 알아야 하지.

사진 잘 찍는 방법은 뭘까. 좋은 카메라를 쓰는 게 먼저가 아니야. 나는 되게 작은 카메라로 찍어. 사진을 보는 거 좋아하니? 서점에 가면 사진 잘 찍는 방법, 어떻게 찍으면 나도 사진작가처럼 찍을 수 있나 그런 책이 많이 있어. 그런 기술 책을 보면 안 돼. 그런 걸 보면 오히려 나중에 사진을 못 찍게 돼.

내셔널지오그래픽이란 책을 보면 사진이 많이 실려 있잖아. 이런 잡지를 넘기다 보면 마음에 드는 사진을 자꾸 보게 돼. 우선 책 한 권을 들고 첫 장부터 넘겨봐. 한 권을 다 보는 거야, 천천히. 글은 안 읽어도 돼. 보면서 제일 마음에 드는 사진에 포스트잇 같은 걸로 표시를 해. 그렇게 한번 다 보고 나면 딱 덮어. 다시 펼친 뒤 체크해놓은 사진만 다시 보는 거야. 맨 처음 체크한 게 10장이면, 그 중 5장만 추려서 골라내. 그렇게 하다 보면 자기가 좋아하고 마음에 드는 사진이 어떤 건지 정리가 돼. 그리고 나서는 내 마음에 드는 사진처럼 따라 찍어보는 거야. 사진을 볼 땐 내가 카메라를 들고 그 자리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상상해야 해.

글=이경희 기자 , 사진=장진영 기자
동행취재=김민지(안산 경수중 2)·김진서(서울 삼각산초 5)·박상하(서울 가곡초 6)·이원준(충주 국원초 4)·전성민(수원 매여울초 6) 학생사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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