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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 인류 유전자에 새기다 … 800년 맞는 대헌장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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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800년 만의 일이다. 1215년 만들어진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중 현존하는 4개 본이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인다. 마그나 카르타 제정 800년을 기념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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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 국립도서관은 다음달 2일부터 사흘간 마그나 카르타 원본을 동시 전시한다고 28일 밝혔다. 도서관에 있는 2개 본과 링컨대성당과 솔즈베리대성당이 보유한 각 1개 본이다. 3일엔 20개국 출신의 일반인 1215명에게 공개한다. 전 세계 61개국 3만8450명의 신청자 중 추첨으로 뽑힌 이들이다. ‘1215’란 숫자는 이들 문서가 생산된 연도를 상징한다.

 마그나 카르타는 대헌장으로 불리지만 실제론 존 왕과 귀족들 사이에 체결한 평화협정이다. 존 왕의 거듭된 실정(失政)과 징병·과세에 귀족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양측은 1215년 템스 강변의 러니미드에서 휴전했는데 왕이 법 안에서 통치해야 한다는, 당시로는 혁명적 이상을 조건으로 구두 합의했다. 이후 왕의 필경사에 의해 문서화돼 전국 교회로 보내졌다. 존 왕은 인장을 찍긴 했지만 지킬 생각은 없었다. 곧 “협박에 의해 작성된 문서여서 무효”라고 선언했다. 당시 교황인 이노센티우스 3세도 존 왕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한 번 뿌려진 씨앗은 거둬들일 수 없었다. 1217년 존 왕이 급사하고 이어 계승한 아들 헨리 왕이 다시 추인했다. 니컬러스 빈센트 이스트앵글리아대 역사학과 교수는 “마그나 카르타가 당장 전제 통치를 끝낸 것도 왕의 자유재량권을 제한하는 데 성공한 것도 아니다”며 “그러나 시민에게 불가침의 권한이 있고 이게 침해되면 저항해야 한다는 신화가 작동하게 된 계기”라고 말했다. “그것도 아주 강력한 신화”라고 했다.

800년 만에 수장고에서 외출한 솔즈베리대성당 보유 마그나 카르타(대헌장).

 마그나 카르타의 63개 조항 대부분은 중세 생활상을 반영한 내용이다. 그러나 몇 개 조항은 오늘날에도 힘을 발휘한다. 특히 일반 평의회의 승인 없이 공과금을 부과하지 못한다는 제12조는 의회의 승인 없이 과세할 수 없다는 주장의 근거로, 자유인은 같은 신분을 가진 사람에 의한 재판이나 국법에 의하지 않으면 체포·감금할 수 없다는 제39조는 법 정신의 상징이 됐다.

 마그나 카르타의 ‘신화’는 곧 유럽 대륙으로 전파돼 프랑스 대혁명에 영감을 불어넣었다. 대서양을 건너가 미국 헌법, 그리고 1948년 유엔의 세계인권선언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특히 미국이 심대한 영향을 받았는데 영국의 이코노미스트가 최근 “오늘날 마그나 카르타는 영국인보다 미국인들에게 속한 듯하다”고 토로할 정도다.

 상징적인 장소가 마그나 카르타 합의가 이뤄진 러니미드다. 유일하게 기념비가 하나 있는데 1957년 미국변호사협회가 세운 것이다. 미국 대법원 건물의 거대한 청동 부조엔 존 왕이 마그나 카르타에 서명하는 모습이 새겨졌다. 존 로버츠 대법원장이 지난해 “미국의 나이가 마그나 카르타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지만 헌법을 통해 마그나 카르타의 핵심 개념에 구체적 의미를 부여한 건 우리들”이라고 평가한 일도 있다.

 전문가들은 “마그나 카르타의 자유와 정의란 간결한 아이디어는 인류의 유전자에 새겨졌다”(마그나 카르타 위원회)고 말한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깊은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는 의미다. 정부나 시장 등의 잘못에 맞서는 시위도 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 인권 문제나 인종 학살 등 인류애에 반하는 행위에 대한 국제사회의 지속적 문제 제기도 마찬가지다. 해리슨 도서관장은 “모든 사람이 법에 의해 동일한 권리를 갖는다는 인류 보편적 원칙”이라고 설명했다. 

런던=고정애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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