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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주·김택진 경영권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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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넥슨과 엔씨소프트가 한 식구가 된 지 2년 반 만에 얼굴을 붉히게 됐다. 엔씨소프트 지분 15.08%를 가진 최대주주 넥슨(넥슨 재팬·코리아)이 27일 "엔씨에 대해 경영권을 행사하겠다"고 선언하면서다. 지난해 10월 '단순 투자목적'이라며 엔씨 지분을 늘렸을 때와는 딴판이다. 두 창업자, NXC(넥슨 지주사) 김정주(47) 대표와 엔씨소프트 김택진(48) 대표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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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슨과 엔씨소프트는 2012년 6월 손을 잡았다. 두 창업자가 결정한 '빅딜'이었다. 일본 증시에 상장된 넥슨재팬이 엔씨 김택진 대표의 지분 14.68%(321만8091주)를 인수했다. 주당 25만원, 8045억원이 오갔다. 빅딜 직후 김택진 대표의 손에 들린 현금 8000억원의 사용처에 세간의 관심이 집중됐다. 얼마 뒤에야 두 사람이 미국 게임개발사 EA를 인수하기 위해 손 잡은 것으로 밝혀지면서 국내 벤처업계의 기대를 한몸에 받았다.

그러나 허니문은 오래가지 못했다. 두 회사의 관계는 삐걱댔다. 빅딜의 목적이었던 EA 인수는 무산됐고, 1·2위 게임기업이 손을 잡았는데도 그럴듯한 작품이 나오지 않았다. 게임을 공동개발 하기 위한 연합군은 빈손으로 헤어졌다. 지난 23일 김택진 대표의 부인 윤송이(40)씨의 사장 승진 소식도 넥슨을 자극했다. 넥슨은 이를 언론보도를 통해 알았다고 한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 황순현 전무는 "임원 인사 발표 하루 전에 넥슨이 공시를 경영참여 목적으로 변경하겠다고 통보해왔다"며 윤 사장 승진과 경영참여 공시건은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이런 갈등이 겹치면서 넥슨의 경영권 행사 선언으로 이어진 것으로 풀이된다. 넥슨 관계자는 "근본적으로 엔씨가 협업을 할 의지가 있는건지 회의가 들 때가 많았다"며 "포괄적으로 엔씨와 협력해야할 일이 많은데, 엔씨쪽은 연락을 해도 반응이 없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엔씨 측 얘기는 다르다. 엔씨소프트 황순현 전무는 "두 회사의 철학과 비즈니스모델이 이질적이어서 넥슨의 경영참여는 엔씨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뿐"이라고 말했다.

이달 초 만났던 두 대표는 이후에도 e메일을 주고받으며 합의점을 찾으려고 노력했다. 엔씨소프트 관계자는 "평행선을 달리다 비극으로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넥슨 관계자는 "우리는 엔씨와 싸우자는 게 아니라 서로 피하지 말고 협력 논의를 시작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반 만에 동지에서 투자자로 나선 넥슨은 이사회 이사 선임을 통한 경영참여, 글로벌 협업, 지분 정리 등을 포함해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협상 테이블에 앉을 전망이다. 이에 대해 엔씨소프트는 "현재의 경영 체제를 더욱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두 회사의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그럴 경우 지분 싸움으로 결판이 날 수밖에 없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김택진 대표의 지분(9.98%)에 자사주(8.93%)를 합친 엔씨 측 지분이 넥슨(15.08%)보다 많다. 결국 국민연금(6.88%)과 지분율이 드러나지 않은 소액주주(59.13%)의 의사가 향방을 결정하게 된다.

김택진 대표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85학번, 김정주 대표는 같은 대학 컴퓨터공학과 86학번이다. 두 사람 다 게임회사를 차려 경쟁하고 협력했다. 20년 이상 쌓아온 우정이 여기까지일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박수련·함종선 기자 africas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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