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아들아!
엄마는 지금도 그날 아침을 또렷이 기억해. 지하철 3호선 홍제역 3번 출구 앞에 너를 데려다 주고 돌아서던 그 순간을. 지난해 9월 20일이었으니 벌써 4개월이 지났네. 시각장애인용 지팡이를 더듬더듬 두드려 가며 걸어가는 네가 그날따라 왠지 눈에 밟혔는데….
“최석! 걷기 힘들면 공익근무요원한테 도와달라고 해!”
“내가 혼자 지하철도 못 탈까 봐? 걱정 마세요.” 그날 이후 다시는 네가 두 발로 걷는 것을 볼 수 없게 됐지. 차라리 널 약속 장소로 데려다 줬다면….
엄마는 너를 볼 때마다 평생 죄인처럼 고개를 들 수 없었단다. 올해로 스물일곱 살이 된 우리 아들. 1급 시각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네게 세상은 암흑 천지였어. 내 얼굴조차 본 적이 없는 네가 안쓰러워 참 많이 울었지.
하지만 넌 보통 아이들처럼 밝게 자라 주었어. 싱어 송 라이터가 되고 싶어했던 우리 아들. 매주 좋아하는 노래를 업로드하는 네 블로그는 같은 장애를 지닌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았지. 그날도 넌 용산가족공원에서 열리는 밴드 공연에 가겠다고 집을 나섰어. 그런데 석아, 그날 널 홍제역에 데려다주고 두 시간 만에 전화가 왔어. 모르는 번호였어.
“용산경찰서입니다. 아드님이 지하철에 치여서 크게 다쳤습니다.”
도무지 혼자 병원에 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 한걸음 한걸음이 꼭 평행봉 위를 걷는 것처럼 위태로웠지. 함께 장애활동 도우미로 일하는 친구 손을 잡고 겨우 응급실 문을 열었단다. 머리뼈 골절, 다발성 손상, 허리척추 손상. 피투성이가 된 그날 네 모습을 죽어서도 잊을 수 있을까.
“석아, 엄마야. 목소리 들려?”
다급한 목소리에 넌 그저 낮은 신음 소리만 내뱉고 있었어. 오랜 침묵 끝에 이 말만 남기고 다시 정신을 잃었지.
“엄마, 난 그냥 지팡이를 짚고 서 있었을 뿐인데….”
한 달 뒤 병원에선 청천벽력 같은 얘기를 했어.
“아드님이 두 다리를 쓰기 힘들 것 같습니다.”
시각장애도 모자라 하반신 마비라고? 난 풀썩 주저앉았어. 평생 어둠과 어둠 사이를 헤매며 살아온 우리 아들이 두 다리마저 잃게 됐다니….
경찰은 네가 종로3가역에서 1호선으로 갈아타고 용산역으로 왔다고 했어. 용산역 플랫폼에서 발을 헛디뎌 떨어졌다는 게 경찰 설명이었지. 엄마는 의아했어. 그래서 네 동생과 함께 직접 용산역 플랫폼에 가봤어.
승강장 사이를 이어주는 계단을 오른 뒤엔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이 끊어져 있더구나. 넌 유도블록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3m 앞 선로로 추락했던 거지. 용산역엔 172대의 폐쇄회로TV(CCTV)가 있었지만 추락한 네 모습을 비춘 건 단 한 대뿐이었고. 그때 23명의 역무원이 있었지만 아무도 네가 추락한 걸 몰랐어. 너는 2분50초가량 선로에서 더듬거리며 길을 찾았고, 결국 다가오던 열차에 치여 80m가량을 끌려가고 말았지.
입원 4개월째. 욕창으로 네 살이 썩어 들어가는 걸 보면 내 가슴도 뭉개진다. 하지만 코레일 측은 안전펜스를 설치했으니 법 규정에 위반된 게 없고, 해당 구간은 평소 승객이 많지 않아 시각장애인용 유도블록을 일부 설치하지 않은 것뿐이라고 말하고 있어. 또 그날 추락한 네가 크게 소리만 질렀어도 안전요원들이 구할 수 있었을 거라고….
지난해 11월 코레일을 상대로 공익 소송을 냈단다. 유도블록이 끊어진 구간은 겨우 3m였지만, 그 3m가 시각장애인에겐 생명줄과도 같다는 걸 사람들은 모르는 것 같아. 용산역은 뒤늦게 올 상반기까지 전 승강장에 스크린도어를 설치할 거라고 발표했어.
석아, 소송이 어떻게 결론 날지 모르겠어. 다만 시각장애인용 시설은 생명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라는 걸 이번 기회에 꼭 알리고 싶어. 어떤 결론이 나더라도 이 엄마가 평생 네 눈과 다리가 돼줄 거야. 석아, 알았지?
조혜경 기자, 사진=김경빈 기자
※이 기사는 용산역에서 사고를 당한 최석씨의 어머니 김광순(54)씨와의 인터뷰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사건:텔링=특정 사건을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풀어 보는 기사입니다. 범인·형사·목격자·제보자 등 주요 인물들의 시점에서 소설 형식으로 실제 사건을 재구성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