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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국제시장' 떴는데 '꽃분이네'는 짐을 쌉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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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영화 ‘국제시장’에 나오는 잡화점 꽃분이네. 27일에도 관광객들이 와서 사진을 찍었다. [송봉근 기자]

영화 ‘국제시장’으로 유명세를 탄 실제 부산 국제시장의 잡화점 ‘꽃분이네’가 오는 3월 문을 닫을 상황에 처했다. 점포 운영권자가 가게를 꾸리고 있는 신미란(37·여)씨에게 “권리금 5000만원을 내라”고 요구해서다.

 사정은 이렇다. 신씨는 2013년 3월 8.25㎡ 크기 점포를 빌려 꽃분이네 잡화점을 열었다. 건물주에게 직접 빌린 것이 아니라 가게를 전세 냈던 운영권자에게 재임대했다. 보증금 500만원에 월 임대료 180만원이었다. 권리금은 따로 없었다. 원래 ‘영신상회’였던 가게 이름도 ‘꽃분이네’로 바꿨다. 양말·벨트 등을 도매상에서 떼어와 팔았다.

 지난해 7월 영화 ‘국제시장’의 제작진이 가게에 찾아왔다. 영화 촬영을 위해 10일간 가게를 빌려 달라고 했다. 잠시 문을 닫는 보상금으로 300만원을 신씨에게 줬다.

 영화가 히트하면서 꽃분이네는 덕을 봤다. 가게 앞은 ‘인증샷’을 찍으려는 관광객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매출이 30% 정도 늘었다. 간판에는 주인공 ‘덕수’역을 맡은 배우 황정민의 사진도 달았다.

 신씨는 “장사는 잘됐지만 마음은 더 괴로워졌다”고 했다. 주변 상인들과의 사이가 벌어져서다. 맞은편 커튼가게 사장은 “꽃분이네를 보러 온 손님들이 가게 앞을 점령하다시피 해 피해를 보고 있다” 고 했다. 27일에도 신씨는 “주변 상인들 시선이 따갑다”며 가게 안에 박혀 있었고 손님은 아르바이트 점원이 응대했다.

 이달 초에는 세무서에서도 연락이 왔다. “영화 덕에 장사가 잘된다”는 보도를 보고 전화한 것이었다. “사업자등록은 했느냐” “현금영수증은 발행하느냐” 등을 물었다. 건물주에게 전세 든 점포 운영권자가 따로 있기에 신씨는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신씨는 사업자등록을 하기로 마음먹고 운영권자에게 허락을 요청했다. 이때 권리금 요구가 들어왔다. 신씨에 따르면 운영권자는 “오는 3월 계약 만료 때 5000만원을 주지 않으면 내가 직접 장사를 하겠다”고 했다. 신씨는 “5000만원을 장만할 길이 없어 3월까지만 장사를 하고 떠날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이럴 줄 알았으면 영화 촬영에 협조하지 않았을 텐데…”라며 말끝을 흐렸다. 본지는 권리금 인상 요구에 대한 해명을 듣기 위해 점포 운영권자와 통화를 시도했으나 받지 않았다.

 윤철한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국책사업팀장은 “현재 제도로는 갑자기 거액의 권리금을 요구하는 것을 막을 방도가 없다”며 “법적으로 전세 인상에 상한선을 그었듯, 권리금 역시 적절한 상한선을 두어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부산=차상은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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