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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기자의 학창시절]중·고교시절을 함께한 문장 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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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 1등의 책상

'오늘 내가 헛되이 보낸 하루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원하던 내일이다' 'No pain, No gain' '인내는 쓰고, 열매는 달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교육섹션인 '열려라공부'를 오래 담당하다보니, 그동안 공부깨나 한다는 전국의 중·고교생을 많이 만나왔습니다. 그들의 학습 노하우를 취재해 지면에 소개하기도 하고, 독서법이나 동아리 활동, 봉사활동과 같은 '스펙'은 어떻게 만드는지도 물었지요.

그들의 교과서나 문제집을 펼쳐보면 첫 장엔 늘상 이런 구절이 적혀 있습니다. 한시도 허투루 보내지 않겠다는 자신과의 약속이자 다짐을 담은 문구들입니다. 기특하기도 하면서 한쪽 가슴이 찌르르해지는 건, '아무리 공부를 잘하는 학생일지라도 역시 책상 앞에서 버텨내는 건 힘들고 고통스럽구나'란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되기 때문이겠죠.

이들처럼 공부를 잘 하진 못했지만, 저에게도 학창시절이 있었고 비슷한 과정을 겪었으니 그 힘겨움에 공감이 갑니다. 저 또한 그 맘 때 힘을 불어넣어주는 교훈적인 구절을 늘 교재 첫 페이지에 적어놓곤 했었죠. 제 학창시절을 함께 해준 문장은 '行百里者半九十(행백리자반구십)'였습니다.

쉬운 한자라서 의미는 금방 파악이 되실 겁니다. 100리를 가는 사람에게 반은 90리라는 뜻입니다. 산술적으로 100리의 절반은 분명 50리지요.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산술적인 계산으로는 절대 풀어낼 수 없는 오묘한 것인 듯 합니다. 특히 끈기와 지구력이라곤 약에 쓰려야 쓸 게 없었던 10대 시절의 저에겐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이 '마무리'였거든요. 이 문장은 처음부터 90리를 갈 땐 '아직 반도 안왔다'는 낮은 마음을 가져야 하고, 마지막 10리를 갈 때 앞에 90리를 왔던 것 이상의 힘을 내야 비로소 100리를 완주할 수 있단 사실을 깨우쳐 줬습니다. 물론 이 구절을 폼나게 적어둔 교재도 결국은 반의 반도 못 풀고 팽개쳐뒀지만요.

사춘기 시절 가슴에 담아뒀던 이 문장은 직장인이 된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여전히 주어진 일의 절반 해내기도 벅차고, 조금 남은 것 같은 데 한없이 더딘 일 진행에 자괴감에 빠질 때가 많거든요. 그럴 때면 다시 이 추억의 문장을 소환해 "절반(90리)이란 내 생각보다 2배의 노력을 쏟아야 도달할 수 있고, 조금 남은 걸 마무리하는 데는 앞에 90%의 일을 할 때의 노력이 또 필요하다"며 마음을 다잡곤 합니다. 물론 지금도 학창시절처럼 중간에 흐지부지 손을 놔버리긴 하지만요.

여러분의 학창시절을 함께 한 문장은 무엇인가요? 그 글귀가 여전히 여러분에게 힘을 주고 있는지요. 2015년엔 학창시절 내게 힘을 줬던 문장을 떠올려보며 마무리까지 힘을 내보면 어떨까요.

박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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