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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만㎞ 달린 택시, 멋진 소파로 변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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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택시기사 김영귀씨의 그랜저로 미술가 칸이 만든 소파. 오랜 시간 주인을 위해 달려온 낡은 자동차가 반듯한 예술품으로 재생됐다. [사진 현대자동차]

택시기사 김영귀(66)씨는 30년간 택시를 몰았다. 하루 16시간을 운전석에서 보냈다. 75만㎞를 달린 그랜저XG를 폐차하게 되자 미술가 칸이 김씨의 직장이자 사무실이기도 했던 이 차를 소파로 재탄생시켰다. 택시의 트렁크 부분을 절단해 뒷좌석을 달았다.

 김씨는 늘 손님들 차지였던 택시 뒷좌석에 처음으로 앉아봤다. 열심히 앞으로만 달려왔던 지난날을 돌아봤다. 폐차를 재생한 정크 아트 ‘미스터 택시’다.

 낡고 오래된 자동차들이 추억을 품은 미술품으로 다시 태어났다.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알림1관에서 김병호·박진우·양수인·에브리웨어·이용백 등 14명의 미술가·건축가가 색다른 자동차 예술작업을 선보였다. 28일 개막한 현대자동차의 기획전 ‘브릴리언트 메모리즈(Brilliant Memories)’다.

 현대차는 지난해 10월부터 타던 차량을 폐차하거나 중고차로 매매할 고객을 대상으로 차에 얽힌 사연을 응모받았다. 1만8000여 건의 사연 중 61명의 사연을 선정, 작품 및 화보로 되살렸다.

 쇳가루로 그림을 그리는 김종구 작가는 포터 트럭을 갈아 만든 쇳가루로 서예를 하듯 차 주인의 사연을 적고 그렸다. ‘자동차와 시, 서, 화·쇳가루 산수화-성주꿀참외’다.

 경북 성주에서 참외 농사를 짓는 부모는 아들이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 포터를 구입했다. 참외를 거뜬히 싣고 집과 비닐하우스, 공판장을 내달린 포터 덕분에 아들은 편안히 공부할 수 있었다. 10년 전 참외값이 폭락하면서 부모는 이 포터를 이용해 직접 판매에도 나섰다.

 아들 김중희(31)씨는 “아버지의 포터가 생계가 아니라 이제 추억으로 남으면 좋겠다”며 사연을 보냈다. 그리하여 갈고 남은 포터의 몸체와, 그 쇳가루가 캔버스 위에 남긴 산수화는 사회 속에서 한 개인이 이룩한 삶의 기념비가 됐다.

 김종구 작가는 “오래된 자동차는 결국 주인을 닮아 인간의 모습을 하게 되는 것 같다”며 “예술가가 인간의 산업을 연결해 줄 수 있는 기획이었다”고 말했다.

현대차 이대형 아트 디렉터는 “미학을 넘어 기업의 윤리적 가치를 묻는 프로젝트”라고 설명했다. 2월 17일까지. 성인 5000원. 02-2153-0000.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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