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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중·일 3국과 중국의 대주변 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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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상철 기자 중앙일보 중국연구소장 · 차이나랩 대표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지난달 중국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을 찾았다. 주중 선양총영사관(총영사 신봉섭)이 주최한 ‘동북아 공동체포럼’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세미나에서 만난 한 중국 교수의 명함이 눈길을 끌었다. ‘일본침화사(侵華史)연구중심 부주임.’ 일본의 중국 침략 역사를 연구한다는 이야기다. 생소했다. 언제 생겼느냐고 물었더니 지난해 봄이란다. 일본의 역사왜곡에 체계적으로 대응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엿보였다.

 연초 중국 언론은 새해 4대 기념일을 제시했다. 그중 하나로 일본의 제2차 세계대전 항복 70주년(9월 2일)을 꼽았다. 일본의 우경화 움직임에 대한 경계심이 읽혀졌다. 우리는 올해 어떤 날을 기념해야 하나. 8월 15일 광복 70주년이 가장 중요하다.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6월 22일) 또한 의미가 크다. 모두 일본 관련이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던진 제안도 신경이 쓰인다. 시진핑은 지난해 방한 때 (2015년은) “중국의 항일전쟁 승전 및 한반도 광복 70주년”이라며 기념행사를 함께 열자고 했다.

 우리로선 일본과의 관계정상화 50주년을 경색된 한·일 관계를 푸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또 광복 70주년에 즈음해선 일본의 역사왜곡 및 우경화 행보에 단호하게 대응해야 할 필요가 있다. 한편으론 풀면서 다른 한편으론 조이는 묘수가 요구된다. 어떤 지혜가 필요하나. 올해 중국의 대일 외교가 어떻게 전개될지를 살피는 것도 한 방법이다.

 언뜻 보기에 중국의 대일 기조는 강경해 보인다. 그러나 변화의 조짐이 있다. 지난해 11월 열린 중공중앙외사(外事)공작회의를 주목해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이후 두 번째이자 8년 만에 열린 회의에서 시진핑 시기의 외교 틀이 결정됐기 때문이다. 중국 외교는 4개의 축을 중심으로 돈다. 대국외교, 주변국외교, 개도국외교, 다자외교가 그것이다. 언급한 순서대로 비중이 놓인다.

 한데 이번 회의에서 시진핑은 주변외교를 중국이 추구해야 할 으뜸으로 꼽았다. 대국외교는 그 다음이다. 미국 언론은 이 같은 중국의 변화를 ‘시진핑이 미국의 재균형 전략에 맞서 중국판 아시아 회귀 전략을 내놓은 것’으로 평가했다. 이에 따라 중국이 앞으론 이웃과의 관계를 희생하면서까지 미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서진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주변국외교 강조와 함께 등장한 용어가 있다. 대주변(大周邊)외교다. ‘주변’이 이웃을 말한다면 ‘대주변’은 인접국 너머 국가도 포함한다. 굴기 중인 중국이 주변국 개념을 확대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은 대주변과 어떻게 통(通)할 것인가. 시진핑은 동반자관계네트워크(?伴關係網) 구축을 제시했다. 중국은 세계 72개의 국가 및 지역조직과 동반자관계를 맺고 있다. 이젠 이를 네트워크(網)로 연결하겠다는 야심이다. 그리고 네트워크 구축의 한 수단으로 거론되는 게 ‘일대일로(一帶一路)’ 계획이다. 일대(一帶)는 중앙아시아를 거쳐 유럽으로 뻗는 실크로드 경제대, 일로(一路)는 동남아를 경유해 아프리카와 유럽으로 이어지는 21세기 해양실크로드를 말한다.

 시진핑이 대주변 외교를 강조하는 이유는 두 가지다. 첫 번째는 중국의 주변인 아시아 국가의 경제 활력이 미국이나 유럽을 앞질러 앞으론 아시아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중국으로선 글로벌 수퍼 파워가 되기 전에 우선 아시아 지역의 맹주 자리부터 다져놓을 필요가 있는 까닭이다. 이에 따라 시진핑 시기의 외교는 올해부터 아시아에 방점이 찍힐 전망이다.

 자연히 아시아의 주요국인 일본과의 관계 개선이 중요하다. 지난달 13일 제1회 난징(南京)대학살희생자 국가추모식에 참석한 시진핑의 발언에선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시진핑은 이날 일본 군국주의만을 비난했다. 앞서 지난해 9월 열린 중국의 항일전쟁 승리 69주년 행사 때 일본 현 정부를 겨냥한 것과는 다른 모습이다. 새해 중국 언론이 꼽은 4대 기념일도 따지고 보면 중국의 항일 승전일인 9월 3일이 아니라 일본이 미 미주리 함상에서 항복 문서에 조인한 9월 2일이다. 중·일 대결 구도가 교묘하게 희석되고 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도 집권 2주년을 맞은 지난달 26일 야스쿠니(靖國) 신사를 참배하지 않는 걸로 화답하는 모양새다. 아베는 5월 방미 때 미·일 방위협력지침 개정으로 잠시 중국을 자극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후엔 경제 회복에 올인하면서 중국과의 관계 개선에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아시아 경제 성장의 절반 이상을 담당하는 중국을 제쳐두고 경제 회복 운운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중·일 전략을 살피다 보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드러난다. 그중 하나가 현재는 서쪽으로만 뻗고 있는 중국의 일대일로 계획을 동쪽으로, 즉 한반도를 거쳐 일본까지 확대하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이는 박 대통령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와 맞아 떨어진다. 마침 우리 정부는 광복 70주년에 즈음해 서울~신의주 구간 열차 운행을 북한에 제안했다. 이 열차는 한반도 안에서 달리기를 멈추면 안 된다. 평양을 거쳐 베이징으로, 서울을 통해 도쿄로 이어져야 한다. 지난달 선양에서 열린 동북아 공동체포럼에서 강조된 한·중·일 3국의 공생(共生)을 위해서다. 그게 광복 70주년의 아시아적 의미일 것이다.

유상철 중국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