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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이규연의 시시각각

'언론인' 김영란법 걸림돌 되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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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규연
이규연 기자 중앙일보 탐사기획국장
이규연
논설위원

“진짜 걱정된다.”

 “정치권이 꼼수 부린다.”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

 ‘김영란법’ 적용 대상에 언론인을 집어넣는 문제를 두고 동료 논설위원과 일선기자 각 5명에게서 의견을 들어보았습니다. 반응이 우려·냉소·담담 등 ‘삼색(三色)’으로 나오더군요. 논설위원은 2명 우려, 2명 냉소, 1명 담담이었습니다. 반면 상대적으로 젊은 일선기자는 1명 우려, 1명 냉소, 3명 담담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보는 언론인의 다양한 심경을 보여줍니다.

 김영란법은 대표적인 ‘넥스트(next)’ 법안입니다. “논란이 있느니 다음에 처리하자”며 2년 반을 끌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8일 여야는 정무위 법안 소위에서 이 넥스트 법안을 비로소 통과시켰습니다. 곧바로 본회의에서 처리될 기세였습니다. 하지만 법사위에서 또 제동이 걸렸습니다. 발목을 잡은 건 ‘과잉입법’ 논란이었습니다. 공직자·공기업 관계자뿐만 아니라 사립교원, 대형병원 의사, 언론인 등을 대상에 포함한 부분이 드러나면서 ‘넥스트’ 본색이 발동한 겁니다. 여야는 특히 “언론의 자유를 침해할 소지가 있다”며 본회의 상정을 미뤘습니다.

 솔직히 ‘언론인 포함’의 명분과 저의가 의심스럽기는 합니다. ‘김영란법’의 입법 취지는 공직사회의 청렴도를 높이자는 겁니다. 언론인은 공직자가 아닙니다. 언론인이 적용 대상이 되면 권력이 이를 언론을 견제하는 데 악용할 여지가 있습니다. 권력 내부에 대한 취재력이 감퇴될 수 있습니다. 관행적인 회식이 사법 판단의 도마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저는 언론인이 특별한 대접을 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적용 대상을 공직자와 준(準)공직자로만 국한하면 몰라도 의사·교원까지 들어가는 마당에 언론인만 빼자는 논리는 궁색합니다. 다른 민간 직종을 포함하는 게 맞다면 언론인도 불편함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봅니다.

 돌이켜 보면 ‘김영란법’ 촉발자가 바로 언론이었습니다. 한 방송사 탐사 프로그램이 2010년 4월 ‘스폰서 검사 사건’을 폭로했습니다. 부산 건설업자가 57명의 전·현직 검사에게 향응·성상납을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보도 이후 2명의 검사가 기소됐지만 모두 무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그해 9월에는 ‘벤츠 여검사 사건’ 보도가 있었습니다. 여검사가 변호사에게서 사건 청탁을 대가로 벤츠와 샤넬 가방을 받았다는 의혹이었습니다. 특별검사까지 나서 조사했지만 여검사는 처벌받지 않았습니다. 모두 금품수수는 인정되지만 직무연관성·대가성이 없다고 판단한 겁니다. ‘우리가 남이가’ 문화가 퍼져 있는 현실에서 직무연관성·대가성 없음은 ‘처벌 회피처’입니다. 사회는 공분했고 이윽고 ‘김영란법’이 나왔습니다. 직무연관성이나 대가성 입증이 안 된 금품수수도 처벌할 수 있는 한국형 부패의 저승사자가 등장한 겁니다.

 2012년 제안 이후 정치권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법 상정을 미뤘습니다. 그때마다 언론은 보수·진보를 가리지 않고 그 필요성을 강조했습니다. 공직 적폐의 핵심이 ‘관피아’ ‘정피아’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김영란법을 촉발하고 지원했던 언론인이 적용 대상에 들어간 겁니다. 만약 정치권이 ‘넥스트 전략’으로 이런 수를 뒀다면 정말 노련한 꼼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진보 언론단체들이 각기 다른 의견을 내놓을 정도로 언론계를 교란했으니까요.

 우려도 되고 자존심도 상합니다. 하지만 지금 언론인이 특별 대접을 받으려 한다면 ‘김영란법’은 또 물 건너갈 겁니다. 여야에 제안합니다. 적용 대상을 공직에서 연관 민간 직종으로 넓힐 요량이라면 언론인에게도 같은 잣대를 적용하십시오. 불편하고 부담이 되더라도 적응해 보겠습니다. 대신 약속해야 합니다. 2월에는 꼭 처리하십시오.

이규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