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FTA 필요성 주장한 건 내가 처음 "우린 빼달라" 하던 부처도 있었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3면

27일 오후 3시 서울 도렴동 외교부 청사 18층 리셉션홀. 주로 중요한 조약이나 협정서에 서명할 때 외교부 직원들이 ‘병풍’으로 동원되는 곳이지만, 이날은 달랐다. 자발적으로 몰려온 외교관들로 홀이 가득 찼다. 윤병세 장관과 조태용 1차관, 조태열 2차관 등 주요 간부들도 빠짐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2014 외교부 하반기 퇴임식’이 열렸기 때문이다.

 만 60세 정년을 맞아 이날 퇴임한 외교관은 모두 21명. 각 분야와 지역에서 최고로 인정받는 이들이 다수 포함됐다. 대표적 인물이 김한수 전 캄보디아 대사다. 김 전 대사는 자유무역협정(FTA)의 개척자로 꼽히는 통상교섭전문가다. 행정고시 19회 출신으로 통상산업부에서 근무하다 1998년 외교부로 온 그는 정부 내에서 FTA의 필요성을 처음으로 주장한 이다. 한국 최초의 FTA인 한·칠레 FTA부터 아세안(ASEAN), 인도, 유럽연합(EU)과의 FTA까지 모두 관여했다.

 김 전 대사는 “처음 FTA관련 업무를 시작할 때 과장이었는데, 직원 딱 한 명을 데리고 FTA 입안을 했다. 처음 FTA 이야기를 꺼냈을 때 ‘괜찮은 생각이지만, 우리는 빼고 해달라’는 부처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지금 한국이 일궈놓은 방대한 FTA 영토를 보면 그런 일을 처음 시작했다는 사실이 영광스러울 뿐”이라고 말했다.

 퇴임하는 공관장 중엔 여성 외교관도 한 명 있다. 박동원 전 파라과이 대사다. 91년 특채로 외교부에 들어와 20년 넘게 중남미 지역만 담당했다.

2010년 8월 파라과이 대사로 부임하며 중남미 지역 최초이자 역대 다섯 번째 여성 공관장이란 기록을 세웠다. 박 전 대사는 포르투갈어에 있어 국내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조제 마우루 지 바스콘셀루스의 『나의 라임 오렌지 나무』를 번역해 한국에 소개한 이가 박 전 대사다.

박 전 대사는 “처음 중남미에서 외교활동을 할 땐 한국이란 나라 자체를 모르는 이들이 많았는데, 최근엔 파라과이 거리를 걷다 보면 ‘한국 대사 아니냐’면서 다가와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라며 “달라진 국격을 보면서 외교관으로 일한 보람을 느낀다”고 말했다.

 동기들에 비해 늦은 나이에 외교부에 들어와 상대적으로 짧은 34년 만에 외교관 생활을 마감한 허철 전 대테러국제협력대사의 퇴임을 아쉬워하는 후배들도 많았다. 한 외교부 당국자는 “농담처럼 외교부 내 성인(聖人)을 꼽곤 하는데, 몇대 성인을 꼽아도 허 대사는 꼭 포함됐다. 전형적인 외유내강형의 ‘작은 거인’”이라고 말했다.

 허 전 대사는 워싱턴·뉴욕·시카고 등 미국 지역에서 주로 근무했다. 영작에 능숙해 과장 시절부터 장차관들의 영어 연설문 작성을 도맡았다고 한다.

허 전 대사는 “외교관 생활을 시작할 땐 외국에서 한국의 흔적만 찾아도 기뻐 어찌할 줄 몰랐는데, 지금은 어디 가나 ‘원더풀 코리아’를 외치니 행복한 격세지감을 느낀다”며 “시카고 총영사로 있으면서 동포들 삶의 세세한 부분까지 챙겼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말했다.

유지혜·안효성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